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배 기자


성미산마을을 상징해 온 ‘작은나무’카페가 느닷없이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에 처했다. 오랫동안 주민공동체의 허브 역할을 해오며 성미산의 지역 브랜드 가치를 한껏 올려준 곳인데 한순간 건물주에게 쫓기어 ‘임대료 난민’이 됐다. 구도심권내 재생 주도민 또는 상권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 점포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상황. 이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다. 마을만들기나 이색문화예술거리 등 ‘개성 넘치는 잘 나가는 마을’로 키운 일등공신이 내몰린 자리에는 어김없이 값비싼 상가가 대체하고 만다. 이런 현상을 조명함으로써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편집자 주>
① 내쫓기는 일등공신들
②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국내외 사례 
③ 실천적 대안을 찾아서

 

서울 마포구 성산1동 성미산마을은 마을공동체촌의 성지로 이름 난 곳이다. 1994년 공동육아를 시작으로 교육, 주거,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더불어 한 주민들은 1998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작은나무’ 카페라는 이름의 유기농 아이스크림가게를 열었다.

카페는 주민들이 마실 나와 복작대며 도란도란 웃음꽃을 피우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도심 속 마을만들기 성공 사례로 속칭 ‘뜨는 명소’로 입소문을 타서인지 카페 주변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다.

겉에서 보면 이곳은 유동인구가 많은 목이 좋은 곳으로 비췄다. 카페 유명세에 힘입어 시세도 월 임대료 30만 원가량 껑충 뛰었다. 이윽고 돈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출동해 먹어치우는 ‘자본’이 카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황소개구리가 나타나 청정한 시골 개울가를 주도하던 청개구리를 대체하고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처럼.

최근 작은나무 카페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 채 집을 비워야 한다는 통보를 건물주로부터 받았다. 주민들끼리 힘을 합해 건물 매입도 시도해봤지만 이미 새 건물주에게 비밀리에 넘겨버린 뒤였다. 카페 부근으로 옮길 곳을 알아봤지만 주변 시세도 만만치 않다.

현재 카페는 붕 뜬 상태다. 최수진 작은나무 협동 조합이사장 얘기로는 건물주와 어떻게든 대화로 풀고 싶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자칫 긴 소송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명도소송을 하시는 거는 건물주 의지고 소송이 오면 대응을 하겠지만 저희는 가능하면 대화로 풀고 싶어요. 일단 서울시 조정위원회가 있더라고요. 임대차 관련해서 그쪽에 조정신청을 했고요 저희는 협조를 할 예정이에요. 그럼에도 조정이 불발되고 명도소송 시작되고 하면 저희도 권리금 인정받지 못하고 그 부분은 건물주가 방해하는 것이니 저희도 손배소를 할 수밖에 없을 테지요.”

최 대표는 구도심 활성화에 이바지한 재생 주도민이 내쫓기는 부작용이 늘어나면 자칫 마을만들기 성장판이 닫힐 수 있다고 걱정했다. “도시에서 마을을 다시 만들겠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마을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얻고자 하는 걸 얻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인공적으로 기획해서 마을을 만든다고 해서 얻고자 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어디어디를 옮겨 다니면서 마을을 만든다는 건 사실 안 되거든요. 마을은 지역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거니까요.”

이런 우려에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경복궁 서촌, 이태원 경리단길, 전주 한옥마을 등으로 가파르게 번지는 모양새다. 고즈넉한 한옥마을로 이름난 경복궁 인근의 삼청동 북촌 등이 문화예술주도민의 활동과 결합하면서 진즉 임대료 등이 뛰었고, 이제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서촌마저 몸값이 뛰며 재생주도민의 공간마저 위협하는 실정이다.

서촌 누상동에서 40여년을 지낸 원주민 김태식(가명·남·45)씨는 “나이 든 분들만 계셨던 허름했던 곳이 어느 틈에 주말만 되면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게 됐다”며 “기존보다 부동산 시세도 30%가량 올랐다. 거기에 부동산중개업자들이 담합을 해 더 뛰고 있는 모양새”라고 언급했다.

불편한 동네였던 이태원 경리단길 주변도 주목받는 이색문화가 등장하면서 기존 점포 주인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 일어나고 있다.

근래 가수 싸이가 건물주로 있어 더욱 논란을 빚은 한남동 문화·예술 카페인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사건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 역시 카페 작은나무처럼 주목받으면서 건물 시세가 오르는 데 이바지하는 등 남 좋은 꼴만 시키고 나가라는 건물주 등쌀에 밀려 강제집행 당할 뻔했다. 여기에 패션디자이너나 아트갤러리 등으로 관심을 모은 성수동 등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몰아치는 곳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밖에 스토리텔링 기법의 한옥을 지어 관광객을 대거 유치한 전주 한옥마을 주변도 높은 세를 이기지 못하고 터전을 떠나는 저소득층 주민들로 끙끙 앓고 있다.

박흥배 기자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0만 원 등 임대료를 갑자기 올려 연극인들의 무대 공간을 빼앗고 있는 대학로, 한때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주축을 이뤘던 신촌,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은 물론 인디밴드들의 거점 무대로 통했던 홍대 등이 모두 원조 젠트리피케이션에 해당한다.

마을만들기나 예술접목이든 이들 지역 모두가 각기 생김새는 다르나 저마다 독특한 문화 공간으로 성공시킨 주역들이 획일화된 대형 프랜차이점 등 새로운 상권에 밀려 하나같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있다.

도시재생과 공간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들이 왜 떠나야 하나? 마을만들기 성장판을 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