탁사정 기억이 누정 원림의 이미지를 재생산한다.제천 후배 영태에게 물었다. 탁사정(濯斯亭)을 가고 싶은데 근래 가 본 적이 있냐고 했더니, "탁사정은 유지 보수가 안돼 관리 상태가 안 좋을 것"이란다. "그래도 정자까지 올라가 보겠다."라고 말한 내게 "그러면 탁사정 주차장에서 만나자"라고 합을 맞춘다. 만나기로 정한 시간에 맞춰 출발 시각을 조정한다. 옛 생각이 절로 난다. 흰 모래톱이 길게 늘어서 해안가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과거의 풍경이 새삼 떠오른다. 친구들이 하도 멋진 곳이라고 가 보자 하여 따라나섰다. 한 떼의 청소년들이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숲인가보길도 부용동 원림의 시경을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어부사시사」 40수에서 발견한다. 65세(1651년)에 창작되었음이 고산 윤선도의 연보에 기록되었다. 인생의 가장 원숙기에 접어든 54세(1640년)에 를 짓고 56세(1642년)에 「산중신곡」 18수를 창작하였으니 「어부사시사」는 이후 11년이 지난 후이다. 중국은 병자호란 이후 순치제, 일본은 에도 막부 시대이다. 프랑스는 루이14세 시대이며 베르사유 궁원이 조성되었다. 인도는 샤 자한 재위 기간으로
도시의 공간과 임천한흥(林泉閑興)의 원림 공간원림을 미음완보한다. 원림의 출발지를 ‘내원재(內苑岾)’로 삼는다. 내원재는 경사가 있어 처음부터 고도를 높인다. ‘백두고원(白頭高原)길’에 이르러 잠시 평탄해진 틈에 늘 걸쳤던 겉옷을 벗는다. 백두고원길 지나 ‘원로분지(元老盆地)’에 이른다. 원로분지에서 몸의 유연성을 즐기는 이들에게 내 모습은 뻣뻣하기만 하다. 겉옷을 팔목에 감고 지나는 과객인지라 머뭇대지 않고 스치듯 지난다. 이곳 원로분지는 원림을 향유하는 시민에게 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가인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원을 만든 때는 그의 나이 51세인 1637년이었다. 그 이후로 4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산과 강도 변했고, 교통과 기술, 산업 등 전 분야에서 사회는 격변했다. 조선시대의 사회제도와 생활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땅 속에 묻힌 초석 파편만 남아 그 시절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우리의 옛 정원도 마찬가지다. 외부공간에 자연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정원은 전쟁, 도시개발 등으로 인해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땅속의 흔적들만 남은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을, 현
「원림 리부트」란 말을 사용하는 의미「원림」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을 지칭하는 학문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조원, 한국은 조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열린원림문화' 향유에서의 「원림」은 중국의 원림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한국정원문화와 조경 유적의 본질을 소환한다. 한국정원문화콘텐츠를 어떻게 파악하고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하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임천’이라는 말이 매우 적
고산 윤선도의 원림은 이나 의 해남과 어부사시사의 보길도, 그리고 양주 고산 원림으로 나눌 수 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미의식을 와 결부시켜 해석하면 유난히 ‘신명’의 미의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계절이 겨울이니 어부사시사의 「동사」를 하나 떠올려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을 향유한다. 붉게 물든 벼랑 푸른 절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배 세워라 배 세워라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으려나 못 낚으려나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쪽배에서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채 흥에 겨워 앉았노라
「열린 원림 문화」 향유의 첫 단추를 ‘송간세로’로 시작한다. 송간세로(松間細路)는 조선 성종 때의 정극인의 「상춘곡」에 등장한다. 불우헌 정극인은 벼슬의 영광은 없었으나 선비의 삶을 살았고 검소와 소박으로 이 나라 가사문학의 첫 장인 「상춘곡」을 창작하였다. 32행부터 34행의 내용에 송간세로의 원림 풍광과 원림에서의 행위가 드러난다. 32 松間 細路에 杜鵑花(두견화)를 부치 들고,33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34 千村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려 잇네. 소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고려대 심우경 명예교수의 학맥을 잇고자 지난해 설립된 오봉학당이 지난 13일(금)부터 15일(일)까지 2박3일 간 9명의 당원이 참가한 가운데 고산 윤선도(1587~1671)가 34년간 은둔생활 하며 경영한 보길도 부용동과 해남 수정동, 금쇄동 별서의 ‘뜰들뫼 가꾸기’(전통정원문화)를 답사했다.고산은 정조가 신안이 열린 풍수대가로 인정했듯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등 75수를 지어 국문학사상 최고봉의 시조를 남긴 문인으로
지난 밤 눈 갠 후에 사방의 경치가 달라졌구나.배 저어라 배 저어라앞에는 넓고 넓은 유리바다 뒤에는 첩첩옥산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계가 아니로다- 冬詞(동사) 中 [Landscape Times 지재호 기자]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이 지은 어부사시사 일부인 동사는 1651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나이 65세로 벼슬을 뒤로하고 전남 보길도에 들어가 살고 있던 중이다.휘몰아치는 붕당정치 속에서 유배 생활을 이어간 고산은 서울 출생이지만 본관은 해남이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
‘반지의 제왕’하면 뉴질랜드를 떠올린다. 또한 해리포터의 촬영지인 잉글랜드 Alnwick Castle과 Sydney의 미션인파서블2 영화촬영지는 방문객이 200∼300% 증가하였다. 그밖에 우리나라 영화촬영지로서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정동진의 모래시계 양양의 가을동화, 남이섬의 겨울연가 등이 있다. 관광객들은 영화 속 배경이 된
전남 완도군은 고산 윤선도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보길도에 관광정보센터를 건립한다고 11일 밝혔다. 완도군에 따르면 관광정보센터는 윤선도 유적 복원으로 늘어난 관광객의 효율적인 탐방안내 시스템 구축을 위해 26억원을 들여 오는 12월 완공을 목표로 세연정 입구에 건립된다. 센터는 한옥 건물 형태로 주변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지며, 내부시설은 보길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