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서울역 고가 기본 계획’과 ‘세운상가 도시 재생 종합 계획’이 국제 현상 공모로 진행 중에 있다. 이미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마포 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 ‘당인리 서울 복합 화력발전소 공원화’, ‘남산 회현 자락 3단계 한양도성 보존·정비 및 공원 조성’ 등 사업이 현상 공모 과정을 거쳐 실행 중에 있다. 1~2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들 공통점은 빈 땅에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활용하던 시설을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하는 데 있다. 좀 더 세분해서 보자면 서울이라는 도시 변화와 함께 대상지 용도와 가치가 변화해왔으며, 시간대별로 그 변화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경향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생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 건축물을 대대적으로 철거한 뒤 다시 짓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으로 정비 사업을 벌이겠다고 했다. 역사·문화 자원특화지역으로 위에 열거한 대상지 외에도 세종대로 일대, 노들섬, 남산 예장자락, 낙원상가·돈화문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지역 자원을 보존하면서 관광명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재생하려는 전략이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동네 구석구석의 오래된 장소나 가치 있는 문화적 자산들을 보존하고 발굴하여 서로 연계함으로써 ‘역사가 흐르는 길’을 조성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경향으로 볼 때 서울의 크고 작은 사업들이 장소가 가진 역사와 문화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기기 시작했으며 성공하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

서울은 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오래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가치를 두고 변화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과시라도 하듯, 과거 기억을 하루아침에 새것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주요 사업이 이루어졌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정도 600년을 앞두고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서울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흔적을 없애거나 개발 시대 상징들을 폭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역시 과거의 흔적을 한순간에 지우고 새로 쓰는 방식이었다. 결과만으로는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진일보된 변화였다. 그러나 이 후 청계천, 시청사, 동대문, 한강 등 서울의 주요 장소가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새로운 랜드마크, 디자인 서울, 명품 도시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면서 장소의 맥락이나 서울의 역사 문화 자원에 대한 가치 평가보다는 멋지고 세련된 결과물과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에 보다 주력한 결과였다.

이와는 달리 최근 변화를 주도하게 된 배경으로는 이전 대형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원인 중 하나다. 전면 철거와 일괄 발주 방식은 한꺼번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과정상 충분한 합의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수행된 사례도 많았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결과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았으며, 지역 주민이 철저히 소외되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 노력으로 서울의 역사성이 주목받게 된 것도 배경으로 들 수 있다. 1~2년 사이 진행된 한양도성 발굴을 통해 시대별로 가치 있는 역사적 유구가 발견되었고, 어떻게 보존하고 이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 역사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50년 이전의 시간을 역사로 인식했던 태도에서 가까운 시간에 대한 가치와 어두운 역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또한 역사에 기록되는 국가적인 사건 뿐 아니라 개인의 미시사 역시 존중해야 할 가치로 변화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배경 중 하나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보존과 개발 방식 또한 이전과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 도시의 변화는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대 도시에서 변화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과 접근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 총회가 2011년 채택한 ‘역사도시경관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Recommendation on Historic Urban Landscape)’는 서울의 변화에 유의미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역사도시경관이란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들이 역사적으로 중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시 지역’을 말한다. 사회 문화적 가치, 경제적 과정, 다양성과 정체성과 관련된 유산의 무형적 내용을 포함한다. 역사도시경관의 개념은 도시의 변화 관리 방법을 제안하며 그 변화 양상도 의미 있는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변화가 섞여 있는 서울에 대해 역사도시경관 개념을 바탕으로 비전을 수립하고 계획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사업의 수행을 위한 부처 간의 협력이 필요하며, 공원의 운영 전략을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소통하며 수립해야 한다. 역사 문화 가치가 있는 대상지마다 도시의 맥락을 통해 이해해야 하며 미래의 변화에 어떻게 조응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구상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할 점으로는 운영자, 이용자, 전문가 간에 역사와 시간적 층위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서울 전체에 대한 역사경관 자원을 파악하고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 모처럼 서울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주목하고 있는 시점에서 기본적인 철학과 역사도시에 대한 비전 없이는 또 다른 방식의 개발 행위가 될 수 있다. 역사 문화는 한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미래에도 지속되어야 할 서울의 고유한 가치다. 서울에는 더 이상의 랜드마크는 필요하지 않다. 서울이 가진 오래된 것과 새로운 변화의 융합, 그것을 어떻게 관리, 보존하고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서울이 가진 역사 그 자체가 랜드마크이기 때문이다.

서영애 (객원 논설위원·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