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그 자체가 조경이다. 그래서 조경인으로서 자긍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이 교수는 조선왕릉 40기 전체 실측 도면과 2008년 등재신청서를 작성에 참여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실사단에 왕릉의 가치를 소개하는 등 초기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 교수는 조선왕릉을 ‘신(神)의 정원’이라 말한다. 인공미를 배제한 채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경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조경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조선왕릉은 유교적, 풍수적인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 생태관이 담겨있는 문화의 결정체”라며 “정자각 등 3-4개의 건축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간이므로 그 자체가 조경에 해당한다. 그 조경양식은 누각처럼 복원된 게 아니라 600년전 조선시대부터 줄곧 관리되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중요성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봉분 위쪽 상층목에 나무의 제왕인 소나무를 식재했으며, 중층목으로 5-6월 꽃이 피는 때죽나무를 식재했다. 또 하층목으로 진달래 등 관목류를 식재해 미학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이게 요즘 강조되고 있는 다층구조이며, 생태숲의 개념이다. 우리 조상은 이미 600년전부터 조성하고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이라며 왕릉 주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역사경관림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한다.
한때 선릉, 정릉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제외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선릉은 빌딩 숲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제외시키려 했지만,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국제 학자들로부터 개발 논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19만9천㎡ 규모의 녹지를 보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유산 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강조한 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상 봉분은 33㎡(10평) 미만이고 그 외가 녹지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의 수도권 그린벨트를 형성하는데 기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조경 업계의 할 일에 대해 이 교수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앞으로 원형복원을 위한 사업들이 진행될 것”이라며, “누각 3-4개를 제외하면 전체가 녹지이며, 조경이기 때문에 모두가 조경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꽃 하나를 식재하는 것도 고증을 통해야 하며, 수로를 만드는 것도 풍수와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며, 우리의 영역을 찾고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도 정조대왕 같은 세계적인 왕이 있다. 예를 들어 정조는 능 주변에 상수리나무를 심어 백성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찾아내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널리 알려 세계적인 왕으로 만드는 것도 조경인들이 나서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경학과 학생을 비롯해 조경인들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조경디자인이나 조경계획은 우리나라 정체성이 있는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방의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공간을 설계해야 하며, 정체성을 찾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게 전통을 찾는 것이다. 전통을 찾아서 우리나라다운 설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아가 동아시아의 디자인 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전통을 찾아내고 업역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후학들의 할 일이 많아지고, 조경인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