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으로 폐광촌 되살린 주민들…고한 마을호텔18번가 이야기
정원으로 폐광촌 되살린 주민들…고한 마을호텔18번가 이야기
  • 이수정 기자
  • 승인 2020.09.09
  • 호수 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이 호텔, 골목은 엘리베이터”
2년 간 마을재생 결실 맺어
마을호텔 지난 5월 개장해 운영
지난 5월 문을 연 고한 ‘마을호텔18번가’. 고한읍 18번가는 2~3년 전만해도 정주하기에 황량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1990년대 들어 탄광산업이 쇠퇴하면서 빈집도 늘어났지만 최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가 됐다.
지난 5월 문을 연 고한 ‘마을호텔18번가’. 고한읍 18번가는 2~3년 전만해도 정주하기에 황량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1990년대 들어 탄광산업이 쇠퇴하면서 빈집도 늘어났지만 최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가 됐다.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정선 고한읍 18번가에 가면 살고 싶은, 돌아오고 싶은 마을과 골목이 있다. 포토존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고한읍 18번가는 읍내에서도 유독 황량하고 어두운 거리였다. 화전민 약 10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산촌마을이었던 고한읍은 박정희 정부 시절 산업화 물결을 타고 탄광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경제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에는 인구가 6만 여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20년간 지역의 주요 경제축이었던 폐광산업이 저물면서 이곳 인구증가율도 급격하게 하락했다. 탄광산업을 대체하기 위해 1998년 강원랜드에 이어 하이원리조트 등이 잇따라 건설됐다. 인근 함백산야생화축제나 정선 민둥산 억새군락지 등 관광지에 인파가 몰렸으나 고한읍의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마을엔 빈집 수도 해마다 늘어났다.

지난 5월 고한읍 18번가에 ‘마을호텔’이 들어섰다. 프런트, 객실, 카페, 컨벤션홀, 식당 등 보통 ‘호텔’에 가면 볼법한 시설은 다 있다. 마을기업은 호텔프런트 격이고, 정원은 테라스, 골목카페는 조식 레스토랑, 마을회관은 컨벤션홀이 됐다. 호텔이 수직으로 시설물을 배치했다면 ‘마을호텔 18번가’는 골목에 수평으로 늘어섰다는 게 이곳만의 특징이자 차이이다.

마을호텔18번가 객실 입구
마을호텔18번가 객실 입구

프론트, 객실, 식당 등 숙박인프라 한 골목에

“마을 전체가 호텔” 콘셉트, 협동조합으로 운영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

‘마을호텔18번가’는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14개 상가 주민들이 공동 운영한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호텔’은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찾아든 투숙객들로 붐볐다. 호텔 투숙객이 객실에서 나오면 정원을 둘러보며 휴식할 수 있다. 조식은 객실이 있는 건물 바로 옆 카페서 먹을 수 있다. 마을호텔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인근 식당 및 상점에서는 할인을 받고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산다. 그야말로 “골목 전체가 호텔”인 셈이다.

빈집이 즐비했던 마을을 변신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주민들이다. 호텔객실이 있는 건물 두 채는 5년 동안 집 주인이 무상으로 빌려줬고,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마을회관도 무상 임대로 운영된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주택에 입주한 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기 좋고 아름다운 마을’로 처음 제안한 이는 김진용 마을호텔 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하늘기획 대표·고한골목길정원박람회 사무국장)다.

김 상임이사에 따르면 “20년 전 고한읍 인구가 1만 명이었다. 지금은 4000명에 불과하다. 폐광 이후 대체산업 차원에서 90년대 강원랜드가 설립되면서 20년 이상 지역개발사업으로 수조 원이 투입됐고 관광자원도 발굴됐다. 기업이 잘 되면 마을도 잘 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점점 빈집만 늘어났다.”

출판업에 종사한 김 상임이사가 18번가 골목으로 2017년 회사를 옮긴 뒤 빈 집을 단장하고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에 나섰다. 김 상임이사가 운영하는 ‘하늘기획’이 마을만들기 1호로 출발, 공간재생 스타트업 기업인 ‘이음플랫폼’이 이어 입주하면서 골목길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마을사람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주민들은 마을의 정체성을 살린 도시재생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철거’와 ‘재개발’이 아닌 ‘재생’과 ‘삶’의 공간으로서 ‘마을’을 경험해갔다.

마을을 기록하는 들꽃사진관의 이혜진 사진가 등 젊은 인구도 차차 유입되면서 어두웠던 골목은 활기를 되찾았다. 골목경관이 바뀌자 고한읍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 2년 간 스무 집 이상의 낡은 주택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아름다운 모습을 갖춰갔다.

이에 고무돼 지난해 고한읍이 ‘고한골목길정원박람회’를 제안하면서 주민 주도로 올해 두 번째 박람회를 치렀다. 마을 주민들은 주민과 행정 간 신뢰가 낳은 성공사례라 자평한다.

<br>
폐공가를 헐어 조성한 후원으로 조성한 마을정원. 호텔 투숙객들에게는 테라스로 이용되고 있다.

 

조식을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골목길에 있다.
투숙객들이 조식을 이용할 수 있는 카페

정원박람회 계기 주민들 변화폭 커

마을호텔 2호점 운영 계획, 10호까지 확장할 것

초창기 18번가에서 마을만들기를 시작할 때만해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저조한 편이었다. 노후주택을 가꾸면서 경관이 깔끔하게 개선됐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정해진 예산과 계획이 선행돼도 실행주체인 ‘주민’의 자발적인 의지가 없었다면 골목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전국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어떻게 2년 만에 마을이 바뀔 수 있었는지 놀라워한다”며, 주민들이 주체로 나서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마을을 만들기 위해 지역아카데미를 개최하고 다양한 콘텐츠의 마을 행사를 기획하면서 “만나서 대화할 일”도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할 일”도 더 많아졌다. 청소나 전선줄 정비 같은 주민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자투리땅과 노후한 시설물을 정비하면서 골목길과 담벼락은 점차 ‘정원’으로 변해갔다.

결정적으로 지나해 처음 치른 박람회는 마을재생의 증폭제가 됐다.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마을만들기 범위를 고한읍 18번가에서 인근 5개 마을로 확장했다. 올해 박람회에 참여한 주민들도 지난해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 주차장을 낀 위험한 인도는 정원으로 재탄생했고, 호텔 후원인 폐공가는 올해 새롭게 골목정원으로 조성됐다. 광부들이 석탄을 실어 나르던 광차나 녹슨 화로는 화분이 됐고 세탁소 주인은 청바지를 소품으로 재활용해 정원을 꾸몄다.

김진용 상임이사가 운영하고 있는 하늘기획. 고한읍 18번가의 빈집을 처음 리모델링했다.
고한읍 18번가 골목에 자리한 공간재생 스타트업기업인 이음플랫폼과 마을의 시간을 기록하는 들꽃사진관

박람회에서 조정자 역할을 한 김 상임이사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바뀌었다”는 점을 박람회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작은 규모지만 올해에는 1년 동안 내 집 앞을 아름답게 가꾼 주민에게 시상하는 ‘마이가든 어워드’도 새롭게 진행했다. 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결과다.

김 상임이사는 “마을호텔을 운영하면서 쌓인 수익금으로 마을호텔 2호점을 운영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집주인이 직접 운영할 것이다. 빈집은 개선되고 수익도 생기는 구조다. 앞으로 객실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5년 안에 10개 더 늘리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고한읍 18번가 골목 풍경
고한읍 마을호텔18번가가 있는 골목에는 호텔투숙개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객실, 예약프론트, 식당, 카페, 이발소등 다양한 시설들과 상점들이 골목을 따라 수평으로 늘어서 있다.  

 

마을호텔 객실 밖에서 바라본 모습 
18번가와 인접한 야생화마을

 

[한국조경신문]

이수정 기자
이수정 기자 grass999@latimes.kr 이수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