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원림 입구의 내원재에 이르면 겨우내내 고요해서 가끔 까치 소리나 듣는다. 그러다 입춘에 이르면 체감되는 일상이 다르다. 온갖 미물이 꿈틀대며 기지개 편다는 입춘 아니던가. 여기저기 수런대며 생동의 기운이 꿈틀댄다. 여태 잠잠하며 비밀스럽게 움직이던 멧비둘기는 둥지에 알을 낳고 암수가 들썩인다. 조금 오르다 만난 청딱따구리는 팔목 굵기의 가지를 골라 두둘기는데 저러다 골 터져 졸도하시겠다. 열린원림문화 향유로 미음완보히다가 임천한흥에 겨워 쓴 딱따구리 작품은 이렇다.

 

산중 적선 – 임천한흥 / 온형근

 

삼부 능선 초입에서 청딱따구리 반긴다.

그의 소리는 길가로 나오다 묻힌다.

대신 그가 노래할 때 다급한 도시 출근 차량의 바퀴 소리가 버무려졌다.

 

딱따구리가 비옥한 숲 깊숙이 근원직경과 말구직경 사이에서

목질부를 사정없이 쪼아댈 때,

고운의 현묘지도를 막힘없이 그윽하게 진설할 제,

비로소 산중의 입구와 혈처를 읊을 수 있다.

 

애초에 무주공산이었을 이 산 저 산

왕조 시대 공신끼리 너 가져 내 가져

이후 경계 측량하여 만든 지적이

콘크리트 말뚝에 녹슨 철조망이니

인간끼리의 적선은 이미 노회한 욕망이고

딱따구리의 적선은 목탁의 독경이다.

 

청산과 유수는 푸르르고 그치지 않으니

저들의 꾸짖음도 유현하고 청정하여

가진 자가 더 가지려는 적선을 위선이라고

딱따구르르 딱따구리리 수보리여 반야를

나무 쪼며 계를 만들 때 절로 숙연한데

멧비둘기 묵직한 저음

원림의 심장을 두들긴다.

 

(2021. 04. 08.)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행위는 산중에서의 적선과 닮았다. 일상 회복을 위하여 원림의 생산적인 공간 구축에 기여할 때라고 일깨운다. 도시의 원림은 섬처럼 에워싸였다. 그래서 열려 있다. 일상의 문명이 그대로 여과없이 스민다. 차량 소리가 들려오고 아파트의 불빛이 새어든다. 일상의 생활 문명이지만 원림에 스며들면서 생태 문명으로 숙연해진다.

딱따구리는 도통하여 경계 허문 고승의 목탁으로 계를 만들어 청정 도량으로 이끈다. 들을수록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는 절로 숙연하여 내면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한다. 경건하다. 멧비둘기가 삼십만평의 원림에 굵고 짧은 단호한 울림으로 원림 입구를 에워싼다. 그의 묵직한 저음은 원림의 심장을 두들기는 북소리를 닮았다.

입춘에 대한 고산 윤선도의 사유는 시1편, 산문 1편으로 엿볼 수 있다. 그중 산문은 「명절에 대한 대책문〔對名節策〕」으로 두 개의 복숭아나무 판에 축문을 써서 문 옆에 걸어 사기를 막는 입춘의 풍속을 말하였다. 시는 「입춘에 축원하는 시를 지어 계하에게 주다」가 있는데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재앙이 변하여 오랑캐 망하는 해요 / 禍轉亡胡歲

천심이 돌아와 만물을 기르는 때라 / 天回煦物辰

솔과 대의 매서운 서릿발도 풀어지고 / 松篁霜凜解

난초와 혜초의 이슬 꽃이 가지런해라 / 蘭蕙露華均

동궁(東宮)에는 어진 바람이 돌아오고 / 靑邸仁風返

대궐 뜰에는 맑은 기운이 새롭고녀 / 彤庭淑氣新

소신도 그동안의 눈물 거두고 / 小臣收舊涕

태평의 봄날을 노래하나이다 / 歌詠太平春

「춘축증계하(春祝贈季夏)」, '고산유고' 제1권 시(詩)

 

이 시는 유배 이듬해 53세(인조17년, 1639)가 되는 입춘에 쓴 작품으로 변할 것은 변한다는 변화에 대한 뚜렷한 신뢰와 희망을 표상한다. 재앙의 시절에서 만물을 기르는 순하고 가지런한 세상으로, 매서운 서릿발에서 맑은 기운 새로워지는 변화에 부응하여 그동안을 거두고 새로운 봄날을 시작하겠다는 시이다.

계하(季夏)는 이해창(李海昌, 1599~1655)의 자이며, 고산 52세(인조16년, 1638)에 강화도까지 와서 임금을 알현하지 않았다는 ‘불분문(不奔問)’의 죄로 경상도 영덕 유배에서 같은 처지로 만난 시 창작의 예술적 동지이다.

고산은 입춘을 노래하면서 원림을 조성하며 임천한흥을 즐기는 경지에 들기를 소망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원림 경영 행위에 몰입한 것이다. 어쩌면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으로부터 최선의 방어 전략으로 원림문화를 향유하고자 한 것이다. 고산은 픙류와 해학과 신명으로 자연과 소박하고 평온하게 치유의 삶에 들기로 가닥을 잡는다. 영덕 유배지에서 쓴 입춘 즈음의 시는 그러한 원림 경영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시상인 것이다.

실제로 고산은 53세에 해배되어 해남 수정동에 ‘남이 날 비웃는 정자’라는 뜻으로 명명한 인소정(人笑亭)이란 정자를 지어 폭포를 노래하였다. 어쩌면 해남의 수정동, 금쇄동, 문소동 원림은 영덕 유배 동안의 심기일전에 의해 원림 조성 계획이 구상되고 결정되었음이 합리적 판단이다.

(왼쪽) 인소정 추정도, (오른쪽) 수정동원림의 추정복원도(자료: 400년 정원의 비밀을 풀다, YTN 사이언스, 2020.09.14.)
(왼쪽) 인소정 추정도, (오른쪽) 수정동원림의 추정복원도(자료: 400년 정원의 비밀을 풀다, YTN 사이언스, 2020.09.14.)

인소정은 수정동 원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경관축의 역할을 한다. 수정동 원림을 시경으로 표상한 시는 더 있다. 인소정을 지은 다음해인 54세(인조18년, 1640)에 한시 「우후희부취병비폭(雨後戲賦翠屛飛瀑)」에서는, ‘어쩌다 이런 지극한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라는 자조에 가까운 해학의 심미의식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요석암 위의 비단 병풍처럼 둘러싸인 병풍바위는 수정암을 말한다. 또한 55세(인조19년, 1641)에는 창암(蒼巖)이라 하여 그곳에서 달구경을 하는 정경을 「완월(玩月)」이라는 시에 읊었다.

인소정을 짓고 3년 후인 56세(인조20년, 1642)에 산중신곡 「만흥」에서 ‘내 뜻 모르는 남들은 날 비웃는다고 한다마는’이라는 시를 남긴다. 이 수정동 원림의 인소정 경관의 경우를 보면, 원림 조영을 먼저하고 몇 년을 그 경관을 통하여 사유하고 임천한흥(林泉閑興)하면서 시경을 무르익힌 다음 시를 창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해에 고산은 산중신곡 18장을 모두 짓는다.

입춘 지나고 우수 지나니 원림의 저수지 얼음이 드문드문 쩍쩍 갈라지는 수준을 넘어섰다. 마하의 속도로 음속을 내며 달리는 제트기의 그것처럼 우레 같고 빨라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공간을 이동한다. 원림에서의 찬란한 한 순간이 소리의 풍경이 된다. 소리가 풍경(Soundscape)이 되는 음향 생태의 지각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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