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원림을 경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산 윤선도는 머무는 곳마다 ‘산수치’라 자평하며 도대체 고칠 수 없는 질병처럼 ‘원림 경영’을 실천하는 자신에게 놀란다. 은근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흥분하고 탄복하며 감탄과 경악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자기 스스로 못 말리는 열정과 취향의 세계에 든 것임을 진단하고 이를 마땅히 ‘허허~거참’ 하면서 받아들인다. 계를 받듯 내 안의 부름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거부하지 않고 그러함이라며 자연스러움으로 치환한다. 그게 고산을 조선 최고의 조경가로 태어나게 한 기운의 원천이다.

고산 원림 경영의 위대함은 고산이 추구한 행복의 가치인 매일매일 성찰하며 원림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원림 소요유를 바탕으로 구축된 사유의 세계관이라고 단정적으로 되물을 수 있겠다. 수없이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원림에 구축하는 것이 ‘고산 원림 경영’의 핵심이다. ‘경영’이라는 인문적 소양을 자연에서의 소요유로 갈음한다. 원림 경영은 마음을 기르는 사유의 일이며, 소요유는 ‘놀고 쉬며 즐거움’에 드는 ‘열린원림문화’ 향유에 스미는 일이다. 여기서 변환되는 창조성의 크기는 무량하여 잴 수 없다. 오늘날 책상에 앉아 같은 소프트웨어로 산출되는 결과물에 의존하는 생산성을 떠올린다. 다양성과 획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뜻깊은 차이가 생긴다.

경영은 매일 반복되는 업무이듯 원림 소요유 또한 하루도 거를 수 없다. 원림은 계절마다 절기마다 매일매일 또 다르게 피고 지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존의 확인이다. 고산 원림의 진면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망이 넓게 펼쳐지는 대상 지점에서 겹겹 중첩된 산수 자연의 공간에 ‘자리’를 찾아 입지한다. 이곳 원림에서 ‘거점 공간’을 확보하여 시를 짓고 소요하며 풍경을 향유하는 산수 자연 안에서의 ‘시경(詩境)’ 방식이 고산이 원림을 경영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는 고산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과 해남의 금쇄동 원림에서도 적용되는 고산만의 원림 경영 방식이며 해석이다.

 

고산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Shape Grammar)

고산의 원림조영은 시 창작과 같은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 시를 짓기 위한 경관이다. 경관을 통한 시 짓기이다. 시문을 통한 원림조영의 기법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원림조영양식인 시경을 다룬 대표적인 인물이 윤선도이다. 윤선도의 시에서 원림조영의 시경을 탐구할 수 있다. 그가 직접 원림조영에 관하여 기술한 ‘금쇄동기’, 보길도 부용동 원림에 대하여 상세하게 남긴 후손 윤위의 글인 ‘보길도지’를 통하여 작정기에 버금가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고산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Shape Grammar)는 자연 속에 은둔적 사유의 공간을 조성하여 ‘거점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와 상호작용을 시경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림조영의 핵심 개념이 실재적이고 진행 과정과 변화 단계의 형태구축문법이 선명한 독보적인 조경가이다.

김육(金堉, 1580~1658)은 ‘잠곡유고(潛谷遺稿)’의 「구루정기(傴僂亭記)」에서 원림조영의 쉐입 그래머를 원림에서의 흥취와 즐거움으로 표상하였다.

 

저 강호의 경치와 교외의 흥취가 즐겁기는 하지만 항상 거기에 머물러서 살 수는 없으니, 한번 가고 두 번 가는 사이에 해가 이미 짧다. 그러니 어찌 이곳에서 잠자고 거처하며 이곳에서 먹고 숨 쉬면서 천변만화를 보며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하고 사시팔절(四時八節)에 항상 창가에서 마주 대하는 것만 같겠는가.

[출처 : 정선용(역), 「구루정기」, 잠곡유고 제9권 서, 한국고전종합DB]

 

원림에 ‘거점 공간’이 있어서 잠자고 거처하며 먹고 숨 쉬면서 사시팔절의 천변만화를 보면서 마주해야 하는 것이 ‘원림 경영’임을 말한다. 사시팔절(四時八節)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입춘, 입하, 입추, 입동,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여덟 절기를 말한다. 누정도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육의 원림인 ‘구루정 원림’은 석간수로 갓끈을 씻을 만하고 대나무를 쪼개 만든 수로로 연못 물을 대어 연꽃을 심고 물고기, 학을 기르며 만물을 친구로 삼아 적료하고 고요한 풍광이 가득한 곳이다.

 

원림을 경영하는 이유

‘열린원림문화’ 향유를 위하여 가까운 산림에서의 생태 감수성을 고양하며 원림의 경영과 원림조영에 대하여 접근 방법을 찾는다. 앞의 연재에서도 끊임없이 ‘원림 리부트’로서의 ‘열린원림문화’의 새롭고 다양한 상상력을 도출시켰다. ‘원림 문화’가 고리타분한 과거의 흔적과 문화유산으로 인식되는 차원을 도발하여 일깨우는 것이다. 현대 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원림 문화를 적용하여 실천하겠다는 시도이다.

 

 

사실 ‘열린원림문화’의 발상은 2021년 3월 4일부터 시작한 1시간~3시간여의 ‘산행출근’에서 비롯되었다. 램블러(Ramblr)라는 앱을 사용하여 소요시간과 거리 등을 기록하였다. 1년 동안 207회를 마쳤고, 2022년 3월 4일 다시 ‘산행출근시즌2’를 시작하여 진행 중이다. 단순한 반복의 육체적 행위인 ‘산행출근’은 많은 생각과 깊은 사유에 들게 한다. 어느 날부터 원림의 영역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원림 경영으로 변화하였으며 지리와 인문이 보태졌다. 원림에서의 여유롭고 한가한 흥취에 푹 빠지게 되면서 실시간 원림에서의 임장감 있는 연작시가 창작되었다. 그렇게 ‘임천한흥’ 연작시 또한 170여 편에 진입하였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은 ‘열린원림문화’를 즐기는 이유를 간결하게 표상한다.

 

원림의 이유 –임천한흥.167

/온형근

 

원림을 찾아 나서는 날은

가득가득 매일매일 눈부신 아름다움

숲의 움직임과 새삼스러운 즐거움

훌쩍 다가선 아득한 시원의 꿈

 

그래서 원림을 즐긴다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야 했고

마침내 숲이 되는 원초의 순환

원림은 얼추 탐색하는 게 아니라

나를 그러함에 두어 만끽하는 일

 

원림은 너와 나의 손때 어린 정다움

내 발길 머물며 숨 나눠 쉬는 곳

뭇 생명이 동생同生으로 갈아입는 순간

(2022.2.25.)

 

어느 순간 원림에 나서거나 원림을 즐긴다는 말이 가식처럼 되돌아온다. 매일 그 자리에 함께 한다. 나서지 않았으니 돌아올 일 없고, 즐기지 않으니 조용하고 잠잠한 일상의 숨 쉼이다. 사시팔절 뿐 아니라 세밀한 이십사절기 모두 마침내 나를 그러함에 둔다. 생태적 감수성을 만끽한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 원림에 놓여 있으면 눈부신 아름다운 감성이 넘쳐 매일매일 새삼스럽다. 그러다 어느 날 훌쩍 혼자 시원의 숲으로 나서기도 한다. 이런 날은 수렵하듯, 채집하듯 육신의 움직임 또한 원초의 발길로 내딛는다. 원림을 찾아 나선다. 숨 헐떡이면서 숲의 뭇 생명과 동류감을 느낀다. 노래와 환희의 속삭임으로 갈아입는다. 원림에 손때 어린 정다움이 있다. 나아가기 바쁠수록 머물 곳이 필요하다. 원림의 뭇 생명과 함께 숨 나눠 쉬고 있는 깨달음을 통하여 우주에서의 이유 있는 존재감에 다다를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