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그 자체가 조경이다. 그래서 조경인으로서 자긍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과 교수
지난 달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과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는 조선왕릉 40기 전체 실측 도면과 2008년 등재신청서를 작성에 참여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실사단에 왕릉의 가치를 소개하는 등 초기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 교수는 조선왕릉을 ‘신(神)의 정원’이라 말한다. 인공미를 배제한 채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경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조경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조선왕릉은 유교적, 풍수적인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 생태관이 담겨있는 문화의 결정체”라며 “정자각 등 3-4개의 건축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간이므로 그 자체가 조경에 해당한다. 그 조경양식은 누각처럼 복원된 게 아니라 600년전 조선시대부터 줄곧 관리되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중요성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봉분 위쪽 상층목에 나무의 제왕인 소나무를 식재했으며, 중층목으로 5-6월 꽃이 피는 때죽나무를 식재했다. 또 하층목으로 진달래 등 관목류를 식재해 미학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이게 요즘 강조되고 있는 다층구조이며, 생태숲의 개념이다. 우리 조상은 이미 600년전부터 조성하고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이라며 왕릉 주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역사경관림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한다.

▲ 이창환 교수는 "조선왕릉 자체가 조경이기 때문에 조경인으로써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선릉, 정릉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제외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선릉은 빌딩 숲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제외시키려 했지만,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국제 학자들로부터 개발 논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19만9천㎡ 규모의 녹지를 보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유산 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강조한 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상 봉분은 33㎡(10평) 미만이고 그 외가 녹지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의 수도권 그린벨트를 형성하는데 기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조경 업계의 할 일에 대해 이 교수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앞으로 원형복원을 위한 사업들이 진행될 것”이라며, “누각 3-4개를 제외하면 전체가 녹지이며, 조경이기 때문에 모두가 조경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꽃 하나를 식재하는 것도 고증을 통해야 하며, 수로를 만드는 것도 풍수와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며, 우리의 영역을 찾고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도 정조대왕 같은 세계적인 왕이 있다. 예를 들어 정조는 능 주변에 상수리나무를 심어 백성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찾아내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널리 알려 세계적인 왕으로 만드는 것도 조경인들이 나서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경학과 학생을 비롯해 조경인들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조경디자인이나 조경계획은 우리나라 정체성이 있는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방의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공간을 설계해야 하며, 정체성을 찾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게 전통을 찾는 것이다. 전통을 찾아서 우리나라다운 설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아가 동아시아의 디자인 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전통을 찾아내고 업역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후학들의 할 일이 많아지고, 조경인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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