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하지 않은 사람도 박세리 선수 이름은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IMF 경제난으로 침체된 국민의 사기가 미국에서 날아든 그녀의 승전보는 온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이 됐다. 특히 물속에 발을 담구고 샷을 한 후 보여준 박세리의 새까맣게 그을린 종아리 밑의 하얀 발은 역경을 이겨내는 노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박세리 이후 많은 한국선수들이 LPGA에서 우승 소식을 알려왔고 남자 선수들도 심심찮게 우승을 하여 국내 팬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주에도 전인지 선수가 처음 출전한 US오픈을 우승하자 많은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고, 한 해에 한국·미국·일본 3국의 타이틀을 딴 최초의 선수라고 치켜 세웠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으로 81만 달러(9억1650만 원)를 받고 올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상금이 16억 원이나 되니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셈이다. 그녀가 귀국하자 인천공항은 취재진과 팬들의 환호로 북새통을 이뤘다. 어떤 이는 메르스와 가뭄에 시달린 이 시기에 전인지의 우승이 상큼한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전인지 선수의 제70회 LPGA US오픈 우승을 계기로 광복 70년인 올해 우리나라 골프장의 과거와 현실을 생각해본다.

골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스코틀랜드에서 양치기 목동들이 나뭇가지로 돌을 날리던 민속놀이(goulf)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대한민국에는 1900년 고종 황실의 고문인 영국인이 원산 바닷가의 세관 구내에 6홀을 만든 것이 최초의 골프장이고 이후 서울 남문 밖 효창원에 9홀이 생겼으며 1930년에야 비로소 정규 18홀이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서울컨트리클럽으로 탄생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골프는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의중에 많이 좌우됐다.

태평양전쟁과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컨트리골프클럽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재탄생됐다. 주한 외교사절과 미군들이 골프를 즐기러 일본 본토나 오끼나와 미군기지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주한 미군들을 일본 골프장으로 내몰 수 없다.(서울컨트리클럽 헌시 중에서)”며 다시 만든 것이다. 골프장이 국민건강을 위한 스포츠 시설만이 아니고 국익을 위한 외교무대, 외화를 벌 수 있는 관광레저 시설임을 잘 알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심이 한국골프 발전의 기틀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끔씩 동반자 없이 골프를 즐겼는데 소박하고 신중하게 치면서 그늘집에서는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많이 했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이라 수준급 골퍼로 알려졌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골프광이라 80이 넘은 지금도 골프를 즐긴다고 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은 88올림픽 직후 국민이 골프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골프장의 인,허가를 완화하는 등 골프 활성화 정책에 앞장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기는 골프의 동토기라 할 수 있는데 “없는 사람 배 아픈 짓은 일절 하지 마라”는 지침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골프를 사치성 스포츠로 분류해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골프대중화선언을 함으로써 골프문화의 활력소가 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골프를 즐겨서 공무원 골프에 제약이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골프장 그린피가 너무 비싸다며 세금 완화와 골프장의 가격인하를 강조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골프를 하지는 않지만 오는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와 관련해 골프 활성화에 대해 방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내에서 골프와 관련해 특별소비세, 개별소비세가 붙는다”며 “(국내 그린피가 비싸서)해외에 가서 많이 한다.”고 골프 세금과 그린피 과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11회 프레지던츠컵 대회의 명예의장 직을 수락했다.

우리나라 현행 개별소비세법의 과세대상 중에는 경마장·투전기시설장소·골프장·카지노 등 ‘특정한 장소에의 입장 행위’로 지정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골프장 입장이 투기장 출입과 같은 행위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우리나라가 골프 세계대회를 유치하고 올림픽에도 메달 유망 종목으로 지목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땀과 노력으로 외화 획득을 하고 있는데 개별소비세법을 기준으로 보면 도박장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된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우승하자 뉴욕타임즈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치켜세웠는데 우리 법으로 보면 겜블러를 진출시킨 것이 된다. 선진국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골프라는 스포츠를 세법상에서 도박장과 동일시하는 것은 모순이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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