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동 작가는 한국의 정서로 ‘여백’에 주목했다. 이 여백이 올해 2016 코리아가든쇼에서 윤 작가에게 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한국조경신문과 국립수목원이 공동 주관한 코리아가든쇼의 올해 공모 주제는 ‘K-Garden 가장 한국적인 멋을 담은 신한류 정원’이었다.

“지난 2월 처음 공고가 났을 때 주제를 보고 약간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예전부터 막연하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주제였고, 오히려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주제였어요. 그래서 곧바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요. 가든쇼가 열릴 때마다 보면 정자(亭子)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정자가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인가, 정서를 담아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지요.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어떻게 보고, 예술 활동에 자연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 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윤 작가는 세가지 결론을 도출했다고 한다. 첫째,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권위적이지 않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했지, 자연을 억압하면서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둘째, 그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인공을 더하는 것을 가능한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고자 했다. 셋째,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단순함은 곧 편안함이기도 하다.

“오감이 깨어나는 ‘시(詩)의 정원’을 고갱이로 잡고, 작업을 준비했어요. ‘자연을 섬세하고 겸허하게 즐길 줄 아는 우리 정서와 감각을 담자. 의도된 장치에 의한 유연한 경계에 의해 파생되는 미감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윤 작가의 고민으로 탄생한 작품이 ‘한시원(韓詩園)’이다. 굳이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한(韓)은 우리 정서를 대표하고, 시(詩)는 멋과 여백이다. 여백은 여흥과 통한다. 꽉 채우지 않고 남긴다. 이것이 여백이고 여흥이다. 자연의 속성이 곧 여백이고 여흥이다.

한시원의 낮은 돌담을 돌아가면, 싸리문과 만난다. 싸리문엔 ‘한시원’이라고 나무 팻말이 붙어있고, 싸리문은 반쯤 열려있다.

“문을 일부러 반쯤 열어놓았어요. 문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지만, 싸리문은 안과 밖을 명확히 분리해 나누지 않아요. 반쯤 열려있으면 반은 열린 것이고 또 반은 닫혀 있는 것이지요. 서양 사람들은 딱 부러지게 둘로 나눈다고 하지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릅니다” 한국의 정서가 싸리문부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싸리문에 들어서면 정원수들과 만난다. 초화류는 돌단풍과 금낭화, 비비추, 맥문동, 매발톱, 꽃잔디, 애기솔, 섬기란초, 한라기린초, 꿩의비름을 심었다.

수목류는 사과나무와 산수유, 청단풍, 별목련, 대나무, 백철쭉, 히어리, 병꽃나무, 수수꽃다리, 남천, 삼색조팝, 말발도리 등을 심엇다.

“섬세한 감각으로 자연의 생동감을 즐겼던 우리 선조의 시감(詩感)이 느껴지기를 의도했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의 정원을 꿈꿨어요.”

싸리문을 지나면 넓은 평상이 나온다. 평상엔 한지 격자 창호문이 있고 지붕도 있다. 정확하게 평상이지 않고, 정자나 퍼걸러도 아니다. 소재는 미송이다. 평상 뒤에는 대나무가 심겨 있다. 조명을 받은 대나무는 한지 문에 어린다. 지붕에선 물확으로 물이 떨어진다.

“물 떨어지는 소리는 빗소리의 여흥을 담고 있습니다. 달만 뜨면 평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듯 싶어요.”

창호는 격자무늬다. 단순하고 간편한 소재다. 격자 무늬는 서구에서도 다채롭게 애용된다. 윤 작가가 의도했던 한국적인 단순함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 대목이다.

윤 작가는 설계 전문이다. 성균관대 조경학과를 졸업한 윤 작가는 (주)조경설계 디원 소장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 힐스테이트 조경설계로 인공지반 녹화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동대문구 장안 힐스테이트 조경설계로 서울시 조경상 장려상과 강남구 역삼 래미안 조경설계로 생태녹화·조경대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강남구 논현 아크로힐과 마포구 공덕 자이 조경설계도 윤 작가의 작품이다.

“그동안 설계로 머릿속에 그림만 그렸어요. 시공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에 너무 큰 상을 받은 것이지요. 설계를 하면서 직접 구현해보고 싶다는 꿈을 늘 꾸었어요. 그러던 저에게 이번 상은 단비같은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단다. 작가에 대한 지원금 문제다. “정원문화 발전을 위한 가장 권위있는 상이에요. 하지만 다른 대회에 비해 지원금이 가장 적어요. 작가들은 처음부터 자기 출연을 감수할 수 밖에 없지만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작품 하나 완성할 수 있는 지원금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볼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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