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황금 돼지의 해와 조경인의 소망
[조경시대] 황금 돼지의 해와 조경인의 소망
  •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1.09
  • 호수 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길동 서울시 조경과장
문길동 서울시 조경과장

2019년이 밝았다. 기해(己亥)년이라고 이른바 황금 돼지의 해라고 한다. 작년 초 ‘올해는 황금 개띠의 해입니다’라고 뉴스가 나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1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내년은 쥐의 해이니까 2020년은 황금 쥐띠의 해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내년은 ‘흰 쥐띠’의 해라고 한다. 그 다음은 흰 소띠. 천간(天干)과 십이지(十二支)가 결합한 60간지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데 그 컬러(Color)는 황, 백, 흑, 청, 적색이 이렇게 두 번씩 결합되는 꼴이다.

생각 같아서는 매 해가 마냥 황금의 해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행(五行)사상에 따라서 각 색깔이 뜻하는 고유한 의미가 있다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황금색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서울시의 조경업무를 관장하는 공복(公僕)으로 일하는 나로서는 특히나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시민 여러분이 주신 세금으로 서울시의 이런저런 사업을 할 때마다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 편익을 누릴 수 있게끔 잘 해 볼까 하는 생각이다. 세대를 아우르고 계층을 초월하는 좋은 공공사업은 때로는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꽃밭을 가꾸는 기분이 들 때와 비슷하다.

물론 황, 백, 흑, 청, 적색 중에서 검은 색 꽃은 없다. 하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흙이 검은색에 가깝다고 치자. 양분이 많이 있고 기름이 흐르는 듯 좋은 흙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조경과 정원에 터를 잡고 업을 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무원이나 기업인에게나 작가나 할 것 없이 더욱 좋은 흙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이 시대가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고 각박해지고 있다고 한다. 흙에서 흐르는 기름도 점점 말라가고 조경 산업과 기업들이 점점 메말라간다고 한다. 흙이 말라버리면 아무리 물을 주어도 꽃은 피지 않는다. 검은색이 말라버리면 그 위에 피는 흰 꽃과 파란 잎사귀, 그리고 빨간 꽃과 노란 꽃도 금세 시들어버린다. 오행에서 말하는 모든 색깔은 다 좋은 의미인데, 올해처럼 황금이 들어가는 좋은 색깔조차도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서울시는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으면서 시정 전반에 걸쳐서 참신한 정책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여러 가지 정책들은 때로는 호평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만큼 많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추기가 솔직히 어렵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과 정원에 관한 일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파레토(Pareto) 효율을 추구해 온 바, 나름대로 호평을 받아온 것 같다.

이런 호평은 절대적으로 조경과 정원에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시는 여러분들의 지원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계에서도 든든한 뒷받침을 해주시고 계신다. 공무원이 할 일은 이런 분들을 위해서 물을 잘 뿌려드리는 것이 아닐까. 황, 백, 흑, 청, 적색이 모두 잘 어우러질 수 있게끔, 불합리한 규제는 없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이고 잘 될 수 있는 길인지, 같이 고민하고 부대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역시나 ‘산-관-학’이라는 삼각형의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삼각형의 무게중심은 그 어느 쪽에서 짚어보더라도 정 가운데가 아니라 가운데의 아래쯤이다. 가장 간단한 도형인 삼각형에도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무게중심은 자기에게 쏠리도록 되어 있다. 각 선이 존재하기에 삼각형이라는 도형이 완성되지만, 여기에서 자기 입장에 가까운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기를 바라는 것은 수학적인 공리(公理)다.

검은 흙의 알갱이가 되는 것은 학(學)이다. 배우고 익히는 학생들은 미래를 꿈꾼다. 자신은 언제쯤 꽃대를 타고 올라 잎사귀와 꽃잎이 될까 기대하며 책을 읽고 시험을 치르고 스튜디오에서 설계 실습을 한다. 그런데 전국의 수많은 흙 알갱이와 기름이 되는 학생들이 메마른 환경에 직면한다면 꽃대는커녕 꽃잎은 피어나지도 못한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되거나 아니면 영세한 설계사무소 직원이 되는 현실에서 산(産)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럽다. 관(官)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고 푸념하기도 하고 쓸 만한 학(學)이 모자라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다른 분야의 세력에 밀려 먹거리가 푸짐해지지 못한 이 세상 현실에서, 그나마 꽃대로 올라온 알갱이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제공하지 못하는 산(産)은, 기후변화 때문에 녹아버린 빙하 조각 위를 헤매며, 흡사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굶주린 북극곰 어미의 심정이 아닐까.

관(官) 역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욕은 다 듣고 한편으론 부러움도 받는 이중적인 현실에서, 진정으로 조경계(造景界)와 조경인(造景人)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지, 검은 흙과 빨갛고 흰 꽃에 물은 제대로 줄 생각은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환해풍파(宦海風波)의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라면서, 사방에서 그 능력치에 대한 공격도 받는다.

그런 이유로 이 ‘산-관-학’의 무게중심은 자기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쏠리기를 바란다. 이럴 때에는 황금색이고 빨간색이고 다 소용이 없다. 아마 조경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동네에 가도 다 그러겠지만 이해당사자가 많은 분야는 그만큼 도형의 선분이 많아지기에, 결국 둥그런 원처럼 가운데 방점이 찍히면 그뿐이다. 그런데 조경계는 그게 쉽지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을 짓고 이어진 삼각형이 아니라 이제는 둥글둥글한 원처럼 상하동심(上下同心) 동덕(同德)하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올해도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것도 있고 또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도 많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고 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색깔이나 무게중심에 관계없이, 시민의 편익과 함께 조경인 전체의 편익도 함께 증진되는 방향을 강구하는 것이다. 조경에 터를 잡은 조경인들 역시 시민의 한 사람이고 또 그 편익을 마땅히 누려야 할 존재들이다. 매 해가 황금빛으로 물들 수 없다면 적어도 한 두 해쯤은 황금빛을 만져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12년 동안에 황금의 해가 두 번 돌아온다는데, 조경분야에 뛰어들고 단 한 번도 황금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면, 언제 그 검은색 흙은 좋은 자양분으로 가득 차보겠는가.

2019년 황금 돼지의 해를 맞아서, 조경에 뜻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매진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제는 황금의 기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해본다. 물론 무게중심은, 우리 모두의 협력하기 나름에 달렸을 것이다.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 mgd273@seoul.go.kr 문길동 객원 논설위원님의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