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공동체 리더의 자격
[조경시대] 공동체 리더의 자격
  • 정남식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1.10.25
  • 호수 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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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식 목포대 도시및지역개발학과 조교수
정남식 목포대 도시및지역개발학과 조교수

일반적으로 마을은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유기적 조직을 구성하여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조직을 말한다. 공동체의 삶의 터전이자 우리 사회 유구한 문화와 역사가 싹튼 곳이 마을이다. 공동체 회복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공동체내의 사회적 질서가 우리 사회에 순기능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관련된 사회적 장소인 동시에 사회화의 기능을 하는 무형적 자산이고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유형적 공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사회학 연구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형성한 것이 공동체라는 존재였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 지역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공동체는 ‘경제적 결사체’로 규정되고, 이를 벗어난 공동체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외부인으로 평가해 왔다. 19세기 대부분의 지역들이 경제혁명과 정치혁명을 겪으면서 일종의 근대화 과정을 경험한다. 근대화의 경험은 전통사회에서의 특징인 미덕, 관습, 애착 등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관계보다는 성장, 경쟁, 이익 등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자본이 들어오면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분되어 버렸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결사체만 남아있게 되었다.
최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절박함’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역정책 추진 과정에서 공동체는 의사결정자로서의 참여가 아닌 의견 제안자로 제한되어 왔다. 신뢰와 상호협력을 요구하는 최근의 지역정책은 다양한 이익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공동체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작용하기도 한다. 권력이 독점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의 견제도 필요하고 신뢰받은 리더의 창의성과 추진력도 필요한 시기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 “신뢰받는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1925년 간디의 “지속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는 경고 문구로 추정해 본다.
간디기념 공원묘원 입구(인도 뉴델리)에는 간디가 말한 ‘지속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문구는 아시아의 성자로 추앙받았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Young India’라는 잡지(1925)에 기고한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Seven Social Sins)이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특성 없는 교육, 도덕적이지 않은 상업, 인간 없는 과학, 희생하지 않는 종교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견제 받지 않는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못함을 경고한 것이다.


첫째,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s).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매우 많다. 안정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올바른 정치문화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 중의 하나가 정치집단이다. 원칙 없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수백 년 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을 견제할 수단은 그들의 무원칙과 부패지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간디 ⓒ위키백과
간디 ⓒ위키백과

둘째,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노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성한 활동이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창출하는 부는 참으로 값진 것이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부류들이 나타나게 된다. 간디는 일하지 않으면서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이들 때문에 사회가 타락하게 된다고 보았다. 사회의 타락도 문제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욕구도 사라지고 있다.


셋째,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양심 없는 쾌락이란 가치관이 무질서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매우 비도덕적인 행위를 말한다. 인간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경쟁과 합리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무너져가고 있다. 그리고 일부 윤리적이지 않는 과학기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넷째, 특성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 흔히 ‘학교와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제자와 스승이라는 사회적 관계속에 평가와 제도라는 시스템이 들어와 인간관계를 계량화시키고 있다. 관계를 숫자로 제시하지 못하면 무능력한 교육자로 평가받는다. 교육자들이 평가와 등급에 매몰되어 특성 없는 교육의 주체로 무너져가는 이유이다.


다섯째, 도덕성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 장사의 기본은 이윤 창출이다. 하지만 장사에도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 존재한다. 적정한 이윤과 이윤창출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독점은 터무니없는 폭리를 유발하는 절도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이다. 자본에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지만 최소한의 ‘공정’의 개념은 가졌으면 한다.


여섯째, 인간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과학은 존재한다. 그런데 과학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오히려 크나큰 죄악이 될 수 있다. 과학자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인류를 위해 유익한 것인가를 늘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인지 자본을 위한 것인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희생하지 않는 종교(Worship without sacrifice). 종교는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런데 최근 종교가 오히려 인간사회 위에 군림하거나, 종교 자체가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 한다면 종교의 존재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지만 해악을 끼친 경우도 빈번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마지막 희망을 종교가 손잡아 주어야 한다. 
7가지 사회악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는 아마도 “이상사회”일 것이다. 인류는 수세기 동안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도전하고 실패를 반복해 왔다. 거대한 국가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이상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수세기 동안 경험해 왔다. 하지만 작은 공동체인 마을에는 이러한 이들을 견제할 수단이 존재한다. 바로 마을 공동체가 수백 년 간 유지해온 그들만의 질서이다. 그들만의 협력과 견제 기능은 건강한 리더를 만들어 간다. 건강한 작은 공동체가 건강한 국가 공동체의 시작이다. 
작은 공동체 즉, “작은세상”을 꿈꾸며 2021년 조경시대 칼럼을 마무리 한다.
[한국조경신문]

 

정남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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