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영화 ‘박하사탕’을 본 이라면 첫머리에 배우 설경구가 철교 위에 버티고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외치던 정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외침은 바로 기차소리에 묻혀 버리지만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던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 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자신의 현재 삶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르짖어 봐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렸음에 너무나도 분노스럽고 허망하기만 하다. 우리 국토 경관과 삶의 장소를 생각해 보자면 필자 마음도 돌아갈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빠른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우리 자신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그저 남의 것 혹은 새로운 것만을 좇아 왔다. 그 와중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매우 많다. 집단적인 기억 상실증 속에서 아름답기만 한 산천은 곳곳에 상처로 가득하고, 살아온 삶의 기억과 흔적들은 무수히 지워졌다.

어릴 적 고향 집 앞으로는 작은 냇물이 있었다. 폭이 불과 십여 미터밖에 되지 않은 작은 냇물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과 같은 존재였다. 추운 겨울에도 어머니는 아침 일찍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물을 떠서 이고 와 아침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어느 사이엔가 더 이상 물을 길어다 먹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도 냇물은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했다. 논에 필요한 물을 대는 것은 물론이고 먹을거리를 씻거나 빨래를 하고 멱을 감거나 고기를 잡았다. 겨울이면 손발이 얼어 터지도록 얼음 위에서 썰매를 지쳤다. 매서운 바람 끝에 한 줄기 온기가 느껴지는 이른 봄에는 아버지를 따라 한 줄로 늘어선 둑버들 곁가지를 잘라서 둑 가에다 삽목하기도 했다. 간혹 운수 나쁜 아이의 연이 곧게 자란 버드나무 가지에 걸린 채 겨울 내내 찬바람에 휘날리며 아이들 속마음을 애태우곤 하기도 했다. 별로 넓지 않은 냇물과 제방으로 이뤄진 단순한 공간이었지만 그 곳은 노동과 여가, 놀이, 그리고 휴식이 일어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 작은 냇물은 아이들 놀이 친구였고 과학 선생이었으며 농부들 젖줄이었다. 지금도 그 냇물은 여전히 마을 앞을 흐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 사이에 냇물은 경지정리와 함께 곧게 바로 펴지고 둑은 잔뜩 높여져 버렸다. 높아진 둑만큼이나 시야에 잘 보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일상 속에서 냇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나의 어릴 적 추억의 장소도 없어져 버렸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서서 낚시를 드리웠던 제방 솔숲 언덕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다. 동네 친구들과 코를 싸잡고 다이빙하던 커다란 바위도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다.

잃어버린 풍경이 어디 내 고향 작은 냇가뿐이랴? 지금은 거대하게 넓혀진 강 양안에 높은 둑이 돋워졌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도로로 단절되고 높은 아파트로 막혀 획일적이고 볼썽사납게 바뀌어 버렸지만,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노래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한강변은 심하게 훼손되어 지금 우리는 옛날 한강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18세기 겸재 정선을 비롯한 몇몇 예술가가 남긴 그림이나 시문으로 우리는 잃어버린 한강의 옛 모습을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강변에 자행된 경관 몰장소화 현장은 무수히 많다. 지금 선유도공원이 있는 곳도 그 대표적인 현장 중 하나다. 십여 년 전 선유도공원을 설계하면서 접한 겸재선생의 선유봉 그림은 현장과는 너무나 달라서 같은 장소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8미터나 되는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인 볼썽사나운 섬이 그렇게 아름다운 절경이었다니…. 그곳은 원래 섬이 아니라 한강변에 돌출된 작고 예쁜 산봉우리였던 것이다! 태백산에서 1300여리를 흘러온 한강이 바다처럼 넓어지는 하류 평탄지에서 우뚝 솟아난 봉우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절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푸른 강물 위로 높다란 절벽을 이루며 우뚝 솟은 선유봉은 수많은 시인과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 땅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강물과 비바람에 깎이면서 다듬어지면서도 살아남았던 산봉우리는 불과 100년도 안 되는 근세에 절단되고 잘려나간 채 느닷없는 섬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면 분명 한강의 명소가 되고도 남았을 그 산봉우리가 철저히 파괴되어 한강 둑과 여의도를 메우는 잡석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그 내용과 정도가 같지 않을 뿐 경관과 장소에 대한 훼손은 전국 어디서나 다양하게 발견된다. 3호선 옥수역 뒤 측에는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남아있다. 웬만큼 일상에 쫓기거나 관심이 없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쉽게 볼 수 있는 산이다. 아마도 노란 개나리꽃이 화사하게 산을 뒤덮은 봄철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유감은 개나리꽃으로 덮인 모습에 있다. 달맞이봉이라고 불리는 그 곳은 봉우리 전체가 한 덩어리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독특한 암봉을 자랑하던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 그 바위 위에다 사방공사를 하듯 단을 지어 개나리를 심으면서 원래 모습을 잃게 된 것이다. 오랜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강물과 비바람에 깎여 나가면서 살아남은 바위봉우리가 우리 시대의 싸구려 조경행위로 모습을 감춘 셈이다. 똑 같은 행위가 바로 인접한 응봉산에도 그대로 자행되어 있다. 바위를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한 풍수적 처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장소의 본래 얼굴을 조야한 사방공법으로 뒤덮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산과 바위가 한국국토 경관의 요체이며, 돌출된 바위절벽과 그것을 휘감고 도는 물길이 연출하는 구비구비가 한국 경관미학의 묘미라는 점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면, 또 장소성의 연원이 그 생성역사에 연유된 개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바임을 생각해보면 어찌 그런 몰장소적, 반문화적 행위를 우리는 함부로 저지르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가? 겸재가 우리 땅의 참된 가치와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진경(眞景)으로 그려낸 것이 어언 300년 전인데 어찌하여 우리는 이렇게도 철저히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짓밟을 수가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의 경관 훼손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아직까지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4대강 사업은 얼마나 많은 장소 기억들을 지워버렸을지…. 막대한 돈을 들여 거대한 토목 구조물을 만들고서 우리가 얻은 효용은 과연 무엇이고 또 얼마나 되는 지 진지하게 한번 따져 볼 일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한국 현대사 현장인 구로공단의 기억을 깡그리 지워 버린 채 새로 들어선 아파트형 공장들을 우리는 후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당장에 라인강의 기적 현장인 독일 루르지방 산업시설 터를 새로운 유형의 문화예술 생산 및 소비 기지나 공원으로 변신시키고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탈바꿈시킨 독일의 이바 엠셔파크(IBA Emscher Park)와 비교해 봐도 매우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행여라도 그네들의 구조체나 설비가 규모나 유형 등에서 아주 대단하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이고,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볼품없기만 한 우리네 산업시대 설비들은 전혀 되살릴만한 자원이 못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나 물적 차원에만 경도된 탓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왜소하고 볼품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었는데 어찌 우리에게 의미가 없으랴! 라인강의 기적이 거대하고 빵빵한 설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면 오히려 우리네 산업설비들이 더 가치가 크다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정치권력의 공간 지배 혹은 상업자본의 공간 상품화가 일상 공간을 추상화하고 획일화하며 나아가 교환가치재화함으로써 장소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은 이제 정말로 그만 두어야 한다. 어느 시인이 갈파한대로 우리는 바꿔야할 세상은 그대로 둔 채 멀쩡한 산천과 기억 장소들을 마구 파헤쳐 온 과오를 이제는 청산하여야 한다. 그 대신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우리 땅이 지닌 고유의 특성이고, 그 땅 위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기억이다. 그리하여 우리 국토가 지닌 고유의 미학과 가치를 제대로 재해석하고 찾아내어 되살려내고,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을 보전하려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시도하여야 한다. 그것이 반만 년의 긴 역사에서 극히 짧은 근대에 와서 우리 세대가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토로 물려줘야할 우리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성종상(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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