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 노마드] 끝나지 않는 계절이어라!
[최문형의 식물 노마드] 끝나지 않는 계절이어라!
  • 최문형 교수
  • 승인 2019.03.20
  • 호수 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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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초빙교수

이 영화를 못 봤으면 식물과의 새로운 만남의 장은 시작되지 못했으리라. <다섯 번의 계절; 피에트 우돌프의 정원>! 금요일을 무시한 죄로 첫 번째 가을의 중간부터 보게 된 바보짓을 후회할 겨를도 없이, 울렁이는 가슴을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우돌프의 다섯 계절과 함께했다. 식물들과 교감하는 다른 자연물들의 강한 울림에 숨죽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네덜란드 훔멜로 정원의 전경이 공중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질 때 여기저기서 주체하지 못한 외마디 탄성이 터진다.

간간이 백발의 건장한 노인이 툭툭 던지는 말은 현자의 화두 그 자체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익숙함과 생소함, 살아감과 죽어감, 시간과 공간, 도시와 농촌, 바람과 비, 그리고 눈... 이 모든 것들이 다섯 계절에 녹아있다. 가을은 앞 세대를 갈무리 하면서 새로운 세대인 씨앗이 삶을 시작하는 계절이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래서 우돌프의 계절은 총 5개이다. 가을에서 시작하여 또 가을을 시작한다. 결코 끝나지 않는 계절이다.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고 또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 살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인간의 평생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식물의 삶을 선사해주는 이가 바로 동산바치 우돌프다. 이제까지 쓸데없이 인간의 지저분한 일상이 담긴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고, 기껏 비행기타고 멀리까지 가서는 인간들이 만들었다는 건물들이나 보고 다닌 수고가 아깝다. 식물들의 지혜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인간의 눈으로 식물들을 평가했던 잣대 또한 부끄럽다. 담담하고 무심한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는 노련한 동산바치의 깊은 눈매가 아련하다. 가련한 인간들에게 선사하는 그의 속 깊은 배려가 바로 이 야생을 빼닮은 정원이 아닐까? 한때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1825-1895)의 <진화와 윤리>라는 책을 보고는 한동안 정원에 대한 편견을 가졌었다. 자신의 연설 내용을 엮은 이 책 안에는 식민지 개척을 세련된 정원가꾸기에 비유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돌프의 정원은 달랐다.

그냥 ‘살아있음’이다. 사람들이 보통 정원에서 원하는 것은 예쁜 꽃이지만, 그는 꽃이 진 후 정원의 모습도 염두에 두어 작업한다. 식물들과 온갖 곤충들과 새들, 인간이라는 두 발 달린 동물도 함께하는 생명의 장(場)이다. 해질 녘 정원의 다사로움, 바람과 조우하는 식물들의 찰랑거림이 살갑다. 햇빛과 바람 또한 이 생생한 정원이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마음을 쿵하고 두드리는 건 한 생애를 마친 식물들과의 헤어짐이다. 그들을 떠나보내는 우돌프의 의식은 성스럽기 까지 하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그저 ‘자연’일 따름이다. 문득 노자(老子)가 생각난다.

동양의 현자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무릇 만물은 무성하게 자라나 뒤엉키지만 각각 제 뿌리로 다시 돌아갈 뿐이다.” 라고 했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있지만 만물이 시작하는 곳이다. 그래서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하다’ 하고 또 이것을 일컬어 자신의 ‘명(命)’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컬어 ‘영원함’이라 한다.”고도 하였다. 화려하고 분주했던 정원은 이제 한동안 고요해질 것이고, 이 분주와 고요는 계절을 넘나들며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 지니는 영원의 속성이다. 노자 또한 식물이 자라고 꽃피우고 씨앗을 만들고 시드는 전 생애를 지켜보면서 우돌프의 눈과 우돌프의 마음을 지녔던 것이 아닐까?

조금 더 살펴보면 자연 속에서 한바탕 우쭐하는 노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나 홀로 뭇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만물을 먹이는 어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노자가, 자신만이 뿌리의 위대함을 알아냈다는 자랑을 하고 있는 거다. 후대 학자는 이런 노자의 마음을 알아 그의 편을 들기라도 하듯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여 두었다. “식모(食母)란 삶의 뿌리이다. 사람들은 모두 백성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 뿌리는 버리고서 말단의 꾸민 꽃만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노자는 ‘나 홀로 뭇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씀한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꽃들이지요, 그렇지만 조금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 물론 사람들이 정원에서 바라는 것은 꽃이지만요.” 동산바치 명장 우돌프는 간간이 뇌까리듯 이렇게 말한다. 말끝을 흐리는 그의 속마음 또한 노자의 심정이 아닐까? 노자를 말할 때 도(道)의 사상가라고 한다. 도(道)는 길(way)이고 방법(method)이고 원리(principle)다. 그러니까 천도(天道)는 자연의 길, 자연이 돌아가는 방법이고 인도(人道)는 인간의 길,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인간의 길과 자연의 길은 닮은 듯도 하고 안 닮은 듯도 하다. 그래서 그걸 붙여 놓으려고 애쓴 학파가 공자(孔子)가 대표인 유가(儒家)이고, 굳이 그럴 거 없이 자연은 자연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가자고 한 쪽은 도가(道家)이다. 노자는 자연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을 섞어놓지 말자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생명을 영위하는 인간이 자연과 무관하게 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정원은 무엇일까?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우돌프의 정원 또한 자연 그대로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인위이다. 동산바치 우돌프는 자신의 정원에서 식물과 인간이 마주보고 각자 어떤 꿈을 꾸길 원했을까? ‘꿈의 식물’과 ‘꿈꾸는 인간’이 만나서 말이다. 다섯 계절 속에 그가 꾸며 놓은 정원의 도(道)는 과연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최문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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