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림문화의 현대적 향유한국의 원림문화는 약동하는 문화일까, 망실되는 문화일까? 아니면 한국전통조경학회나 문화재청,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다루는 향상되는 고급 연구 주제일까? 아니면, 고루하고 한물간 구태의연한 소외의 지대를 보존하는 영역일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이를 대표하는 학회는 ‘한국전통조경학회’이다. 그러니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통조경’이란 용어로 통용하고 있다. 이러할 때, 그 ‘전통’이라는 용어와 ‘조경’이라는 용어가 합쳐진 애매함이
시경(詩境)은 시의 경지에 이르는 흥취이고 온전한 감흥이다.시경은 시의 경지에 이르는 흥취이다.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경치나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흥취 있는 풍광을 말한다. ‘절로 시 짓고 그림 그리고 싶어지는 미적 정취’인 시정화의(詩情畵意)이고 의경(意境)이다. 시흥이 고취되어 풍광을 읊는 시 창작의 경계에 도달하는 온전한 감흥이다.지난 연재에서 "일찍이 원림 공간에 걸린 대련이나 제영과 시는 ‘형상 너머의 형상’인 상외지상(象外之象)으로 의경의 공간을 표현한다. 그래
가을비가 주는 안개의 풍광은 신선이 놀다 간 흔적가을비 심하게 흔들린다. 우산대를 똑바로 세우는 게 어렵다. 산발로 흔들린다. 추분 지나면 초목에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인데, 이 지점의 가을비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다. 수시로 흔들리는 게 바람의 항로일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일지 아니면 둘 다일지 모른다. 평일 아닌 휴일의 원림 향유는 의지와 상관없다. 들쑥날쑥 산만하다. 월요일이라는 기점에서 마땅히 진진한 의미의 변화를 꿈꾼다. 새로움은 곧 변화이고 이윽고 구태이다. 그러니 원림은 늘 변하지 않으면서 자세히 보면 지극정성의 다정
고산 윤선도의 ‘산수지벽’고산 윤선도(1587~1671)의 ‘산수지벽’은 시경, 성과 경, 출처관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산수지벽(山水之癖)이 있어 재물을 속바치며 원림을 조성하고 경영한 고산이다. 무엇이 고산을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굳어진 버릇이며, 지나치게 즐기는 병을 의미하는 ‘벽(癖)’에 빠지게 하였을까. 우선 원림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천천히 완만하게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로 거닐면서 시경(詩境)의 세계에 드는 행위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고산에게 시
포화용수량의 원림을 수용하는 증폭된 호수면갈수기의 폭우는 급하다. 유속도 빠르다. 줄어든 저수지의 빗금을 금세 채운다. 새로운 호수풍광에 놓인다. 산비탈까지 증폭된 수면 안에 갈수기의 빗금을 간직한 채 남실거리며 찰랑찰랑한다. 원림의 열음정(悅音亭)에서 호수를 굽어본다. 숲의 나무 사이사이로 푸른 수면이 번뜩이며 일렁거린다. 원림 바깥에서 갈급한 기별 하나 접속한다. 먼발치에서 참나리 붉게 타올라 주변 사람의 얼굴이 화끈화끈 볼 발간 새악시란다.사실 갈수기를 채웠던 폭우의 며칠 동안은 몰랐다. 이후부터 원림은 계속 땡볕이었다. 바람
해남 ‘삼산막걸리 구도’와 만나다비 온다는 예보에도 감행한 전통건축 ‘수곡포럼’의 해남과 보길도 답사는 운 좋게도 우산 없이 2박3일을 마칠 수 있었다. 다녀오고 나니 물 폭탄 같은 비가 이틀을 내리 붓는다. ‘조원동 원림’의 저수지는 가득 찼다. 보에서 흘러내는 물소리가 폭포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른다. 호안에 식재된 버드나무는 물위에 공처럼 일정 간격으로 운율을 갖춘 채 줄기는 묻히고 수관만 떠있다.이렇게 비 내린 후면 해남 수정동 원림과 금쇄동 원림이 떠오른다. 비
‘열린원림문화’ 향유는 우아한 거닐기새벽 일찍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원림에 다가설 때가 있다. 아뿔싸! 벌써 내려오는 사람을 본다. 이런 기시감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를 불가사의라고 일컫는다. 새벽에만 생기지 않는다. 밤늦게 내가 마지막 야간 산행이라 여기고 올라서는데 부스럭 하산의 인기척을 만나면서 급하게 ‘아! 이건 정말...’라면서 혼자 중얼대는 방언. 이때의 언어는 외계어였을 것이다. 동틀 무렵 – 임천한흥.178 / 온형근 임천으로 어둑한 발걸음 헛디디지 않아방금 터
청명과 곡우 사이의 원림에서 3시간을 거닐다봄이 꽤나 지나 여름을 향하고 있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이 여름의 시작이라는 입하(立夏)였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봄 계절을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청명과 곡우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전개되는 봄 이야기이다(2022.4.15.). 초고를 쓴 시점과 이 글의 발표 즈음은 한 달여 차이가 난다. 한 달 전의 ‘계절의 풍광’을 다시 새기자는 속셈이다.한 달 전 숲은 연두로 빈틈없이 메워졌다. 처음에는 ‘조원동 원림’의 웅크리고 앉아 되돌아보는 정자인
원림을 경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고산 윤선도는 머무는 곳마다 ‘산수치’라 자평하며 도대체 고칠 수 없는 질병처럼 ‘원림 경영’을 실천하는 자신에게 놀란다. 은근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흥분하고 탄복하며 감탄과 경악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자기 스스로 못 말리는 열정과 취향의 세계에 든 것임을 진단하고 이를 마땅히 ‘허허~거참’ 하면서 받아들인다. 계를 받듯 내 안의 부름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거부하지 않고 그러함이라며 자연스러움으로 치환한다. 그게 고산을 조선 최고의
고산 윤선도의 원림은 이나 의 해남과 어부사시사의 보길도, 그리고 양주 고산 원림으로 나눌 수 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미의식을 와 결부시켜 해석하면 유난히 ‘신명’의 미의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계절이 겨울이니 어부사시사의 「동사」를 하나 떠올려 신명으로 바라보는 풍광을 향유한다. 붉게 물든 벼랑 푸른 절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배 세워라 배 세워라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으려나 못 낚으려나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쪽배에서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채 흥에 겨워 앉았노라
「열린 원림 문화」 향유의 첫 단추를 ‘송간세로’로 시작한다. 송간세로(松間細路)는 조선 성종 때의 정극인의 「상춘곡」에 등장한다. 불우헌 정극인은 벼슬의 영광은 없었으나 선비의 삶을 살았고 검소와 소박으로 이 나라 가사문학의 첫 장인 「상춘곡」을 창작하였다. 32행부터 34행의 내용에 송간세로의 원림 풍광과 원림에서의 행위가 드러난다. 32 松間 細路에 杜鵑花(두견화)를 부치 들고,33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34 千村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려 잇네.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