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 대한 소고’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
“최근 몇년새 마을만들기 사업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지만 사업 계획 이전에 마을을 구성해온 개성, 친밀성, 다양성을 얼마나 고려하였는가를 소고해봐야 할 시점”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 볼룸홀에서 열린 환태평양 커뮤니티 디자인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도시를 이루는 구성체와 거주자간 커뮤니티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조 교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커뮤니티를 이야기 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는 ‘블록 어택(block attack)’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을’은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뀌는 생활공간이자 안전성과 친밀성과기억을 담아내는 장소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그런 도시가 최근 거대한 블록들에 의해 침입을 당했다. 주거공간이 주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 즉 공간적 풍부함과 사회적 다양성 같은 것을 담아내지 못한 채 재산 증식의 수단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즉 도시가 삽시간에 ‘대량생산된 주거 양식의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아파트수는 130만채로 세계에서도 가장 아파트가 가장 많은 국가로 손꼽힌다.

온기가 살아 있던 ‘도시 마을’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철근 콘크리트의 고층 주거
타워들에 의해 삽시간에 사라지고, 이 ‘마을’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삶의 그릇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박원순 시장이 마을공동체 살리기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컨퍼런스 대형화면으로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한 뉴타운 사업으로 주민들이 상처를 받았다. 주민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을만들기가 진정으로 마을공동체 복원이 되기를 바란다면 동네 이발소와 식당, 재래시장이 있는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철학을 정책입안자와 시민모두가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커뮤니티 국제회의는 ‘그린커뮤니티디자인’을 주제로 개발주의 시대를 뛰어넘어 도시를 구성하는 생태계와 거주자인 시민의 조화로운 삶을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과제이자 도전임을 제시했다.

 

 

 


자생적 삶으로서의 마을만들기
수원시는 커뮤니티 디자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새로운 방법과 제도를 추진해오고 있다. 주민자치 차원에서 시민들이 도시계획에 직접 참여한 ‘시민계획단’ 과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바꾸고 공동체 회복에 참여하는 ‘마을르네상스’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준 수원시 부시장은 ‘수원시 도시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수원시에서 시행중인 새로운 커뮤니티 디자인 방법과 마을공동체사업을 소개했다.

이 부시장은 “수원시는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만드는 '좋은시정위원회', 시민의 손으로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지역의 주요현안과 갈등을 줄이는 ‘시민배심원제’, 시민들이 생활불편과 정책대안을 제안하는 ‘500인 원탁회의’, 시장이 직접 시민들과 정책을 논의하는‘느티나무 벤치미팅’등의 다양한 거버넌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특히 사람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커뮤니티 디자인 방법과 제도를 새롭게 실험하는 진보적인 거버넌스 행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부시장은 “수원시 마을르네상스는 낙후된 마을이 문화예술 마을로 활력을 찾고, 침체된 시장이 문화 시장이 되어 매출을 올리고, 불편하기만 했던 작고 비좁은 길이 정겨운 추억의 골목길이 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정체성을 살린 마을축제를 통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의 도시 커뮤니티디자인의 이슈’를 주제로 도시재개발과 마을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약45채 정도 되는 도시형 한옥이 밀집해 있던 충정로3가 마을을 2002년부터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러던 2007년의 어느 날 45채의 한옥대신 18층짜리 아파트한 동이 무표정한 벽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서울의 도시신화는 결국 공간의 조작과 왜곡으로 이어져 삶의 보금자리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일 것”이라며 “사람이 주인인 도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이 사람들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이 공존하고 가치가 공존하는 도시공동체의 외연을 확장하고 일상생활의 가치가 도시 곳곳에서 꽃피울 수 있는 가능성을 이제는 주민공동체를 통해 열어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현 중앙대 교수는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한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해 창조·문화적인 시민참여방안을 제시했다.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창조·문화적인 마을가꾸기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까지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공동체의식과 자치의식을 높여왔다”며 “좀 더 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이 참여한 지자체사업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승모 도시연대 커뮤니티 디자인센터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와 생업, 육아와 교육 등 생태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기가 너무 현실과 떨어져 이상적인 담론으로 흐르지는 않는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커뮤니티 확대위한 공원과 텃밭 활용
그린커뮤니티디자인을 주제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서 이야기하는 녹색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과 기후변화시대의 새로운 가치시스템으로서의 ‘녹색’을 의미한다.

최광빈 서울시 공원녹지국장은 ‘시민과 함께 만들고 가꾸는 녹색도시, 서울’을 주제로 마을공동체 형성 효과가 큰 도시 농업 활성화를 위해 공원내 주민과 함께 하는 도시농업공원을 적극 도입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5년간 0.88% 경작지가 감소하고, 새롭게 1% 이상의 경작지를 시민들에게 도시텃밭으로 제공했다.

최 국장은 서울시는 앞으로 노들섬과 은평구 갈현공원 등 도시농업공원 2개소를 시범조성하고, 장기적으로 25개 구별로 1개소씩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최 국장은 “농업부분에서 자발적인 시민참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우선 공급자 위주 공원에서 소비자 위주의 공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생활권 주변에서 확보 가능한 자투리땅과 옥상을 활용하고 동네뒷산 커뮤니티 가든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제프리 휴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주차장을 여러 층으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면적이 적은 시애틀이 시민이 자발적으로 도시영역을 마을자산으로 가꿔간 사례를 예로 들었다.

시민이 2만~10만 달러까지 기금을 추렴하여 공원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온 시애틀은
1974년 마을자산 커뮤니티 가든이 30곳에서 현재 80곳으로 불어났나는 것이다.

또 시애틀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세금을 투표로 결정해 새로운 부지를 매입하고, 주민 커뮤티니 형성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제프리 휴 교수는 “시애틀이 지역 연대가 100곳이 될 정도로 시민이 행정 참여가 활발하지만 정부부처역시 이런 연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시민이 워낙 행동반경이 넓고 시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지역기업이나 시의 압력은 크게 받지는 않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녹색’미명하에 개발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는가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조경진 교수를 좌장으로 참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강오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공무원이 관료정치에 물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마을공동체 사업이 대부분 1년짜리 프로젝트 이기 때문에 시간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제프리 휴 교수가 시애틀의 자발적인 시민참여를 예로 들었지만 대한민국역시 시애틀 못지않게 문화적 자산이나 역동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민들이 기존 시스템이나 정치행태를 바꾸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합토론자로 나선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은 “각 전문가들이 컨퍼런스를 통해 커뮤니티 디자인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다. 과거의 커뮤니티 디자인 성공사례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컨퍼런스 이후 주어진 숙제이고, 성과 위주의 지역개발 사업을 급격히 시도하려는 모습이 아직 우려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제프리 휴 워싱턴대 교수는 ‘시민은 어떻게 개발 인센티브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참관객의 질문에 “고정관념과 제도안에 행동이 너무 묶어있지는 않은가”돌아봐야 하고 현재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하게 대면할 것을 주문했다.

홍승모 도시연대 커뮤니티 디자인센터장은 “기업자본과 커뮤니티의 대척점을 파악할 수 있는 이번 컨퍼런스는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녹색이라는 이름하에 정치적으로 개발사업이 이용돼 온 것과 사업검토과정에서 시민이 고려되지 않았던 점은 현 시점에서 고민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