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예 대표/정원디자이너
황신예 대표/정원디자이너

주로 하는 일이 정원과 관련된 일인지라 흥미가 생기거나 관심 끄는 일이 있으면 그 키워드 대신 ‘정원’을 대입시켜보며,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이 즐거운 나의 놀이이다. 요즘 귀 기울이며 마음에 담아둔 것은 ‘취향’이라는 단어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나 SNS에서 취향 존중, 취향 저격, 취향이라는 키워드는 엄청난 수로 검색되고 있다. 취향은 이제 유행을 넘어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내 취향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 동시에 내 취향은 은밀히 감추며 선택적으로 드러내는 일,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일, 이처럼 취향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취향인가? 급속도로 발전한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으며, 개인의 존중을 위해 동시에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취향 문화로 번져갔다.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취향에 열광하는 문화는 희소성 있는 것, 독특한 것, 좋아 보이는 것, 아름다운 것 등으로 대표되는 취향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런 문화가 떠오름과 동시에 드는 생각은 정원이야말로 작정자의 취향, 미학, 철학 등이 온전히 반영된 공간으로 취향이라는 트렌드가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가 아닐까?

사전적 의미로 취향(趣向)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의미한다. 17~18세기 유럽에서 취향은 대상의 미적 품질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칸트(Immanuel Kant)는 취향을 고귀한 안목과 미의식의 공통 감각이라 말하기도 하였고,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시스템에 따라 사회적 신분을 구별짓는 잣대가 된다고도 하였다. 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관점에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이지만 이 글에서는 취향이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에 한정하여 정원과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취향은 한 인간이 가진 특정 기호의 집합일 수도 있고 동시에 한 사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취향은 진공 상태에서는 발전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또는 살고 있는 시간적 배경이나 지리적 특성에 따라 형성되기도 한다. 주어진 크고 작은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자극을 통해 들어온 여러 감각을 이해하고 가꾸어야 비로소 좋은 취향을 가지게 된다. 이런 취향이 발전하는 맥락과 연계하여 정원을 통한 다양한 감각자극은 우리 신체와 느낌에 미치는 효과와 연계할 수 있는 취향의 집합체로 발전할 수 있다. 우선, 지배적인 감각인 시각은 빛, 색, 모양, 움직임 외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우리 주위 모든 것을 인지하는 수단이다. 화려한 색감의 꽃들과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정원은 생동감 넘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후각을 통해 전달되는 익숙함, 쾌적함과 같은 냄새는 감정, 학습,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시상하부로 직접 전달되어 다른 감각보다 직접적으로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새벽녘 축축한 이슬이 내린 풀냄새는 초가을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정원을 산책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그라스의 소리 나 새들이 지저귐은 청각의 자극을, 손끝에 닿은 꽃잎들의 부드러움이나 단단한 나무의 수피는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각적 자극들은 미적 감각을 통해 개인적인 취향 발전과 즐거움에 깊은 영향을 준다.

또한, 취향은 동시에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독창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취향의 발견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한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취향을 반영한 공간을 소설가 무라키미 하루키는 “개인의 회복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개인 회복공간은 바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취향의 방을 의미한다. 취향의 방에는 자신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회복이 필요할 때 그곳으로 들어가 마음껏 취하고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취향이란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재밌는 것, 사랑하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요소와 가장 잘 부합하는 정원은 조성하는 사람의 취향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취향도, 정원을 즐기는 사람의 취향이 머무는 완연한 안식처(Sanctuary) 로서 정원이다.

최근 정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하여 전국 곳곳에서 정원 관련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공 정원이나, 생활 가까이에 주민들과 함께하는 생활밀착형 정원,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정원 등등 다양한 공공 정원 프로젝트나 지자체 단위에서 추진하는 공모전도 많다. 동시에 정원 문화에 대한 경향도 자연주의 정원이나,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태정원이나, 유지관리가 용이한 정원 등 다양한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사회적 역할이나, 생태적인 당위성에서 벗어나, 그저 어떠한 옳고 그름 없이 본인의 취향만을 가득 담아낸 소중한 안식처(Sanctuary)로서의 취향의 정원을 온전히 그려보는 상상을 하며 한 번쯤 본인의 취향만으로 가득 찬 취향의 정원을 꿈꾸시길 바란다.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톨스토이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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