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조경분야의 실측 설계를 그동안 건축분야인 문화재 실측설계업을 통해서 진행해 왔다고 한다. 조경기술자들이 주체가 되지 못한 채 하도급으로 참여함으로써 발생했던 문제점들은 상시적으로 노출돼 왔었다.

지난 2월 문화재보호법이 3개로 분법되면서 제정된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새로 ‘문화재실측설계업자가 조경분야의 실측설계를 하려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조경계획과 시공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재수리기술자에게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전통조경계의 오랜 숙원이 풀리는 듯 싶었다.

그러나 최근의 시행령 입법예고를 살펴보면 ‘문화재수리의 실측설계 중 조경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100분의 20이상인 경우’와 ‘조경분야의 문화재수리 예정금액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로 한정한다는 내용의 단서를 달고 있어 실망스럽기만 하다.

문화재청이 이번 법령 제정 이유에서 ‘문화재수리 가운데 경미한 경우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고, 문화재청 등 일부 국가기관도 수리할 수 있도록 해서 국민 불편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히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게 한다는 ‘보편성’과 철저한 고증이 필요한 ‘전문성’은 양립할 수 없다.

이미 법률에서는 그둘 가운데 전문성을 우위에 둬서 조경분야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굳이 ‘국민불편 해소’를 운운한다는 것은 문화재청 스스로 전문기관으로서의 소임을 저버리는 이율배반과 다름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 감싸기’ 라는 명분을 내세웠다면 더 솔직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으로써 우리 전통조경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자랑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체계적인 조선왕릉 보존관리와 관광자원화 사업 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일 텐데 이렇게 반쪽짜리 법을 만들어 발목을 붙드는 처사는 옳지 않다. 오히려 ‘조경 실측설계업’을 신설해 문화재수리 분야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육성책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문화재수리 관련 법령 제정을 위한 입법예고를 접하면서 전통조경학회와 문화재조경기술자회 등 조경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어느 편이 더 합리적이고 미래를 향한 길인지 문화재청의 현명한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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