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는 55세(1641)에 지은 금쇄동기(金鎖洞記)에서 “나의 산수에 대한 고질병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겠는가(夫我山水之癖 不已過乎)”라고 원림 조영과 경영 행위를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라는 뜻으로 ‘벽(癖)’이라고 지칭한다. 병들었다는 ‘벽(癖)’은 오늘날의 신조어인 ‘덕후’에 해당하는 접미사 용법으로 한 분야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 몰두하는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벽’은 미친다는 ‘광(狂)’, 어리석다는 ‘치(痴)’로도 불리었다. ‘산수(山水)’에 대하여 고칠 수 없는 병이 든 조선 최고의 원림 조영가인 윤선도의 ‘벽’은 책에 빠진 이덕무나 고양이 그림에 빠진 변상벽에 비하면 ‘벽’, ‘광’, ‘치’의 경지에 있어서 규모와 장면에서 큰 차이를 지닌다.

금쇄동기는 전남 해남의 삼산면, 현산면, 화산면에 걸쳐 있는 병풍산 주변의 수정동, 문소동, 금쇄동 원림 조성에 대한 기록이다. 이곳을 매일 걷고 또 걸으며 원림을 경영하고 즐긴 것이다. 거처인 녹우당에서 가까운 곳은 0.6㎞, 먼 곳은 약 7㎞ 정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안목을 갖춘 자가 여기에 이르면 신선의 구역에 들어가는“ 문호라고 풍광을 묘사하였다.

 

금쇄동 안에 꽃들이 활짝 피고 / 金鎖洞中花正開

수정암 아래 물소리 우레 같네 / 水晶巖下水如雷

유인의 신세 일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 幽人誰謂身無事

죽장망혜로 날마다 왔다 갔다 하는걸 / 竹杖芒鞋日往來

<「우음(偶吟)」, 고산유고, 한국고전종합DB>

 

59세(1645)의 한시 「우음」을 보면 금쇄동과 수정동을 가고 오는 일로 날마다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스틱과 등산화를 챙겨서 산행을 하지만, 옛사람은 대지팡이와 짚신을 챙기는 죽장망혜(竹杖芒鞋)로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걷는다는 의미이다. 그 걷는 길은 평지만 있는 게 아니라 오르막 내리막 산길이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다. 속세를 피해 조용히 사는 사람인 유인(幽人)이라 한가할 것이라 말하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완만하게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경지를 터득한 것이다.

윤선도의 원림 행위를 견인하는 것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풍광이 아니라 직접 온몸으로 체험하는 ‘걷기’에 달려있다. 걸을 때 모공이 활짝 열려 능동적 명상 상태가 되며, 걷는 자체의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고 숨을 가다듬어 호기심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몰입이 이루어진다. 17세기 윤선도의 원림 경영은 걷기의 흥취를 고양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다. 원림에서의 한가로운 흥취인 임천한흥(林泉閑興)의 묘합을 원림 경영의 이상향으로 지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매일 죽장망혜를 챙기는 일이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유의 지점에서 이끌어 낸 것이 ‘열린 원림 문화’이다. 한국의 원림 문화가 연구자의 논문에서 먼 옛 이야기로 치부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소비되고 향유되는 살아있는 문화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스틱과 등산화를 챙겨 즐겨 찾는 산행을 한국정원문화(韓國庭苑文化)의 원형을 수용하는 차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언제라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일상에서 원림을 공유하며 즐겁고 풍요로운 일상을 추구한다. 이를 통하여 생태 감수성과 도시의 생태적 삶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정원문화생활로 진입할 수 있다. ‘죽장망혜’를 챙기면서 가까운 원림을 향유하며 삶에 대하여 질문하고 상상하며 성찰할 수 있다.

소한을 지난 영하의 추위를 따라 미음완보하였던 ‘조원동 원림’의 향유에서 죽장망혜로 연작시 ‘임천한흥’ 한 편을 거두었다.

 

죽장망혜 – 임천한흥.158

/ 온형근

 

대지팡이와 짚신을 챙겨 원림을 소요유한 옛사람처럼

스틱과 등산화를 갖춘 지금은

한술 더 떠 마스크로 겨울의 속 깊은 날숨

눈썹 젖으며 성에꽃 하얗게 들어선다.

 

원림 초입 내원재는 소한 추위 받고서도

백두고원 다다르기 앞서 윗옷 단추를 열게 하고

기어코 마음을 꼬드겨 벗긴다.

팔뚝에 꽂아 걸고 고개 들면 원로분지

허리 유연한 아름다운 노년 활동 시간을 스을쩍 통과한다.

 

오솔길 솔갈비를 스틱으로 긁어내는 이를 산중에서 만난다.

눈이 와 속으로 얼음판 만들 것을 아니까

언젠가 한 번은 미끈하면서 혼이 나간 듯

넘어질 뻔한 혼비백산이 떠올라

동지 이후부터 소한 지난 지금까지도

내키는 구간마다 긁고 있다.

 

죽장망혜로 도를 깨우치는 중이다.

(2022. 1. 7. 9:38)

 

‘열린 원림 문화’의 향유는 걷기를 기본으로 한 다종다양의 사유를 내용으로 한다. 형식은 산행이고 걷기이며 지역 산림자원을 통한 ‘시민원림생활’이지만 내용은 정신적, 물리적, 신체적 행복과 만족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위 연작시에서 ‘내원재’, ‘백두고원’, ‘원로분지’, ‘(참)오솔길’은 ‘조원동 원림’이라 이름 붙인 시민원림생활의 일상에서 장소성으로 명명한 지명이다. 이러한 지명을 고착화 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쉽게 명명하고 자신의 생태적 감수성과 함께 자유로운 사유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 매일 오르고 내리는 원림 향유를 꿈꾼다. 매번 같은 곳이라 하여도 그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은 무엇일까. 익숙한 행위이지만 늘 낯설고 설레는 것은 생태적 감수성 탓이다. 발바닥을 자연의 흙길에 맡기고 걷는 자체가 시원의 먼 태곳적 경험으로 되살아오기 때문이다. 속 깊은 날숨으로 눈썹에 성에가 들어서는 소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오르다 덥다 싶으면 윗옷을 벗어 팔뚝에 걸치고 걷는다. ‘움직일 때는 벗고, 쉴 때는 입는다.’는 기본에 충실할 뿐이다. 동지 이후부터 연속 만나는 어떤 이가 있다. 아주 소박하게 스틱 2개를 포개어 곳곳의 구간에 있는 솔갈비를 오솔길 가장자리로 긁어낸다. 누가 시키는 게 아니고 누군가 동참하는 일도 아니건만 오롯이 꿋꿋하다. 그는 그의 죽장인 스틱으로 마음을 수양하고 있다. 아침에 산행 나서면서 죽장망혜를 챙긴 순간부터 도를 깨우치고 있음이다. 그에게 원림은 선방(禪房)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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