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직(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농촌개발의 패러다임이 개발중심에서 보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농업과 농촌의 유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농촌 발전의 신성장 동력이자 지역 정체성 확보와 지역발전의 핵심자원으로 이들이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업유산은 농업인이 지역사회의 문화적, 농업적, 생물학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형성, 진화시켜온 보전, 유지 및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적 농업활동 시스템과 이러한 결과로 나타나는 농촌의 경관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농업유산은 보존, 규제 중심의 문화재와 구별되며 농촌의 입장에서 보전과 활용의 관점이 중시된다. 하지만 많은 농업유산들이 세월의 흐름 뒤편으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전통 농업 유산의 발굴과 보전은 늦출 수 없는 일이며 농촌 고유자원으로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2년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 GIAHS)를 창설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제도는 전 세계의 독창적인 농업문화와 인류 진화 시스템 및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여 지속가능한 농업을 성취하고 통합적인 농촌개발을 유도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식량 및 생계 수단의 확보, 생물다양성 및 생태적 기능, 전통적 지식체계와 농업기술의 계승, 농업문화·가치체계 및 사회제도, 경관·토지 및 수자원 관리 특성 등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3년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11개국에서 25개소가 등재되었으며, 18개국 30여개소가 후보로 올라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3월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6일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하여 농업유산 지정 관리 기준을 제정, 고시하였다. 이에 따라 시·도에게서 신청을 받았는데 모두 64개가 신청되었다. 서면조사와 현장조사를 실시하여 최종적으로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돌담밭을 2013년 1월 25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청산도 구들장논은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있다. 경사가 심한 지형에 돌로 구들을 놓듯이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 만든 논을 말한다. 상부의 논에서 모인 물은 암거 수로를 통해 하부의 논으로 배수됨으로써 농업용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한 연속적 관개구조가 이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논농사를 짓기 위해 보리와 풀을 사용한 비배관리, 얕은 토심에 적합한 농기구, 보책인과 소언두라는 이름의 농업공동체, 칠성과 지앙이라는 관련 문화 활동 등이 이 논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돌담밭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밭을 둘러싼 돌담으로서 제주도 전역에 걸쳐 2만2108km나 조성되어 있다. 제주의 농업활동은 1세기 무렵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개간과 농경을 하면서 캐낸 돌을 바람과 토양을 관리하기 위해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길고 긴 검은색의 현무암 밭담이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치 흑룡처럼 보이기 때문에 흑룡만리라고도 불린다. 제주의 강한 바람에 맞서 파풍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토양유실을 방지하고 농경지의 경계를 이루며 마소의 침입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토양의 보습과 경작지의 보온 효과를 이루고 생물종 보존에 기여한 이 밭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지형과 어울려 제주의 농업경관을 이루었다. 이들 두 유산은 지난 2014년 4월 4일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도입하여 전통 농업유산과 농업문화의 가치를 제고하고 창조적 활용을 통하여 농촌 공동체의 발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유산 지정을 2020년까지 25개소로 확대하고 경쟁력 있는 국가유산은 선별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지역별로 독특하고 차별화된 콘텐츠, 스토리텔링, 브랜드, 캐릭터 개발과 연계하고 농촌의 다원적 자원을 활용한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중요농업유산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고장 판촉 효과를 제고시킬 것이며 세계유산과 전통문화, 그리고 지역 먹을거리, 휴양시설이 융합된 종합 휴양공간(eco museum)으로의 육성 또한 국내외 관광객들 방문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때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던 시설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말미암아 쇠퇴하고 결국에는 흔적기관처럼 퇴화해 버리지만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중한 자산이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독일의 뒤스부르크-노드 공원처럼 지역의 재생에 오래된 산업시설들이 효과적인 자원으로 활용되듯이 우리네 농촌을 살리는 데 있어 그동안 소홀하게 방치해 두었던 농업·농촌유산들을 우리는 이제 되돌아보아야 한다.

때마침 한국농촌계획학회가 주최하는 제12회 농촌어메니티마을설계공모전의 주제가 농업·농촌 유산을 활용한 창조적 마을만들기라는 점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농업 및 농촌 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일은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의 출발점이다. 과거 농촌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던 시설 및 활동들과 이들이 이루어내는 경관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보전해야 함은 동시대 조경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조경인들이 농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이유직(객원 논설위원·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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