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마을을 상징해 온 ‘작은나무’카페가 느닷없이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에 처했다. 오랫동안 주민공동체 허브 역할을 해오며 성미산 지역 브랜드 가치를 한껏 올려준 곳인데 한순간 건물주에게 쫓기어 ‘임대료 난민’이 됐다. 옛 도심권 내 재생 주도민 또는 상권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 점포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상황. 이 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다. 마을 만들기나 이색문화예술거리 등 ‘개성 넘치는 잘 나가는 마을’로 키운 일등공신이 내몰린 자리에는 어김없이 값 비싼 상가가 대체하고 만다. 이런 현상을 조명함으로써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다룬다.<편집자 주>

① 내쫓기는 일등공신들
②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국내외 사례
③ 실천적 대안을 찾아서

▲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는 해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인디밴드 공연 등 자유로웠던 공간이 상업적으로 물들면서 다른 도심과 똑같아지고 있는 원조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걷고 싶은 거리.ⓒ박흥배 기자

최근 젠트리케이션에 맞서는 다양한 사례에 주목한다. 우선 한창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성동구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해결 방안에 나서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 6월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조례 제정을 추진해 화제를 모은 것.

조례는 지역 임차인의 권리를 주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구 안에 주민주도의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하도록 했다. 또 임대료를 높게 받지 않겠다는 등의 건물주와 임차인 간 자율상생협약으로 관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는 미국 뉴욕에서 운영 중인 ‘커뮤니티 보드’ 제도를 따온 것이다. 뉴욕시에서 추진 중인 이 제도는 커뮤니티 보드에 속한 지역 주민이 심의를 통해 토지 이용 방식을 결정하고 시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동이 뜨면서 임대료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이곳에 도시재생사업으로 100억 원대 뭉칫돈이 들어갈 경우 자칫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속화할 우려가 커 대안으로 조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은 있되 강제성은 없어 규제 면에서 실효성이 있을지를 놓고 의문을 던지는 시선도 적지 않아 상위법 마련 등 과제가 남아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유명한 동네로 만들어준 예술가, 마을공동체, 사회적 기업 등 도시재생 주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공이 나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에서는 부당한 임대차계약에 저항하고자 사회적 공론화를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는 세입자 주도의 행보도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5월에 모임을 꾸린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는 그동안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 개정에 노력해왔다. 실제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상가법이 지난 5월 개정되기도 했다.

맘상모는 요즘 서울시 후원을 받아 권리금 약탈 방지를 위한 상가임대차피해예방 교육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7월 21일에는 서교동 삼통치킨에서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상인들을 위한 모임을 열고 왜 임차상인의 권리가 중요한지, 개정상가법 해설, 자영업자가 알아야 할 법률상식들을 비롯해 향후 과제들을 중심으로 한 예방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은 이 자리에서 “불합리한 건물주 요구로 임차상인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올바른 임대차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서울 연남동에 이른바 착한 건물주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건물주 11명은 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임대료를 받는 등 세입자와 임대차 협약서를 협의하는 모임을 꾸렸다.

연남동은 홍대 등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나 공방을 연 예술가들이 공동체 활동가, 지역주민과 함께 벼룩시장, 예술교실 등을 열면서 속칭 뜨는 동네로 입소문을 타는 곳이다. 이런 곳에 착한 건물주들이 나온 데에는 마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이들 도시재생 주체와 더불어 사는 것이야말로 장기적 관점에서 마을을 살리고 거품을 빼는 것임을 직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서울 중구 만리동은 미술, 연극, 영화 예술가 등 29팀이 젠트리피케이에션에 대항하는 자체 노력의 하나로 만콕(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을 설립, 지난 3월 입주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문화예술공간 ‘000간’ 경우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침범을 피해 일부러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종로구 창신동 비탈진 언덕길을 거점지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인지 예술인들을 위한 서울시의 창작 공간 지원도 눈길을 끌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10년 시문화재단 지원을 받은 문래예술공장은 공예공방 예술가 250여 명을 위한 공동 작업실, 공동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시는 이와 함께 예술가들이 장기적으로 저렴하게 임대가능토록 금천예술공장, 중구 전통시장 내 신당창작아케이드 등을 조성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보다 일찌감치 젠트리피케이션을 맞은 선진국처럼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영국 런던의 쇼디치, 중국 베이징 789예술구 등의 도시재생의 길로 나아갈는지 모를 일이다.

이 가운데 외국에서는 독일 크로이츠베르크 브랑겔 거리에서 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시민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이 동네에서 3대째 채소가게를 운영하던 터키인 아흐멧 가족은 올해 초 건물주에게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 쫓겨날 위기에 내몰렸다. 가족은 임대료를 더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건물주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채소가게를 살리고자 단골손님 등 주민들이 뭉쳤고 이들은 거리로, 페이스북을 통해 저항운동을 벌였다. 처음 채소가게를 지키던 약 150명의 주민은 이제 250여명으로 늘어나며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련의 상황이 공교롭게도 건물주 등살에 밀려 거리에 나앉게 된 국내 성미산마을 카페 작은나무 모습과 닮아있다. 현재 카페는 토론회 개최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돌파하려는 사회적 공감대를 모아나가고 있다.

하지만 브랑겔 채소가게가 아직 그렇듯 이곳 또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공공이 적극 나서고 좀 더 큰 시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지금까지 여러 극복 움직임을 접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성을 격파코자 하는 실천적 대안, 그 해법은 무엇일까?

“도시재생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던 최수진 작은나무 협동조합이사장 얘기처럼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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