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큐피드의 심술의 불똥이 튀어 졸지에 나무가 된 처녀가 있다. 하지만 이 처녀(나무)의 가지는 신의 사랑을 받아 두고두고 푸르러 승리한 자들의 머리 위에 대대로 얹혀졌다. 처녀 이름은 다프네고 처녀가 변한 나무는 월계수(月桂樹; laurel wreath)다.

이 처녀나무(?)는 아폴론신의 숭배를 받아서 각종 경기와 종교의식에서 승리자들에게 씌워주는 영광스러운 관의 재료가 된다. 월계수(혹은 올리브 나무) 가지를 꺾어 만든 이 관을 나중에는 줄리어스 시저도 썼고, 나폴레옹 또한 황위에 오르며 사용했다고 한다. 초기 올림픽에서는 승리자에게 메달을 준 게 아니라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월계수는 지금도 서양권에서 문장의 도안에 널리 사용되는 나무이다. 또 영국 왕실에서는 훌륭한 시인에게 월계관을 내리는 관습이 있는데, 월계관을 받은 시인을 계관시인(Poet Laureate)이라고 한다. 이렇게 처녀나무 월계수는 승리와 변치 않는 영광을 상징한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1625년 작 ‘아폴론과 다프네’는 그리스신화 ㅅ속 최고의 미남신 아폴론의 슬픈 첫사랑을 다룬 그림이다. 그림의 오른 쪽에는 서서히 나무로 변해가는 다프네와 망연자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실연한 아폴론의 절망이 있다. 그림 중앙에는 이 사건의 원흉(?)인 큐피드가 자리 잡았다. 그 아래로 비탄에 빠진 다프네의 아버지, 강의 신 페네이오스가 보인다. 이 비극적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아폴론신이 사랑의 신 큐피드를 잘못 건드린 거다. 자기를 꼬마라고 무시하며 놀린 아폴론에게 화가 난 큐피드는 사랑의 덫을 놓는다. 아폴론에게는 무조건 사랑에 빠지는 금화살을 쏘고 그의 짝사랑 상대인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에게는 거절의 납화살을 매겼다.

아폴론은 태양을 담당한 신이고 냉철한 이성을 지닌 예언의 신이다. 하지만 합리주의자 아폴론도 큐피드의 주술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주체할 수 없는 사모의 감정에 휩싸이지만 역시나 주술에 걸려 자신을 무조건 피하는 다프네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는 격정에 휘둘리고 집착에 갇혀서, 안타까운 마음을 절절이 고백하며 사랑의 대상인 다프네를 하염없이 쫒는 스토커의 운명이 된다. 사냥을 즐기던 자유분방한 독신주의자 다프네는 한동안 아폴론의 맹렬한 구애의 추격을 따돌리지만 결국에는 잡히게 되고 바로 그 순간,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자신을 다른 존재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강의 신 페네이오스는 딸의 절규를 듣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월계수로 변화시킨다.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사지가 굳어져 가슴은 부드러운 나무껍질로 덮이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이 되고 팔은 가지가 된다.

아폴론은 자신의 첫사랑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프네가 변한 월계수를 자신의 나무로 삼기로 맹세한다. 아폴론은 월계수로 변한 그녀에게 말한다.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내 나무가 되었군요. 나는 그대의 가지로 나의 왕관을 쓰고 나는 그대로 나의 리라와 화살통을 장식할 것이오. 위대한 로마의 장군들이 카피톨리움 언덕(제우스의 신전)으로 개선 행진을 할 때 나는 그들의 이마에 그대의 가지로 엮은 관을 씌울 것이라오. 영원한 청춘은 내가 주재하는 것이니 그대는 항상 푸를 것이며, 그 잎은 시들지 않을 것이오.”

아폴론은 자신의 맹세대로 월계수 나뭇가지로 최초의 월계수 왕관을 만든다. 나무로 변신하는 순간에도 아폴론의 키스를 거부했던 다프네는 이제 욕망의 대상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옮겨갔다. 그리고는 늘 푸른 싱싱함을 지닌 신목(神木)이 되었다. 아폴론이 사랑한 상대들은 대체로 비극적 운명을 맞았지만,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다프네의 경우는 나무로 변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왜 강의 신은 다른 존재가 되기를 원한 자신의 딸을 다름 아닌 나무로 변신시켰을까? 사모의 정이 소유의 욕구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동물적’ 양식의 사랑을 혐오했던 딸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일까?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을 묻고 흐르는 강의 지혜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는 오직 식물, 나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움직이는 다프네를 얻을 수 없는 아폴론의 심정조차도 품어 자신의 딸을 고즈넉이 한 곳에 머무르게 해 준 것일까?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인 나무의 세계로 이동한, 나무가 된 다프네는 그녀를 향한 아폴론의 사랑을 승화시키고야 만다. 찰나적 사랑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그녀는 나무가 됨으로써 욕망의 영역에서 신성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아폴론의 월계수는 승리를 통해 얻는 불멸성을 상징한다. 어느 사이 알록달록하던 세상이 푸르러졌다. 월계수 신록의 산뜻한 향이 풍겨온다. 아폴론은 지금 어디에서 다프네를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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