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한건설협회’라는 큰 집에는 ‘토목’과 ‘건축’ 두 형님이 살고 계십니다. 

형님들은 으리으리한 대문을 단 채 각자 방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축토목’이라는 초대형 멀티룸을 함께 만들어 호화생활을 하십니다. 그리고 구석에 초라한 문간방에는 막내 동생 ‘조경’이가 40년 동안 궂은 일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어요.

오늘 이 콩트는 그 세월동안 온갖 핍박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나무 심고 대지를 푸르게 일궈온 조경이의 삶을 다룬 실화입니다.

어느 날 고을에 갑작스런 위기가 찾아오면서 원님은 더 큰 재난을 피하기 위해 조경이를 불러 푸르미 일을 더 열심히 해달라는 임무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토목이와 건축이 형님은 “네가 밖으로 나가면 우리 심부름은 누가 할 것이냐?”며 큰 주먹을 내보이며 윽박지르는 대목에서부터 콩트를 시작하겠습니다.

#1. 위기의 ‘국토교통 고을’
그때 ‘국토교통 고을’은 점점 뜨거워지고 산사태도 자주 발생하면서 백성들 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어요. 원인은 토목 형님이 고을 파헤치고 건축 형님이 막무가내로 집을 지으면서 시작됐지요. 자연을 경시한 대가는 점점 혹독해지고 있었어요. 다행히 평소 자연을 사랑하는 조경이가 나무도 심고 대지를 푸르게 가꿔왔기 때문에 큰집 만큼은 살기가 좋았답니다.

그러나 두 형님들의 파헤치고 마구 짓기가 계속 되면서 고을은 온통 회색으로 변했고 백성들은 점점 답답함을 호소하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고을 원님은 조경이를 불러 그 재주를 들어보니 널리 활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살아온 처지가 워낙 열악하다보니 당장 최소한의 거처를 마련하고 문패라도 붙여주는 게 시급해 조경이를 위한 ‘아주 작은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원님이 직접 명령을 내려 챙긴 일은 40년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토목이와 건축이 형님은 당장 원님에게 쫓아가서 “우리 집 조경이는 그런 거 할 줄도 모르고 계속 우리 밑에서만 살아야 하는데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라고 큰 소리로 따져 묻습니다. 그러나 원님은 고을의 장래를 살리는 게 너무 막중하고 조경이 손재주도 아까우니까 이번 기회에 큰집과 함께 고을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역대 어느 원님들도 두 형님 말에는 꼼짝을 못했던 터라, 당황한 두 형님은 우선 물러나와 공방나리를 불러서 “그렇게 해주면 절대 안 된다”고 협박해놓은 뒤에 집으로 왔어요. 형님들은 조경이를 불러 “너 뛰쳐나가기만 하면 죽을 줄 알아”라며 큰 주먹을 보이며 위협을 하는 것이었어요.

#2. 그래, 예전에도 실패했었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조경이는 뒤뜰에 앉아 예전 일을 회상합니다.

사실 고을로 나가기 위한 시도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 고을 출신으로 백성들한테 총망 받던 조경이는 몇 년 전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원님의 부름은 큰집에 있으면서 고을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 때는 아예 궁궐로 들어가려고 떠났었거든요.

그땐 이상하게도 형님들이 지금처럼 반대하지도 붙잡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조경이는 ‘드디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신나게 궁을 향해 출발하던 때였어요. 갑자기 ‘국토교통고을’을 벗어나자마자 ‘산림고을’, ‘원예고을’, ‘환경고을’, ‘디자인고을’ 등등을 다니면서 무지하게 얻어터진 것입니다. 세상에 궁궐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그런데 조경이가 더 원통한 것은 그렇게 맞고 있을 동안 토목이와 건축이 두 형님은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어쩌면, 나가봤자 두드려맞고 되돌아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사실 큰집 토목이와 건축이 형님 방에는 대문짝만한 문패가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살아오면서도 조경이는 문패조차 달지 못했어요. 뭐라도 하나 달라치면 두 형님들이 달려와서 바로바로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조경이는 정말 손바닥만한 문패 하나 내거는 것이 평생 소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3. 팥쥐엄마 같던 ‘건축누님’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방장을 하던 건축 누님이 오시더니 조경이방 앞에 있는 화단에다가 ‘이것도 건축’이라는 문패를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딨답니까?”, “이게 어찌 형님 것이란 말입니까?”, “조경이가 평생 건축 형님 담벼락에다가 낙서 한번 한 적이라도 있었습니까?” 울부짖으며 따져보았어요. 그러나 거드름떨던 누님은 “이미 동헌에서 등기까지 받아놨으니까 덤벼봤자 소용없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마당이며 광장이며 바깥에 보이는 모든 조경 나와바리에다가 ‘이것도 건축’ ‘저것도 건축’이라고 문패를 걸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6년 전이네요. 팥쥐엄마 같던 누님은 방장선거에서 떨어져 다행이지만, 그 후로 건축 형님들은 조경이 가꿔놓은 아무 화단에라도 거리낌없이 ‘이것도 건축’ 문패를 붙이고 다니십니다. 그리고 조경이는 ‘건축’이라고 쓰여진 모자를 쓰고 화단을 가꿔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평생을 토목이와 건축이 형님 밑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조경이는 두 형님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온 거라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4. ‘이지매’ 방관한 형님들
그런데 조경이 가꾸던 화단에는 어느 날부터 ‘산림고을 화단’, ‘원예고을 화단’, ‘환경고을 화단’, ‘디자인고을 화단’ 이런 식으로 알지도 못하는 새 주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름답던 화단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화단이 아니었어요.

“형님들! 형님들! 이것 좀 보세요. 지난 번에 저를 때렸던 이웃고을들이 이제는 여기까지 쳐들어와 마구 패고 있어요. 형님들 도와주세요. 제발 좀 도와 주세요~”

아비규환의 소리를 듣고 건축 형님이 걸어 나왔습니다.

형님은 조경이를 지나쳐 화단을 살피더니 ‘이것도 건축’이라고 적힌 문패가 온전히 달린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가는 것이었어요. “형님! 형님! 어디 가세요? 형님! 건축이 형님!” 그날 조경이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절망하였습니다.

이제 더이상 조경이는 토목이, 건축이 형님들만 믿고 있을 수 없게 됐어요. 조경이 가지고 있는 지속가능한 재주는 점점 변질되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말았어요. 그것은 더 이상 기술이라 불리지 않았고 조경 식솔들은 더 이상 ‘조경’이라는 명칭으로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고을을 갈 때마다 ‘산림’, ‘환경’, ‘원예’, ‘디자인’, ‘건축’이라고 쓰여진 모자로 바꿔 쓰고서야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5. 분노한 조경이의 저항
조경이에게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조경대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2세들을 위해 조경이는 더 이상 가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원님에게 상소장을 내기로 했습니다.

“지금 고을의 이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길은 큰집에서 중심을 잡고 해야 하며, 그동안 큰집에서 생명 다루는 일을 해온 것은 조경뿐 이옵니다. 마치 토목 건축 형님들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회색 옷에서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또한 급격히 커져가는 재난에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근 고을과도 함께 할 일들이 많은데 덩치 큰 형님들은 절대로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조경이에게 아주 작은 문패라도 만들어주지 않으면 회색빛 큰집은 물론 고을 백성들에게 까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상소장을 받은 원님은 조경이 옆으로 다가가 그 뜻을 함께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토목이와 건축이 형님들은 영 못마땅한 표정이네요. 조경이가 지금처럼 문간방에서만 살고 있어야 편할 것 같기 때문이구요. 괜히 고을 일을 하거나 인근 고을 드나들기 시작하면 골치만 아플 것 같기 때문이지요.

#6. 형님들, 다시 힘으로 제압
그래서 토목이와 건축이는 중상모략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인 시장에서 형님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조경이 험담을 근거도 없이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지금 큰집 살림도 어려운데 조경이는 혼자만 살겠다고 우리 밥그릇도 내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고을에 승인 받으려면 공청회를 거쳐야 하는데 찬성하는 사람들만 불러놓고 해서 박수로 통과시켰답니다” “조경이가 나가기 시작하면 미장이, 도장이, 포장이 얘네들도 모두 나가려고 아우성일테고 그러면 우리 큰집은 망하는 겁니다” “우리 일꾼들은 더 일하기 힘들어 집니다. 고스란히 현장 일꾼들에게 피해가 오게 돼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형님이 키우는 앵무새는 그 목소리들만 크게 적어서 방을 붙여놓았어요. 모처럼 의기양양 고을로 나서던 조경이는 순식간에 고을 백성들의 공적이 돼 있었으며, 형님들은 조경이를 잡아들여 손발 묶은 채 무릎을 꿇려 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주제를 알고 그만 포기하라는 협박이었습니다.

#7. 무릎 꿇린 조경의 ‘절규’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이것은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하라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조경이는 40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 흘리며 대성통곡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고을사람들! 이 놈이 만신창이 피투성이 될 때까지 큰집에서는 구경만 했었다오. 다른 고을에서 북처럼 얻어맞을 때 형님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소? 단 한번이라도 막아주고 치료해준 적 있단 말이오? 내 40년간 형님들 밑에서 온갖 수발 다 들며 오늘을 받들어왔건만 이젠 먹던 밥상도 걷어차며 우리 집 마당에 말뚝까지 박고 가지 않았소? 그게 과연 한집에 사는 동생에게 할 짓이란 말이오?”

“여보시오, 기자님네들! 우리 소리도 좀 들어주오. 어째 큰집 말만 듣고 그리도 무심히 써대기만 한단 말이오. 우리가 언제 밖으로 나가서 간판 건다고 했소? 누가 형님들 밥상에 손이나 댄다고 했소? 40년 동안의 질서가 있는데 될 법이나 한 말이오? 그렇게 되도록 형님들이 가만히 놔주기나 할 것이라 생각하오? 택도 없는 소리란 말이요~~~”

에필로그
오직 소박한 문패 하나 내걸고자 했던 ‘조경이의 간절한 꿈’은 2014년 5월. 이렇게 제1막을 내리는 중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으로 제2막의 스토리를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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