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직(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최근 들어 총괄계획가를 운용하는 정책과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촌지역의 마을개발을 총괄 조정하는 총괄계획가제도를 2012년과 2013년도에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지자체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지역개발 관련 사업들간의 연계성을 확보하고 주민과 지자체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위하여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민간전문가 제도를 2015년부터 시행하고자 준비 중이다. 그동안 국토환경디자인 시범사업을 통하여 조금씩 보완해 오던 총괄계획가 제도를 내년부터 본격 시행하려는 것이다. 이밖에 문화재행복마을가꾸기사업이나 농어촌마을리모델링사업, 주거환경정비계획 수립 등 여러 중앙부처 사업들이 총괄계획가를 활용하고 있다.

총괄계획가를 위촉하는 현상은 중앙 부처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오던 것이었다. LH공사의 전신인 주택공사에서는 개별 단지 단위의 분산된 설계방식으로는 조율이 어려운 도시공간과 개별단지 단위의 생활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도시기반시설과 주거단지의 이분법적 계획과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총괄조경가 제도를 2006년부터 운용한 바가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서울시의 총괄건축가, 영주시의 디자인관리단장, 포항시 시정건축가 등도 넓게 보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상근직이 아닌 경우까지 포함하면 지자체의 사례는 훨씬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조경, 도시, 건축, 환경, 경관 관련 사업들의 마스터플랜 수립, 설계, 시공, 운영관리에 이르는 사업의 전 과정에서 기획과 시행, 감독과 조정을 담당함으로써 사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효과를 높이는 전문가들의 활동은 도시든 농촌이든, 그리고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가리지 않고 요구되고 있다.

총괄계획가는 그 역할에 따라 크게 사업총괄계획가와 지역총괄계획가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이나 농산어촌지역 개발사업 등과 같은 중앙정부 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중·장기 사업을 전담하여 기획단계부터 사업 전과정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계획가를 말한다. 그리고 후자는 지역의 조경, 건축 및 도시 관련 디자인 정책이나 종합적 경관보전 및 형성전략 수립 등을 주관하고 공간환경 디자인의 가치 향상을 위한 지역사업들 전반을 총괄 조정하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이 제도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보다 거시적이고 통합적인 측면에서 합목적적인 결과를 얻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업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전략적인 기획에서부터 과업지시서의 작성, 적합한 용역사의 발굴 및 선정, 합리적이고 참신한 계획 및 설계 수립, 그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시공과 유지관리가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누군가 통합적 관점에서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우리 사회가 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계획과 설계의 양상이 주체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반영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효과를 이루는데 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주민들 의견을 존중하는 참여형 계획이 보편화되면서 기존에 접근해 오던 전문가 중심의 계획과 설계 방식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과 행정, 전문가 사이에서 각각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예상되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공동체의 가치와 인식을 계획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계획가들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중간에서 매개가 되어 상호간의 이해를 돕고 사업이 보다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할 때 사업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아울러 공간의 개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기반이 되는 공동체의 활성화와 사회적 관계의 회복이 중시되고 이와 함께 소득의 향상과 일자리 창출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계획의 내용적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총괄계획가의 활동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조경, 도시, 건축, 문화 등 각 분야의 깊은 지식과 경험과는 별개로 사회 경제적인 이해, 지역과 정책에 대한 지식, 조정과 타협의 기술과 열린 마음 등을 복합적으로 갖출 때 비로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흔히 이용해 왔던 자문회의, 공청회, 주민설명회 등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의견수렴과 전문가적 영역의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개별적으로 시행되는 여러 개발사업들을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통합 조정하고 구현해 내는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의 전략을 구체적인 행정과 정책, 그리고 사업으로 연계시킴으로써 실현해낼 수 있는 지역기반의 브레인이 계획이나 설계안을 만드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절실하게 필요한데, 이러한 요구를 가장 가깝게 구현해 줄 존재가 바로 지역총괄계획가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업이란 행정가는 행정가대로, 계획·설계가는 그들대로, 주민들 또한 자신들이 그 사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사업일 것이다.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이루었다고 각 주체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업이 진정 성공한 사업일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다루게 되는 많은 공공공간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과 욕망, 보이지 않는 힘과 뜻이 교차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주체들의 에너지와 역량을 모으고 보다 합목적적인 결과로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 조경은 정말 유효하고도 매력적인 전공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조경인들이 총괄계획가 제도에 관심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이유직(객원 논설위원·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