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정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설계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있는가?” “없다”
조경설계가 좋았고 이 일을 혼자서라도 계속 해보자고 생각해 집 거실에 플로트를 가져다 놓고 시작했던 것이 사업이 됐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자꾸 가치판단을 하게 되고 정말 그렇게 돼 버릴 것 같아 사람을 정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중요시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은 정말 다양한 것 같다.
강연주 소장은 인터뷰 중간에 “이렇게 대답이 불친절하다니까”라며 스스로 거친 표현이 오랜 버릇이 돼 왔다며 우리엔디자인펌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런 솔직한 답변 후에는 모두 친절한 사연들을 덧붙였다.
20대 창업, 여성 조경가, 아파트 조경이 강연주 소장을 떠올리는 과거의 키워드였다면 인터뷰를 마친 뒤 아파트 조경 대신 ‘도전’이라는 말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인생에서 조경설계를 계속 해나간다면 이제야 딱 중간에 선 듯하다’는 그에게 설계가로서, 그리고 CEO로서의 최근 고민을 들어봤다.
 

▲ 강연주 우리엔디자인펌 소장

강연주 소장은 1993년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청산조경 설계실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룹한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으며 조경설계 서안에서도 근무했었다.
‘우리엔디자인펌’은 1997년 ‘조경설계연구소 우리환경’ 설립을 시작으로 벌써 20년이 돼가는 오래된 설계사무소다. 창업 당시에는 국내 조경설계사무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역사로 보면 서열이 매우 높은 편이다. 2003년에 우리엔디자인펌으로 법인신고를 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005년에는 부설 조경설계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설계의 영역을 넓혀왔다.

20대면 참 빨리 창업을 했다. 특별히 창업하게 된 동기가 있는가?

창업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혼자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던져주는 일들이 많아서 직원을 둘까도 생각했었는데, 곧 IMF가 와서 집 거실에 플로트를 가져다 놓고 혼자서 일을 했다. 그러다 일이 늘어나면서 직원을 뽑고, 사무실도 얻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설계사무소 중에서는 역사가 깊은 셈이다. 주로 어떤 일을 했는가?

아파트 조경으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매일 하나의 배치도를 그려 낼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 덕에 남들은 사옥을 짓기도 했지만 사업가의 피는 다른 듯하다. 일은 많이 했지만 사업적인 투자는 서툴렀고, 사람을 뽑고 먹고 마시고(훗).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밌던 시절이었다.
2005년에 조경설계연구소를 만들면서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10년이면 국내 아파트 조경 물량은 거의 소진될 것이라 보았고, 뭔가 다른 것을 준비해야 됐다. 연구소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사람도 많이 뽑았고, 현상도 참여하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설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애초 ‘사업은 10년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데, 무슨 뜻인가?

아파트 조경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공장처럼 찍어내는 일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 일이 적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조건 많이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한계를 느꼈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경을 좋아하고 조경설계를 좋아한다. 일은 계속할 것이다.

자기만족이 안됐다는 의미인데, 자기만족이 가능한 작품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뭐가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어떤 분들은 설계부터 준공까지 따라다니면서 나무를 직접 심기도 하는데, 아직 시도를 해보질 않아 그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

설계를 하면서 가장 주력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대상지를 받으면 그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될지 최근의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고, ‘맥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가갈 수 있게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클라이언트도 설득시키고 이용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과학적이든 생태적이든, 이를 통해 설득할 수 있는 소스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분’이라는 표현도 가능한가?

그렇다. 그런 명분 있는 설계를 했을 때, 사람들이 그걸 인식하고 이용자들이 조금이라도 호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진다면 나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스토리텔링은 창의적인 작업이다. 스토리텔링이나 설계적인 영감을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있는가?

특별한 것은 없다. 이야기를 짜는 것은 답이 없는 것 같더라. 현상 때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들 다른 안을 가져온다. 신기하다.

현상에서 주로 남들과 다른 차별적인 이야기를 찾는데 주력하는가?

그런 건 아닌데 좀 과감한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맞다고 생각하면 뒤를 안보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클라이언트가 안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을 잘 못한다. 그래서 문제인 것 같다(웃음).
특히 현상은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서 쉽지 않다. 개념 하나하나에 신경써야하고 세세하게 설명하고 잘 써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하다. 그래서 좀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표현을 하는 것도 그냥 거칠게 하는 편이다. 우리 이야기만 전달하면 된다는 생각이 좀 있어서, 대응이 미숙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과감한 스타일에서 나오는 버릇이 아니겠는가?

단순해서 그런 거다. 훗~

앞으로도 이야기가 있는 설계 작품에 좀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가?

사실 스토리텔링은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그보다는 이용자들도 만족하는 설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봐달라.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요즘은 예전처럼 물량 위주가 아니다 보니 질적으로 승부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왠지 설계에 대한 관심 항목을 넓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 긴 인생 동안 계속 조경설계를 한다고 했을 때, 처음이 미약하더라도 빨리 가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재능이 많거나 천재거나 혹은 유학파라면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 채워가며 천천히 살자고 생각하고 있다.

설계하는 분들이 겸손보다는 고집에 가까운 인상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뉘앙스도 느껴지고, 지금 설계 인생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딱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회사가 벌써 20년이나 되다보니 그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그리고 조경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 자체도 같이 하는 일이고 즐기는 사람도 대중들인데, 혼자만의 고집을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다.

앞으로 사업적 계획이나 개인적인 계획은?

사업적으로는 매일이 도전이다.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고민이 많이 된다. 무엇보다 현재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인턴이나 갓 졸업한 신입직원들을 많이 뽑았다. 키워서 함께 오래 갈 수 있는 직원을 만들려고 한다. 또한 10년 넘게 근속한 직원도 3명이 있는데 이들에게 비전을 줬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 할수록 위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설계사무소가 너무 뻔하다. 한 십 년 다니면 일도 다 알고 인맥도 생기게 되는데, 그 이후 정체돼 가는 느낌이다. 회사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역할을 주는 것이 내 임무인 것 같다.

어떤 직원을 선호하는가?

우리 직원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한다. 그래서 좀 실수가 있어도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듯하다. 직원들이 어려보이기도 하고.
우리 회사는 조경을 계속하고 싶어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기회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직원들을 선호한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길게 보고 같이 가자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회사 이름에도 ‘펌’을 붙였다. 좀 거창하지만 능력이 되면 같이 동료의 입장에서 해나가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해답이 딱딱 보이면 좋겠는데.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 잘 모른다. 자꾸 스스로를 정의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는 거 같다. 내가 원래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학교 다닐 때도 말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점점 말이 많아졌고 말이 많아지다보니 자꾸 판단을 하게 됐다. 내가 어떤 사람이니까 넌 어떤 사람이고, 그래서 이게 부족하고. 이런 가치판단이 들어가니 별로 좋지 않았다. 그냥 무채색으로 사람에 대해 정의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뭔가 키우는 걸 좋아해 식물학과나 동물학과를 기웃댔지만, 결국 ‘조경’이 답이었다는 강연주 소장은 자신의 설계에 아직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남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오랜 시간 설계사무소를 하면서도 모든 절차 다 밟아가며 이제서야 중간에 선듯하다는 말에, 설계가로서 강연주 소장이 가는 길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이 될 수 있으리라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늦게 가면 오래 가야하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가시라’고 응원 한마디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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