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한 환경전문가”
“고산 윤선도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한 환경전문가”
  • 이수정 기자
  • 승인 2020.11.26
  • 호수 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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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부용동, 해남 수정동, 금쇄동 별서 등
오봉학당, 윤선도의 전통정원문화 답사
낙서재 건너편에 축조한 동천석실 ⓒ오봉학당
낙서재 건너편에 축조한 동천석실 ⓒ오봉학당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고려대 심우경 명예교수의 학맥을 잇고자 지난해 설립된 오봉학당이 지난 13일(금)부터 15일(일)까지 2박3일 간 9명의 당원이 참가한 가운데 고산 윤선도(1587~1671)가 34년간 은둔생활 하며 경영한 보길도 부용동과 해남 수정동, 금쇄동 별서의 ‘뜰들뫼 가꾸기’(전통정원문화)를 답사했다.

고산은 정조가 신안이 열린 풍수대가로 인정했듯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등 75수를 지어 국문학사상 최고봉의 시조를 남긴 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산은 당시 간척사업, 해산물 유통 등을 통해 당시 10대 재벌이었을 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17세(1603)에 진사 초시, 20세 승보시 장원, 향시 입격, 26세 진사시에 제일 급제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30세에 예조판서 이이첨을 탄핵하는 병진소를 올려 14년의 귀양살이를 했다. 34년 7개월 간 은둔생활을 하며 봉림대군, 인평대군의 사부로 제수되기도 하는 등 85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이번 답사는 고산이 꿈꾸던 이상향, 선계를 찾아 직접 꾸미는 삶 등 고산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자 ‘뜰들뫼 가꾸기’ 흔적이 남아있는 은둔지 중심으로 전문가 안내에 따라 진행됐다.

첫날 보길도에 도착해 고산 후손인 윤창하 완도문화해설사의 안내로 격자봉 아래 부용동 100만 여 제곱미터의 넓은 부지 안에 조성된 ‘뜰들뫼’를 답사했다.

고산은 벌써 400여 년 전 21세기에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ESSD)을 실천했는데 대부분의 부지를 순수자연으로 보존하고 전체 면적의 1%도 안 되는 네 곳을 조형자연으로 가꾸며 보전과 개발을 병행했던 것이다. 51세에 입도해 격자봉 산줄기가 힘차게 내려오다 멈춘 혈 터에 생활공간과 학문수양 공간으로 낙서재와 무민당을 짓고 거처했으며, 그 아래 아들 학관을 시켜 직접 집을 짓게 훈련시켜 곡수당을 지어 뜰을 꾸미며 가까이 살도록 했다.

낙서재 건너편 산 암반에는 동천석실을 축조하고 유식공간으로 즐겼으며, 부용동 입구에는 사랑채 역할과 수구막이 기능을 하도록 골짜기 물을 판석보로 막고 과학적으로 입출수를 관리하도록 꾸민 세연정과 세연지를 조영했다. 13년간 이곳을 6차례 드나들며 ‘어부사시사’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으며, 낙서재에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산이 가장 오랫동안 은거했던 곳이다.'

세연정과 세연지 ⓒ오봉학당
세연정과 세연지 ⓒ오봉학당

이튿날에는 일찍 부용동을 더 둘러보고 해남으로 건너와 연동마을 고택을 방문해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급 소장품을 감상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51년 앞선 그린 ‘대동여지도’와 직접 만들어 연주했다는 거문고, 손자 윤두서의 자화상 국보와 많은 유물들을 둘러봤다. 이 곳은 윤두서의 외손자인 다산 정약용도 인근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외갓집에서 책을 빌려 제자들과 500여 권을 저술한 장소다.

오후에는 근처 대흥사 일지암을 방문해 ‘동다송’, ‘다신전’의 지은이이자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1786~1866)의 대를 이어 다도를 연구하는 법강스님의 차 대접을 받았다. 이어 대흥사 법상 주지스님과 향문 중앙위원 스님의 배려로 템플스테이를 경험했다.

셋째 날에는 고산이 영덕 유배에서 풀려나 해남에 돌아 온 후 53세(1639)에 연동마을에서 5km 떨어진 수정동을 찾아 ‘인소정’을 폭포 옆에 짓고 은거를 시작해 54세에 뒷산에 꿈에 나타난 선계 금쇄동을 발견하고 ‘산중신곡’을 짓는 등 6년간 은거했던 별서 유적을 박종삼 향토사학자(전 영어교사)의 안내로 자세히 탐방할 수 있었다.

이 곳 또한 300여 만 제곱미터 땅 중 일부만 다듬어 은둔생활을 즐겼으며, 금쇄동의 입구 ‘불차’부터 험한 급경사지에 20여 곳을 골라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산들을 즐기며 은둔한 이상향을 경영했던 곳이다.

오봉학당은 이번 답사를 통해 16~17세기를 살았던 고산이 특출한 풍수전문가였고, 자연을 벗 삼아 은둔생활을 경영했으며, 동천복지를 찾아 이상향을 꾸민 최고의 조경가였음을,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한 환경전문가였음을 확인한 계기였다고 평했다.

심우경 교수는 “2022년 광주에서 개최되는 세계조경가대회 때 전 세계 조경가들에게 우리 선인들의 순수자연과 조형자연을 병행 경영했던 지혜를 널리 알리고 21세기 조경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선도국가가 돼야한다”고 밝혔다.

다만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선배 연구자들이 가시밭길을 헤치며 발굴한 연구업적을 무시하거나 표절하고 있는 현실이다”고 아쉬움을 표하며 “하루 빨리 고산의 뜰들뫼 가꾸기 터가 제 모습으로 복원돼 세계적 명원으로 각광받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한국조경신문]

이수정 기자
이수정 기자 grass999@latimes.kr 이수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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