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북서울꿈의숲과 고 김흥수
[조경시대] 북서울꿈의숲과 고 김흥수
  • 박인규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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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어반환경 고문
박인규 어반환경 고문

도시에서 공원은 바쁜 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한가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미국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센트럴파크는 50만 그루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뉴욕의 허파이다. 1850년대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조성할 때 규모가 너무 크다고 반대하는 여론이 있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만약 맨해튼 중심부에 큰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몇 년 후에는 똑 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북서울꿈의숲은 도시계획상 오동근린공원이 정식명칭이며, 소유자는 안동 김씨 문중이고, 1980년대 중반 드림랜드라는 민자유치 공원으로 조성됐다. 그 후 공원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점차 낙후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이후에는 슬럼화 된 흉물로 방치됐다.

필자는 지난 2006년 서울시청 공원과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강남북간 균형발전 차원에서 드림랜드를 새로운 공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시청 조경과에서 생명의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같이했고, 청계천복원추진본부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조오영 팀장과 김흥수 주임을 픽업해서 TF팀을 꾸렸다.

우선 중요한 일은 시장 방침을 받는 일이었다. 공원을 조성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전체 면적 30만㎡가 모두 사유지라서 공시지가로 계산해도 1500억 원이 들어가고, 감정 평가할 경우 최소한 2500억 원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지소유자와는 토지매입비를 최대한 낮추는 협상이 필요했고, 시장단에서는 강북지역에 새로운 대형공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조오형 팀장, 김흥수 주임과 매일 야근했다. 그 당시 사무실이 남산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밤 12시가 다 되어 남산 한옥마을을 더듬거리며 내로와 충무로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 한접시와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고 헤어졌다. 그런 와중에 김흥수 주임이 서울대공원으로 발령났다. 인사규정상 본청에 3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사업소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인사과를 찾아가 “김 주임이 없으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라며, 서울대공원에서 공원과로 파견 근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 서울대공원은 본청보다는 한가한 부서인데 지금 생각하면 일 때문에 사람을 너무 희생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죄책감이 든다.

내부적으로 토지보상을 공시지가 이하로 결정하고, 안동김씨 문중과 수차례 만나 협의했다. 공원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의미 있는 일이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보상받을 기회가 없다고 설득했다.

시장방침을 받기 위해 시장비서실 유창수 정책비서관을 만나 공원 조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유비서관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후배이고, 공원녹지분야에 대한 마인드가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 줬다.

결국 문중과 협의를 통해 공시지가의 95% 수준에서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시장실에서 OK사인이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유창수 비서관이다.

토지보상을 포함한 설계, 시공, 관리에 대한 공원조성계획 방침을 수립해 시장결재를 받은 후 조오영 팀장과 김흥수 주임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공원,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추진했다.

조경, 건축, 토목 관련 학회에 의뢰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영국, 미국 등의 전문가 및 교수로 설계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2008년 5월 우이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1박2일 심의를 거쳐 씨토포스(대표 최신현)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설계안이 확정되자 본격적으로 시공할 준비를 했다. 행정지원, 건축, 토목, 전기, 통신, 환경직 직원을 확보하여 TF팀을 확대하고, 유영봉 팀장(현 서울시 푸른도시정책과장)이 팀을 이끌었다.

2008년 10월. 착공식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으나,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살아온 무허가 건물 주민들이 이주를 불응해 공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김흥수 주임은 매일 새벽에 무허가 건물 앞에서 세입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을 통해 이주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에 건물을 철거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공원인근에 숙소를 얻어 김 주임을 비롯해 TF팀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에 대한 개념을 잊고 살았다.

김흥수 주임이 집에 들어가지 않으니 담당 팀장과 과장도 밤늦게까지 현장에 남아서 일을 했고, 감리단장과 현장소장을 비롯해 모든 직원들이 모두 내일처럼 합심하여 개장시기를 맞추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2009년 10월. 공원개장식은 약 3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날 저녁 김흥수 주임을 비롯해 TF팀 직원들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눈물을 흘렸고, 더 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허탈감에 밤새 술로 달랬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흥수 주임이 폐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많은 일을 시켜서였을까? 북서울꿈의숲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아서 그렇게 됐을까? 김흥수 주임은 암투병 끝에 2013년 6월 세상을 달리했다.

김 주임을 기리기 위해 고인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노력이 눈물로 녹아있는 북서울꿈의숲 문화광장 한 켠에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이팝나무를 심고, 조그마한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직원들이 매년 찾아가 고인을 기리고 있다.

조금 있으면 김흥수 주임이 세상을 떠난 날다. 북서울꿈의숲을 만드느라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과 함께 찾아가 이팝나무에 막걸리 한잔을 부어 주어야겠다.

박인규 객원 논설위원
박인규 객원 논설위원 skpik@naver.com 박인규 객원 논설위원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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