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필자가 마음으로 존경해오던 원로 교수님께서 어느 날 불쑥 책을 한권 선물로 주셨다. 평생을 환경경제학 분야에 몸을 담고 살아오신 그 분이 쓰신 책의 주제는 뜻밖에도 행복이었다. 그 후로도 행복에 관한 책을 몇 권 더 내셨다. 수학적 계산과 치밀한 논리를 앞세우곤 하는 경제학자가 행복을 키워드로 한 책을 저술하셨다는 점에서 신선하면서도 잠시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책을 몇 장 들여다보지 않고서도 이내 그것이 나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는 스스로 반성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지 않던가 말이다. 경제학이 아니라 수학이든 과학이든 예술이든 전공이 그 무엇이든 간에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추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책을 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분은 전공인 환경경제학의 시각에서 행복을 다루었던 것이다.

그 책에는 행복지수를 경제적 수준과 관련지어 다룬 대표적인 연구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나 잉글하트(Ronald Inglehart)의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이 둘의 연구내용을 요약하자면 행복에 관한 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소득 1만 달러에서 1만5천 달러를 기준으로, 그 보다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과 행복지수가 비례관계에 있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별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잉글하트의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기준치를 그는 행복 수준이 소득의 영향으로부터 분리된다고 해서 ‘결별점(decoupling point)’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이 기준치를 넘어서 있어 행복에 관한한 소득 증가의 약발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세계 각 나라는 대략 3가지 그룹으로 묶어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부유하면서 행복한 국가들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나라들이다. 반대로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나라도 많은데 우루과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그룹으로 가난하면서 행복하지도 못한 나라들도 다수인데 아프리카의 있는 나라들이 대개 이에 해당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는 이들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어정쩡한 나라라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잘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는 제 4의 그룹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여러 통계나 수치들은 행복에 관한 우리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2003년 이후 11년째 고수해 오고 있다. 또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인 지난 3월 30일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발표한 수치에도 한국의 현 행복 수준이 잘 드러나 있다. 전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된 조사결과에서 한국인의 긍정적 경험지수(positive experience index)는 전년도 보다 4점 하락한 59점으로 발표되었다. 세계 평균인 71점과는 한참 차이가 있고 이웃 일본(66)이나 중국(75) 보다도 낮다. 행복지수 순위가 118위로서 민족 간의 갈등이나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아르메니아, 팔레스타인 등과 같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데 갤럽에서 행복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질문이라는 것이 듣고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는 것들이다. “어제 편히 쉬었는가?” “어제 하루 존중을 받았는가?” “어제 많이 미소 짓고 많이 웃었는가?” “어제 재미난 일을 하거나 배웠는가?” “어제 즐거운 일이 얼마나 있었는가?” 등이었단다. 일견 평범한 듯하나 생각해보자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물음들이다. 누구든지 매일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들인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조사로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가 발표한 ‘한국인의 마음 온도’ 조사 결과치도 우리의 주의를 끈다. 한국의 각 세대가 겪고 있는 심리적 체감 온도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온도’는 놀랍게도 영화 14도로 나타났다. 특별히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이 느끼고 있는 심리적 추위는 영화 17도로 최근의 불경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문제는 응답자의 79% 이상이 갈수록 마음 온도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답하였다는 데에 있다.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더욱 최악이다. 우리 아이들은 필요한 물품 9개 중에 8.5개를 소유하여 노르웨이에 이어 물질적 풍요로는 당당 2위에 자리 잡았으나 행복 만족도에는 꼴찌를 한 것이다. 그것도 최근 수년간 연속으로..... 또 2014년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공동으로 청소년 69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평균 행복지수가 74점으로 OECD국 중 최하위를 차지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행복과 관련시켜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는 환경이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어린이 행복지수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 생활조건 중에 우리 아이들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 1, 2위 항목은 정기적인 취미생활, 스포츠, 동아리 활동 등과 자전거 등 야외활동 장비 보유로 나타났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자료는 위에 인용한 2014년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결과에서 동아리활동을 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107점으로 당당 5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87.9%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등 전반적으로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조경가로서 필자는 이 같은 현상을 우리 아이들의 열악하기 만한 생활환경과 연결시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정기적인 취미활동이나 스포츠, 동아리 활동 등은 모두 적절한 시설과 환경을 필요로 한다. 예전 우리네 삶에서 그것이 뒷동산이나 앞 시냇가, 빈 들판, 동네 공터 등이었다면, 오늘날 그것은 운동장이나 스포츠센터, 캠프장 등이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활동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우리는 얼마나 갖추어 주고 있는가?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최근 20여년 간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건물의 급진적인 증가이다. 그만큼 많은 운동장과 녹지 등의 오픈스페이스가 사라졌다는 점인데, 더 많은 건축공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으나 옥외 공간에 대한 주장에는 아직도 별로 메아리가 없다. 건강한 마음과 몸에 바탕을 두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위험하거나 해가 될 수도 있음을 역사에서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국제적으로 저명한 개미학자 윌슨(Edward O. Wilson)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생물적 존재로서 인간의 DNA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곧 자연 사랑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70년으로 치자면 태어나서 69년 8개월을 숲에서 줄곧 살아 왔고, 도시에서 산 것은 70세 생일잔치가 막 끝난 즈음부터라는 사실을 되새겨 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주장에 공감할 수가 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환경의 영향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의 환경을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 환경은 우리를 건강하게 해 주는 지,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를 되새겨 보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마아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로 보자면 우리네 물적 환경은 겨우 2단계, 즉 생리와 안전 욕구 충족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동물로서 생존 환경 수준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증진시키고 자존과 자아실현을 구현하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실정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그대는 과연 얼마나 행복한가? 크고 화려하며 거창한 일, 빠르게 변화하는 최첨단 기술에만 빠져 자신의 삶을 내 맡겨 버릴게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일상 속 행복을 찾아 주변 환경부터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히 당신이 조경이나 건축 등 물적 환경을 다루는 이라면 과연 자신과 우리 모두의 행복을 지지해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가꾸기 위해 얼마나 애써 왔는지를 자문하면서 그에 대한 실천성 있는 답을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믿는다. 진정 나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일, 이야말로 참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성종상(객원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