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예 대표/정원디자이너
황신예 대표/정원디자이너

요즘 도심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정원들이 눈에 띈다.

멋들어진 공간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형식물 카페, SNS 명소, 가든 숍, 플렌 테리어 카페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 무심히 지나치던 도로가 풍경 속 교통섬이나 띠 녹지의 풍경도 사뭇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불과, 몇 년 전 교통섬에서 보이던 알록달록한 원색의 일년초 꽃묘화단은 오히려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도심의 자투리 공간이라 방치되기 일쑤였던 교통섬과 띠 녹지는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생활 속 정원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로 각광받아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아름답게 가꾸는 대상이 되었다.

고급 주택정원에나 쓰일 법한 상록수와 풍성한 그라스, 귀한 수입 품종의 초화까지 아낌없이 써서 디자인된 교통섬, 작은 정원들이 도심 곳곳에 펼쳐져 있다. 종종 시내를 다니다 보면 이 공간을 이렇게까지 정성 들여 만들었구나 감탄하며 시선이 머무른다.

물론 도심 속의 작은 공간들이 열악한 도로환경 사이에서 식물이 생육하기 적합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기존 관목의 군식보다 비교적 관리 요구도가 높은 초화류 화단이 과연 도로 조경으로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합리적인지는 판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아파트 중심의 공동주거형태로 한계로 개인을 위한 외부공간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을 위한 공간 서비스의 일환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원으로, 시선이 닿는 도로를 따라 생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이미 우리 눈에 익숙한 군식된 울타리 형태의 관목이 아니라 누군가의 정원 속에나 고이 모셔놓을 듯한 다양한 초화류 들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길가로 나왔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본 듯하지만 낯선 식물들이 눈길 닿는데 피어있다면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가 있다. 몇 해 전, 영국 첼시 플라워쇼를 관람했을 때의 일이다. 처음 본 쇼가든 작품은 관람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작품을 둘러싼 관람객들은 두 겹, 세 겹 쌓여서 정원을 감상하며, 정원을 안내하는 사람에게 부대끼며 물어본다. 여기 심긴 이 식물 이름은 뭐냐고? 우리 집 정원에도 이번엔 이 식물을 심어봐야겠노라고, 그러면 정원 작품을 설명하는 봉사자들은 작품에 들어있는 식물 리스트가 적힌 안내장을 나눠주며 친절히 식물에 대해 설명해 준다.

지금은 정원박람회가 꽤 자리 잡은 현재 우리에게 별로 새롭지 않은 상황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정원을 대하는 영국 사람들의 태도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정원에 대한 관심은 내가 관심 있는 식물이 정원에서 어떻게 배치되었는가라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식물, 내가 관심 있는 식물은 정원을 알아가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정원을 뜻하는 영어 ‘Garden’은 ‘Gan’과 ‘Oden’의 합성어로 ‘Gan’은 울타리나 둘러싸인 공간을 뜻하고‘Oden’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나타낸다고 한다, 동양의 정원의 원(園) 한자는 큰 입구(口)가 정원을 감싸고 있는 담장을 상징하고 그 안에 흙(土), 연못(口), 꽃(衣)을 담고 있다. 동, 서양의 의미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울타리, 경계의 의미는 정원과 사람 간의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 맺음의 출발은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마음을 끄는 낯선 식물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물은 정원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넓히는데 가장 쉬운 언어가 된다. 우리가 흔히 외국어를 배우며 다른 문화를 배우듯 하나, 하나 식물을 알아가며 나의 정원을 넓혀간다. 늘 가로수 아래 심겨있던 철쭉과 맥문동이 심어져 있던 자리에 어디선가 봤던 꽃, 누군가의 화단에서 예쁘게 봤던 식물로 바뀌었음을 알아차리고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은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다양한 식물재료를 사용한 공공 조경, 도로 정원이 곳곳에 펼쳐질수록, 식물이라는 언어에 노출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정원이라는 문화가 더 뿌리 깊게 자리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제 막 우리의 띠 녹지, 선형의 도로 녹지는 회양목, 철쭉, 사철나무 군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식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도로가의 삭막하고 덩어리진 경관이 억새, 원추리, 톱풀 등이 펼쳐지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경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지속적인 관리의 측면이나 도로의 열악한 환경에서 식물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도로 녹지로 진화, 공공 정원의 형태로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모르는 단계이지만, 다만, 반복되었던 관목들의 언어에서 다양한 초화류의 언어로 페이지로 넘기면서 다양한 식물의 언어와 문법을 통해 펼쳐질 정원 문화의 다양성을 기대해 본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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