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규(푸르네 객원 정원사·영국 에식스대 위틀칼리지 박사과정)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름철, 그것도 가장 날씨가 좋은 시즌에 유럽을 경험하고 돌아간다. 고풍스러운 거리 구석구석 비춰주는 여름의 햇살과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이국적인 문화, 여유롭게 거리를 메우고 있는 사람들(대부분은 관광객들이다), 그리고 해외여행의 설렘이 더해져 대부분 여행객들에게 유럽은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곳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하지만 겨울에 유럽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럽은 낭만이 가득한 곳만이 아닌 회색빛 우중충한 날씨와 추위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우울한 기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종종 지인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영국의 날씨에 대해 “영국의 여름은 신의 축복이고, 영국의 겨울은 신의 저주입니다.”라고 말한다. 겨울이 되면 아침 8시가 돼서야 해가 뜨기 시작하고 오후 4시가 되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해를 볼 수 있는 날도 한 달에 며칠 남짓이다. 영국은 이렇게 우울한 겨울이 4개월가량 지루하게 지속된다. 10월이 되면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가 시작돼 거리 곳곳이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화려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우울한 자연 환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유독 침략의 이야기가 많았던 유럽대륙의 역사를 살펴보면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조금 더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환상적인 여름뿐 아니라 우울한 겨울에도 사람들은 자기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는 모습은 우리의 삶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겉모습이 다르고, 만들어온 문화도 다르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의한 삶의 모습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IT의 발달로 좁아진 요즘의 세대는 그 차이가 더 좁아진 듯하다. 그럼에도 영국이라는 나라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여전히 오랜 전통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작년여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곳 교수님 한분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하셨다. “왜 영국으로 공부하러 왔어요? 한국은 인터넷도 빠르고, 전철도 넓고 빠르고, 도시 경관도 영국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던데. 도대체 이런 나라에 왜 왔어요?” 글쎄, 내가 이곳에 왜 왔을까? 20년 전 처음 영국을 방문했던 때도 구름 한 점 없는 여름이었다. 2박3일간 일정동안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공원을 보며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많이 변했다.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고 밀도 있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영국의 주거환경이나 자연 환경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바꾸기 어려워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그게 바로 전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생각으로 앞서 영국 교수님의 질문에 사회적인 인프라는 한국이 더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잘 보존된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이 현 시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그 문화를 배우러 왔다고 대답을 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정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전통적으로 정원 안에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에 그들의 자연 환경에 맞는 즐거움을 정원 안에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화창한 여름의 정원이 아닌 우울한 겨울에 영국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겨울 정원의 모습은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가 여전히 푸름을 뿜어내고 있는 정원,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정원, 또는 죽은 듯이 고요한 정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조경계획을 진행하면서 겨울철 특징으로 ‘눈꽃이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참으로 정원 안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든 겨울철이지만 영국의 겨울 정원을 들여다보면 눈꽃보다 훨씬 더 화려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11월이 되면 영국 정원들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여름철 다수를 차지하는 푸른색과 짧은 가을을 수놓은 울긋불긋한 단풍이 자취를 감춘 겨울 정원에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줄기와 가지의 화려한 색깔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자작나무의 순백색 줄기는 어떤 눈꽃보다도 정원을 더 겨울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또한 버드나무류(Salix)와 흰말채나무류(Cornus)의 줄기는 여름철 다양한 꽃들 못지않은 화려함을 보여주는데, 오래전부터 품종개량이 이루어져 노란색부터 검붉은 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껍데기를 가진 나무를 구할 수 있고, 이 다양한 색깔들이 우울한 날씨의 겨울 정원에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Salix와 Cornus 종류는 가지는 활처럼 쉽게 구부러지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려 화려한 색깔과 더불어 유쾌한 움직임으로 정원을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해 준다. 이러한 종류의 나무들은 흐리고 비가 살짝 내리는 날에 그 색깔이 더 선명해 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가라앉기 쉬운 겨울 날씨 동안에 우울함을 걷어내 주는 역할을 해준다.

겨울 정원과 함께 겨울의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고 살다 보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 영국 정원의 봄은 여린 잎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된다. 분명히 겨울 동안 내린 눈은 다 녹았는데 정원이 다시 한 번 하얗게 덮여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물론 진짜 눈이 온 것이 아니라 스노우드롭(Snowdrop)이라는 구근이 얼어있던 정원의 흙을 뚫고 올라온 것이다. 이렇듯 영국 정원을 겨울의 긴 잠에서 깨워주는 역할을 구근(Bulb)들이 한다. 정원 안에서 구근들은 너무나 매력적인 생명체이다. 단단하게 얼어 있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구근의 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 없이 여려 보이지만 세상 어느 생명체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함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 정원 안에 수선화, 스노우드롭, 크로커스가 잔디 위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면 이제 봄이 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아주 고전적인 자연의 신호이다. 이러한 구근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교적 관리가 용이하고 오랜 기간 잊고 살지만 봄이 되면 또 다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으로 여러 해 동안 아름다움을 지속할 수 있으며, 정원 안에서 인간과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의 구근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2월이 되면 스노우드롭을 보기 위해 정원을 찾고 조그만 화분에 구근을 키워 꽃을 틔우도록 가꾼다. 3월이 되면 온 천지가 수선화로 뒤덮이게 된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워스워드(Worthword)의 시에 ‘수선화가 춤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직 바람이 매서운 영국 북부의 날씨에 꽃을 피운 수선화가 지면 한 가득인 모습을 보면 시의 구절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러한 구근을 식재하는 것은 봄철 잔디밭이나 화단의 가장자리에 생동감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는 이른 봄, 나뭇잎이 거의 없는 낙엽수 아래 식재함으로 활력 넘치는 정원을 연출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근은 햇볕을 가득 받아야 하나, 봄철 잎이 떨어진 낙엽수 아래는 그늘이 지지 않고 햇볕이 잘 들기 때문에 생장에도 지장이 없다. 메마른 느낌을 주는 나무아래 화사한 구근들의 꽃망울은 봄의 감동을 더하게 만든다.

이 시기에 꽃을 보기 위해서는 가을철에 구근을 심어야 한다. 구근을 이용한 식재 계획을 할 때에는 인위적인 배식을 피해야 한다. BBC Gardener’s World 진행자 Monti Don은 구근을 심으려고 하는 범위를 정해 놓고 손으로 흩어 뿌려 구근이 떨어진 곳에 심는 것이 가장 자연의 법칙에 맞는 것이라 안내한다. 손으로 불규칙하게 뿌려주고 구근 크기의 3~4배 정도 되는 깊이로 묻어주면 된다. 이때 구근끼리 너무 붙어 있으면 꽃이 적게 피게 됨으로 주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겨울의 정원에도 생명이 있고,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는 구근들에 의해 잠이 깨는 봄의 정원에도 생명은 있다. 감춰졌던 생명을 바라보며 또 다른 기운을 기다리는 설렘이 각각 겨울 정원과 봄의 정원의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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