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열린 ‘제23회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대화 모임’은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사업이 과잉되고, 행정은 얼마나 불필요하게 정주민을 옥죄었는지 실제 주민들의 사례 성토로 진행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농촌에 대한 2010년 국민의식 조사결과 10년 후 농촌생활 전망에 대해서 도시민 40.6%, 농업인 22.8%가 현재보다 살기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 10년 후 한국농업을 희망적으로 전망한 비율은 전문가 42.2%, 도시민 29.9%, 농업인 25.5%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도시민과 농민들보다 농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난 10월 김광남 공공정책연구소 SNP 대표는 지난 23일 열린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대화 모임’을 통해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마을만들기를 이웃공동체 복원이 아닌 사업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때가 마을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마을 주민을 주체로 활동가들이 추임새를 넣고 주민의 요청에 따라 제한적으로 전문가와 행정이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마을기업 활동가 박 목수는 수 억 원을 지원할 테니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서울시의 제안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만큼의 돈을 쓰려면 마을에 꼭 필요치 않은 것을 만들게 되고, 그러다보면 마을이 망가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박홍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홍보협력실장은 “지역이 균형 발전되려면 큰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 지역사람들이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다는 지역사회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웃공동체를 부활시키는 일, 정부는 이것만을 도우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을만들기’는 회계연도와 목표치가 정해지는 ‘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일선 활동가들의 지적을 종합해보면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지역공동체를 구축하고 스스로 추진해야 할 과제와 역할을 정해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변민숙 마을공동체 품애 대표는 “마을은 모두 다르다. 이런 마을을 행정의 입장에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조례와 센터를 강조하는 것은 형식주의의 산물이다. 마을만들기는 마을과 활동을 조사하고, 모니터링하고, 전파하고 필요에 따라 지원해주는 오랜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다. 오랜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마는 것. 그것이 마을만들기가 가야할 길”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행정과 시민 사이에서 중재, 조정을 담당하는 역할이 지역개발 전문 컨설팅 회사와 같은 전문가 역할인데, 문제는 최종적인 의사결정에서 사업이라는 한정된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사업비가 지급 주체인 행정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쉽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고광완 행정안전부 지역녹색성장과장은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설립이 붐이다. 하지만 조례와 센터만 짓는다고 마을만들기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20가구 이하 마을이 3천개가 넘는다. 조직이 만들어지면 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지원이란 명분으로 예산이 투입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일정한 틀로 보고와 점검, 지도와 확인, 회의와 방문, 어느새 주종이 바뀌어 마을만들기는 종이 되고 행정절차와 형식이 주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식의 마을만들기는 외형의 마을을 만들고 겉모습을 바꿀 수는 있을지 몰라도 공통의 의식, 문화, 정신이 공유되는 공동체는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자칫 센터가 ‘마을망치기의 주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과장은 “사업 이전에 각 마을 특성을 파악하고 절차상 정주민들의 동의를 얻은 사업 중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며, 이것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조례를 단위 사업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은 간섭 말고 주민 자치활동 지원에 국한돼야”

지난달 23일 열린 ‘제23회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대화 모임’은 그동안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사업이 과잉되고, 행정은 얼마나 불필요하게 정주민을 옥죄었는지 밝히는, 차라리 성토대회와 같았다.

<사례 1> 하동군 옥정마을 마을기업 사례
‘불필요한 과잉 사업’으로 농촌공동체 붕괴직전


경남 하동군 옥정마을에서 우렁이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소개한 정기한 씨는 비현실적인 농촌마을 재생사업을 비판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전문가들이 마을대표 몇 명과 마을만들기 지원금을 가지고 이쁘게 만든 농촌은 정작 정주민들과 크게 관계없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파고라를 아무리 멋있게 만들어도 주민 실질소득과 연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농촌과 농업, 농민은 농촌 마을재생사업과 관계없이 허덕이고 공무원의 공적과 전문가들만 이익을 가져가게 되는 모순적인 농촌마을만들기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마을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삼수 공동대표는 “이미 농촌 공동체는 붕괴 직전이다. 마을만들기가 농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전문가나 공무원 역시 마을공동체 복원과 동떨어진 부실한 사업아이템과 사업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하고 예산만 지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우선 지역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지역주민들이 상황에 따라 회계연도에 대한 압박 없이 사업이 가능한 마을기업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 강사 최은주 씨는 “마을만들기가 어떻게 마을에 실질적으로 이득이 될 것인가이다. 센터 짓기나 허울 뿐인 주민공동체 복원 사업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가는 마을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마을일을 자치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이것이 행정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례 2> 마포구 염리동 마을만들기 사례
재정자립 선행…휘둘림 없이 당당한 행정 견제

 

 

 

 

홍성택 서울 마포구 염리동 주민자치위원장 마을만들기 대화모임에서 염리동 마을공동체 성립과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은 2008년 이전까지 뉴타운 개발이 공시된 지역이었다. 거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구청에서 시행하려는 행정업무에 별 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행정업무가 본인에게 손해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임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박 시장은 대대적인 재개발 대신 마을공동체 복원을 선택했다. 도시재생을 주민이 자치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했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고압적이었다. 도시재생에 필요한 모든 계획을 만들어 주민에게 전달하고 동의만 얻을 수 있으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홍성택 서울 마포구 염리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우리도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행정에 휘둘리고 꼭두각시 같은 역할을 해왔다. 행정안전부 마을기업을 유치하게 되고 어느 정도 주민자치에 필요한 재정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되자 주민자치위에서는 가장 먼저 고압적인 행정의 태도부터 지적했다. 주민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조직에 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행정의 역할은 마을사업에 필요한 공여지를 빌려주거나 힘드는 일, 물리적으로 큰 인력이 들어야 하는 일에만 관여하게 했다.

홍 위원장은 “염리동 주민의 마을만들기는 행정에 무조건 따르기만 했던 의식의 개혁부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시의 돈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게 되면 시 행정을 견제할 수 없게 된다. 우선 재정적으로 독립이 가능할 정도의 시민자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례 3> 은평구 산새마을 마을만들기 사례
마을가꾸기 주민이 먼저 행동…행정은 힘들고, 큰 돈 드는 일만

 

 

 

 

윤전우 (주)두꺼비하우징 마을재생사업부 마을만들기 팀장이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했던 은평구 산새마을이 주민 공동체가 활성화된 마을로 변화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은평구 산새마을은 주민이 공동 운영하는 텃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올해 초까지 이 마을 역시 재개발 예정 구역일 뿐이었다. 40년 가까이 마을 한 가운데 개 도축장 구조물 잔해와 쓰레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 동장 한 번 찾아온 적 없다는 것이 마을사람들의 변이다. 구청에서도 이 지역 방범이나 쓰레기 악취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재개발 지역이니 주민이 알아서 치워야 한다는 것이 행정가들의 생각이었다.

윤전우 (주)두꺼비하우징 마을재생사업부 마을만들기 팀장은 “산새마을은 서울시내에서도 행정이 거의 미치지 않는 오지 같은 곳이었고, 60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산새마을 텃밭을 처음부터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마을 위생상 쓰레기를 좀 걷어내자는 바람이 전부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도 마을쓰레기를 걷어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윤 팀장 혼자 구조물을 부수고, 쓰레기를 걷어냈다. 그리고 마을주민이 하나 둘 참여했고, 결국 40여일 만에 쓰레기는 모두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마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쓰레기장이었던 폐부지는 마을주민이 공동관리하는 텃밭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은 지금도 텃밭 근처에 휴게공간을 마련하고 스스로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회의 중이다. 마을재생에 필요한 요구는 주민대표를 선출해 구청에 당당히 요구한다. 이에 구도 이전보다 협조적으로 바뀌었고, 주민과도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윤 팀장은 전했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