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예 토원조경 대표
황신예 토원조경 대표

벌써 코 끝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 봄이다. 부쩍 풀어진 날씨에 잔뜩 힘을 머금은 꽃봉오리를 보며 사회 전반에 가드닝이나 정원에 대한 관심이 새삼 예전과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매년 초마다 발간되는 트렌드 관련 서적에서는 가드닝과 정원을 주요 키워드로 풀어내고 유명 유튜버의 주제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처럼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정원이라는 키워드가 어색하면서도 반갑다. 정원이 주목받게 된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수많은 답을 제시하였지만, 나름의 재해석으로 정원이 우리에게 다가온 속도의 의미를 한 번 곱씹어 보고 싶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팬데믹이 불러온 폐쇄적이며 가속화된 디지털 세상은 현실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요즘은 원한다면 하루 중 언제라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어디에서라도 하고자 하는 일에 접근할 수 있다. 이처럼 발달된 기술이 우리 삶에 자연스레 자리 잡은 까닭에 오히려 네트워크의 연결 속도나 기계의 반응 속도에 따라 삶의 속도와 리듬이 결정되는 듯하다. 간혹 나라는 존재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라간 디지털 사진들로 대변되기도 하며,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점점 디지털화되어갈수록 어쩌면 나는 비트(bit)로 구성된 데이터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하곤 한다. 아마 젊은 세대들이 뉴트로에 열광하고 손을 움직여 집중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찾는 이유들도 디지털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의 대안으로 직접 닿을 수 있는 물리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문화를 찾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급변하는 세상 속 변화에 따른 불안감 속에서 우리의 손과 몸을 통해 직접 자연과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속도로 맞춰 갈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정원이라는 완벽한 매개체를 통해서 말이다.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공간인 정원은 그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변화하는 시간대를 담은 유기체이다. 정원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의 일부로써 우리를 현실에 닿을 수 있게 한다. 정원 속에서 계절의 흐름이나, 식물의 성장 속도는 우리가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우리는 그저 속도를 늦추고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정해진 거대한 틀 안에서 움직이며 생명의 속도와 식물과 자연의 속도를 따르며 친숙한 환경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정원은 우리가 알던 순간의 정지된 장면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른 구성 요소의 속도와 시간을 반영한다. 낮과 밤의 길이에 따라, 빛의 세기에 따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공간의 환경은 제각기 다르게 흐른다. 정원의 시곗바늘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거의 알아챌 수 없는 식물의 행보에 맞춰 돌아간다. 어떤 식물은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자라다 가도 불과 몇 시간 만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식물은 우리와 다른 속도로 산다. 그렇기에 정원을 돌보는 일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정원은 본질적으로 돌보는 행위이며, 정원이 제공하는 안전한 물리적 공간은 정신적 공간과 고요함을 안겨주고 자신만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한다. 손으로 일하는데 몰두할수록 마음을 안정시키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돌봄을 통해 야생의 자연과 손질된 자연이 자유롭게 만나는 이상적인 공간이 정원이다.

즉, 정원 안에서 가드닝은 각각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완벽한 작은 세계를 살피는 단순하지만 경이로운 일이다.

이런 과정은 우리 삶과 다른 시간을 가진 물체들 사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른 시간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상실된 여러 상황에 대해 치유할 시간을 준다. 우리는 가속화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가드닝을 통해 자연에 한 발 내디딤으로써 자연의 일부와 연결된 경험을 하게 된다.

시대적 요구에 맞춰 가드닝과 정원은 잘 들어맞고 앞으로 더욱 급속히 성장할 것이다. 트렌드로써 가드닝과 정원은 이제 겨우 진입 단계이다.

빠른 속도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보다 비록 더 먼 거리를 내다보지는 못한다고 해도, 반응 시간을 안전하게 맞추려면 더 먼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자연에 단단히 뿌리내린 시간 속에 사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 결국 따라가기 마련이다. 속도를 가진 것들의 방향과 빠르기를 고민해 보며 먼 미래를 위한 가늠자로서 지금 우리 정원의 속도를 한 번 되짚어 보자.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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