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sham nursery의 유기농 카페
▲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어린 시절 어버이 날 부모님께 달아드릴 카네이션을 사기 위해 모아놓은 용돈을 들고 동네 시장에 있는 꽃집에 갔었다. 5월에 꽃 수요가 많아서 그러했는지 몰라도 그 날은 주인집 아주머니 아들로 보이는 대학생 형이 꽃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남자와 여자의 일을 엄격히 구분하는 교육을 받던 나는 남자가 꽃을 다듬고 가지런히 모아 두는 모습이 너무 신선하게 보였다. 그 대학생 형은 꽃을 다듬는 내내 주인 아주머니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좁은 꽃집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때의 꽃집 경험이 어린 나에게 상당히 강한 인상으로 남아 상당 기간 나의 장래 희망은 꽃집 총각이었다. 그 이유가 단지 꽃을 팔고 싶어서는 당연히 아니다. 내 마음은 작은 가게 안 꽃과 잎의 싱그러움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 흐르는 즐거움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식물을 판매하는 상업적인 공간이 소비자에게 즐거움과 편안함까지도 제공할 수 있는 잠재적 기능, 즉 문화를 제공하는 기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일 때문에 양재동 꽃시장에 종종 들르곤 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갈 때는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지만, 나설 때는 실망을 가지고 돌아갈 때가 종종 있다. 식물이 대표하는 정원에 관한 문화를 보고 느끼고 사고 싶은 마음으로 찾은 꽃시장이지만 결국 손에 들고 나온 것은 화분 몇 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꽃시장을 찾으려면 크게 마음먹고 길을 나서야 할 만큼 흔하지도 않다. 아직 한국의 정원문화는 산업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다고 본다. 정원 강의를 듣거나 칼럼을 읽은 학생들이 정원을 공부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는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겁부터 덜컥 난다. 정원을 사랑하고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를 고려한다면 장미빛 청사진만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원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 시장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한계도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Petersham nursery에 진열되어 있는 웰링턴 부츠

어떻게 하면 정원 산업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식물과 같은 단발성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 문화를 판매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가 산업화 될 때 더욱 파급 효과가 커지고, 문화의 완성도 또한 높아지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영국 정원이라 하면 떠오르는 풍경식 정원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원이고 영국의 정원문화에 큰 영향을 준 정원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정원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막대한 자금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아름다운 정원이라고만 말할 수 없어진다. 영국 풍경식 정원의 자금은 노예들의 설탕 재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이 뒷받침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영국 풍경식 정원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정원 문화와 정원 산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여 지금의 영국의 정원 그리고 문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국은 빙하의 영향으로 자생식물 수가 많지 않다. 19세기가 되어 많은 식물 수집가들이 외국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영국으로 가지고 왔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고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이러한 희귀식물들은 일부 영주의 온실에서 재배되었고, 일반 시민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정원에 심고는 했다. 하지만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달하면서 특히 교통이 발달로 희귀식물들이 영국 곳곳으로 퍼지게 되고 일반 시민들의 정원에도 이러한 식물들이 자리하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영국의 Nursery(묘포장)이다. 영국 정원 문화를 산업화로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던 것에서 사람들이 정원을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연구하고 관련된 상품들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묘포장들은 주로 가족단위로 운영되고 대를 이어 지속되기 때문에, 지역과 가문의 특색을 반영한 정원 문화가 식물과 더불어 대대로 계승되었다.

1960년대가 되면서 영국의 정원문화가 더욱 성장하게 되자 영국 정원 산업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축적된 정원 문화를 좀 더 대중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 가든 센터(Garden Centre)이다. Nursery가 주로 정원사들에게 식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가든 센터는 일반인들에게 정원에 관한 다양한 DIY Gardening 도구들, 다양한 씨앗과 식물 화분, 유기농으로 만드는 맛있는 차와 수프, 카페까지 그저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닌 정원 문화 전체를 판매하는 곳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트 앤 크레프트(Art and Craft) 운동 영향으로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을 즐기는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국 문화의 단편이 가든 센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가든 센터 자체가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 이곳에서는 어떤 물건을 사느냐 보다는 이 물건을 사서 어떻게 사용하고 즐기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가든 센터는 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정원을 갖기 힘들어진 현대인을 위한 쉼터가 되기도 하고, 정원이 없는 아파트는 화분을 통해 식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가든 센터의 성장은 정원의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가든 센터 시장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영국의 HTA(The Horticultural Trades Association)에 따르면 2010년 가든 센터 시장 규모는 8조 원을 넘겼다. 이는 매년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가든 센터는 그 해의 날씨와 경제적 여건에 몹시 민감하지만 워낙 다양한 문화상품이 파생되어 있기 때문에 식물이 적게 팔리면 정원 관련 책이 많이 팔리는 등 전체적인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목이나 관목, 또는 다년초 식물의 매출은 5년 동안 변화가 거의 없지만, 구근 시장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시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하기보다 정원문화의 한 모습으로 봄이 되면 구근이 올라오는 모습을 기다리고 잘 보관했다가 가을에 다시 번식시키는 즐거움이 정원 문화로 자리 잡고 이것이 산업으로 발전한 모습이다. 영국은 한국의 양재 꽃시장과 같은 대규모 화훼단지는 찾아보기 쉽지 않고 마을단위, 또는 유명한 정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가든 센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규모를 감안 할 때 8조의 시장 규모는 영국 정원 문화와 산업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높지 않다. 2013년도 영국경제지표를 보더라도 전체 시장이 약 1.3%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정원분야는 약 3.3%성장으로 전체 산업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작년에 발표된 가든 센터 랭킹을 살펴보면 Lohgacres Nursery(Garden Centre)가 1위를 차지했다. 이곳은 약 3만6천 평방미터 규모의 가든 센타로 연 매출이 약 300억 원에 달한다. 1위부터 10위까지 가든센터의 매출액을 합쳐보면 2000억 원에 달하는데 Lohgacres Nursery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 많이 있다. 한국의 경우 하남 화훼단지가 약 100만 평방미터 규모에 연간 매출이 20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화훼단지를 방문해보면 빽빽하게 들어선 꽃가게들이 저마다 다양한 꽃들을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 관상용으로 식물을 판매한다. 실제로 식물을 구입하다보면 어떻게 물을 주고 관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식물을 정원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영국 가든 센타는 이러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교육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가족들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레저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든 센타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에서 정원 문화의 저변이 좀 더 확대되고 이러한 문화가 산업으로 발전하여 단순히 식물을 파는 화훼시장이 아니라 가치 있는 정원 문화를 팔고,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인 가든 센터가 만들어지면 한국의 정원 문화도 새로운 모습의 문화로 확대 재생산되지 않을까?
 

▲ Danmans Garden Centre의 휴식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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