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정원 요소의 하나인 정원 미로의 유형과 형태, 그리고 그곳에서의 행위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봄을 목적으로 한다.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상징의 하나인 미로는 삶의 여정의 복잡성이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세상의 창조 등에 대한 은유적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이는 신화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이상적 장소를 원형으로 하는 정원은 그 어원이나 물리적 형태상 위요된 형태이고, 이는 미로의 근본적 성격과도 일치한다. 실제 공간인 동시에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소인 미로와, 지상에서 가장 안락한 장소인 정원이라는 두 요소가 만나 ‘정원 미로’라는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문명의 초기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미로는 르네상스 시기에 정원 요소로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다양한 형태로 발달한다.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가 시작된 이 시기에 가장 혼란스러운 세계를 상징하는 미로가 이상적 낙원을 지상에 재현하고자 한 정원에 등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고전의 재발견과 재해석이 활발했던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전의 재발견을 계기로 하여 고대의 미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여러 문학작품과 이론서, 회화를 통해 정원 미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복잡하면서도 일정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정원 미로는 인간의 기술과 질서를 상징하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크게 유행했다.

고대와 중세의 미로는 주로 건물 바닥에 조영되어 평면적이고, 다양한 상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정원에 등장한 미로는 다양한 높이로 전정된 식물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조영되었고, 대개 사각형이나 팔각형, 원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조성되어 정형식 정원에 하나의 구성단위로 도입되기에 용이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물로 만들어진 정원의 미로를 거니는 방문자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따라서 정원 미로에는 상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공감각적이고 세속적 유희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성격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랑의 정원’ 유형의 정원 미로이다.

17세기 베르사유 정원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길을 따라 가는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원 미로가 등장했다. 하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풍경식 정원과 픽처레스크 미학이 유행하면서 정원의 형태적 요소로서의 정원 미로는 다른 기하학적 요소들과 함께 점차 쇠퇴한다. 하지만 정원을 거니는 이들을 헤매게 만드는 픽처레스크 정원의 비대칭적 구성과 구불구불한 길은 그 자체가 자연이 만든 일종의 미로가 되기에, 정원 미로가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실재하는 공간인 동시에 상징적인 미로와 정원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미로의 이미지가 현실의 복잡함을 훌륭하게 시각화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면, 정원은 푸코가 말했듯 “세상의 가장 작은 조각이자, 세계의 전부이다.” 즉, 정원 미로는 정원에 도입된 하나의 장식적, 유희적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 담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본질적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이자, 정원 자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 것이다.

황주영(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조경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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