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원 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고 빠르게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원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속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 프로그램이 정원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처럼 보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듣고 나면 누구나 정원 스케치 한 장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정원 디자이너가 될 것 같은 문구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물론 몇몇 교육 기관에서는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그 수는 미비해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정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즐기는 방법보다는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더 많이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정원일은 잘하는 것만큼이나 그 일을 즐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원에서 즐거움을 찾는 법 또는 즐거움을 누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급 기술을 가르쳐 준다 해도 정원에 대해 반쪽만을 가르치는 격이 될 것이다.

 

▲ RHS Horticultural practical certification 식물 이름 배우기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정원일은 정원 안에서 즐거움을 느낀 시간에 비례해 정원사의 능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 정원 안에서 즐거움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멋져 보이는 설계도면을 그리거나 그 나라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정원 역사를 줄줄 외우고 정원 이론들을 섭렵했다 하더라도 진정한 정원사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할 것이다. 정원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정원사 얼굴만큼 전문성이 느껴지는 장면은 없어 보인다. 작년 현재 영국정원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정원사들 중 한명인 존 브룩스의 정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허름한 옷을 입은 주름진 얼굴의 남성이 전정 가위를 들고 정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 내지는 이곳에서 일하는 정원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존 브룩스였다. 영국정원의 거장이 소박하게 가위를 들고 자신의 정원을 돌보고 있는 장면을 보며, 책상에 앉아 멋있게 설계를 하며 트렌디한 정원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정원 작가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정원을 돌보는 일에는 수고하지 않고,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을 모르는 책상 앞의 정원 디자이너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부터 ‘푸르네’를 통해 인터넷 화상으로 정원에 관련된 강의를 십여 차례 한 적이 있다. 정원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좁은 책상에 앉아 정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정원 안에서 정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 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실제로 그 열정을 키워낼 수 있는 정원교육 공간, 즉 정원에서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정원을 공부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을 책상에 앉히기 보다는 정원으로 나가 흙을 만지며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나는 가끔 정원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 쪽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는 정원가란 정원 디자이너로서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식물에 대한 관심조차 없이 그저 그림을 예쁘게 그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나 단지 디자이너로서 멋져 보이는 모습을 기대하고 정원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많은 정원 프로그램들이 이러한 상상을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그럼 실질적인 정원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나는 영국의 정원교육을 통해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 RHS Horticultural practical certification 흙에 대해 배우기


2013년 9월부터는 영국의 초・중등 교육과정에 ‘정원’이 정식 과정으로 들어간다. 그 전에도 아이들을 위한 정원 교육프로그램은 상당히 많다. 특히 RHS(영국왕립정원학회)에서 주관하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정원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씨를 뿌리는 방법 보다는 씨를 뿌리는 즐거움, 식물 이름을 교실에 앉아서 배우는 대신 정원에 숨어있는 식물을 스스로 찾아내는 즐거움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정원 안에서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더욱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정원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그들이 추진하는 정원교육 목적을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정원을 가꾸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과 정원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치유의 효과를 통해 어린이들의 감성을 순화시키는 것이다. 새 학기부터 영국 학생들은 누구나 정원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게 되고,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현대 물질문명의 병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의 정서를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도시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에게 정원의 즐거움을 통해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닌 성인들을 위한 교육을 보더라도 실질적인 정원을 만드는, 그리고 즐기는 일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이지만 교육을 받고 있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교육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 예로 RHS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원 원예 실무 과정(RHS Horticultural practical certification)을 보면 정원 디자인의 이해, 역사 등등은 교육과정에 없다. 철저하게 정원의 식물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정원 일을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사실 우리가 가장 쉽게 포기하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정원에서 만나는 식물이다. 식물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선과 그래픽으로 정원을 디자인한다 해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주 식물 10여 종의 특징과 어떻게 심겨야 하고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직접 배우고, 그 식물들을 아름답게 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년 동안 어떻게 정원 일을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다. 땅을 고르는 일부터 잡초를 제거하는 일, 번식시키는 방법 그리고 식물을 어떻게 조화롭게 심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실습해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실습 하다보면 힘들기는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고 어느 순간 교육을 받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정원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영국 정원교육은 최고의 정원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닌 즐길 줄 아는 정원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 정원의 거장 거투루트 지킬은 ‘Great garden(뛰어난 정원)’이라는 단어보다는 ‘Homely garden(단순하지만 편안한 정원)’을 많이 사용하였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스스로 정원을 가꿀 수 있게 만들어가는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고, 이러한 정원을 만들 수 있는 정원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영국 정원교육이다.

 

▲ RHS Horticultural practical certification 화단 가꾸는 법 배우기


영국에서 가장 즐겁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BBC의 ‘Garders’ World’인데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정원 안에서 사계절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저 즐겁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실제로 옆집에 사는 아저씨 아주머니 같고, 그들의 흙 묻은 옷이나 흙먼지가 잔뜩 낀 손톱을 보는 것만으로 정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듯 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정원 프로그램이 이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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