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학교 밀집지역인 경복궁 옆 송현동 일대에 호텔건립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일명 ‘학교 앞 호텔법’)을 4월 임시국회에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 학교앞호텔법은 ‘대한항공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급증하는 중국인 여행객 유치를 이유로 정부의 중점 추진 사업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동안 대한한공은 수년간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고,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 3개 학교와 이웃하며 심지어 경복궁 옆에 위치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 3만7000㎡부지에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해 왔다. 대한항공은 “부지 이웃에 경복궁, 인사동, 북촌 등 관광문화자원이 산재한 만큼 복합문화공간을 건립하면 외국인 관광객 유입은 물론 비즈니스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반경 200m 이내에는 관광호텔을 신·증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중부교육청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교육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최종 패소하여 서울시에 호텔건립 계획(지구단위계획 변경안) 승인 신청을 접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야가 함께 이 법을 통과시키려 한다고 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영란법’ 통과를 합의하면서 두 당이 요구하는 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했고 그 중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여당이 야당에 법안의 공론화를 제의한 상태다. 개정안 내용은 문화관광체육부가 2012년 발의한 법안으로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 유흥시설이나 사행행위장 등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아직 교육청 심의는 통과하지 못했지만, 여야 합의대로 관광진흥법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되면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에 호텔이 건립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국토교통부도 입지규제최소구역을 신설해 학교 주변이라도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년 전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학교주변 호텔 건립 허용 의지를 밝힌 점도 높은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이에 1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송현동호텔건립반대모임’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학교인근 호텔건립은 학습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우리사회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마저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라며 "외국 관광객 유치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텔의 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학교들도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관광진흥법 개정 추진 과정에 시교육청과는 전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호텔이 들어서 교육권이 침해되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한편 서울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박원순 시장이 “송현동 부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러 번 부정적인 뜻을 비친 바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호텔은 2013년에 31개, 2014년에 38개가 늘어나 호텔이 부족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작성한 '관광진흥법 개정 기대효과' 설명자료에 따르면 학교 50m 밖 100실 이상 호텔 건립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학교앞호텔법이 통과될 경우 투자효과는 7000억 원, 일자리창출효과는 1만7000명, 수혜호텔은 23개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야당이 정부와 여당에 요구했던 관광호텔 공실률 자료는 여전히 제시되지 않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까지도 지난 당정협의에서 "언론과 야당이 지적하는 관광호텔 공실률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문체부에 요구했지만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관광업계에서는 공실률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신한은행은 2013년 보고서에서 "2017년까지 설립이 추진 중인 호텔 등을 감안하면 2016년에는 수요 대비 공급이 2만 개 정도 초과된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야대표와 회동을 갖고 “중국인 관광객이 엄청나게 오고 있는데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 숙박시설까지도 (규제에)막혀 있다”며 “(호텔이) 미래성장동력이 되고 청년일자리가 호텔에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관광호텔이 부족하다는 부분은 통계적으로 다르다"며 "학부모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하면 어렵다"고 말했다.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중심인 경복궁 옆 양반 계층의 주거지로 소나무가 많아 송현(松峴)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식산은행원 숙소 부지로 쓰이다 해방 후 미대사관직원숙소로 활용됐다. 한진그룹은 2008년 삼성생명에게서 2900억 원을 주고 부지를 사들였다. 최근까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오던 당사자는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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