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호영(전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

지난달 말로 25년간의 공무원을 그만 두었습니다. 지인들께서는 만류하기도하고 너무 이르다고 걱정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서 이 칼럼에 참여했는데 신분이 바뀌어 아마도 신문사 측에서 약간 곤란하기도 했을 듯합니다. 이러 저런 것에서 훌훌 벗어나고 싶었던 저도 이 글쓰기에서 약간의 부담도 있었고 주제 선정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간은 사적이기도 하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을 쓰고자 합니다.

아직은 이른 가을이지만 오늘은 날씨까지 매우 좋아 카페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상쾌하였습니다. 그 햇살과 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코스모스. 딸아이가 타 주는 커피 한 잔, 아내가 구워주는 곡물 빵 한 조각. 정원을 바라보며 종이에 내년 봄꽃 구상을 그려 봅니다.
공무원에 대하여 비난하는 소리에서 벗어 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뉴스 때마다 나오는 공무원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워진 게 매우 좋습니다.
국민들과 공무원은 얼마간은 적대적인 관계라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서로가 존경하고 의존하며 신뢰하여야 함에도 불신하고 비난합니다. 국민은 공무원들이 세금을 축내고 부패하고 통제하려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은 국민이 법을 어기고 국가의 비젼을 방해하고 사적인 욕심만 챙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바람이 불어 공무원을 못살게 굴면 국민들이 좋아하고 공무원은 납작 엎드려 있다고 복지부동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난 이제 누가 옳은지 그런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한 가치 판단조차도 안하려고 합니다. 아주 사소한 그런 게 뭐 대수입니까.
그러면서 청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고, 인간사의 갈등과 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고, 정치인의 간섭과 부패에서 벗어 날 수 있어 좋고, 철밥통 소리 안 듣게 돼서 좋습니다.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공무원이 온전히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모습이지만 공무원이라는 것이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직업이 공무원이고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입니다. 그러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차이가 심적인 갈등으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작은 거 하나라도 나를 위해 온전히 일하는 게 너무 기쁩니다. 아울러 정책에 대한 책임감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설득시키려하고 지시하지 않아서 아주 좋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찮은 지식으로 잘난 척할 필요가 없어져 좋습니다.

낮게 살고 싶은 꿈을 실현할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좋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갖는 갑이라는 위치와 책임자라는 의무감이 나에게서 겸허함과 신뢰를 앗아 갔습니다. 현대의 교육과 지적인 훈련을 많이 받을수록 신뢰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농사에서 내 마음 속에 신뢰의 가능성을 점차 키워 나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의 겸허함을 자연 속에서 배워볼 생각입니다. 출세하는 이야기, 돈버는 이야기, 남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들어주는 자세를 갖추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맑은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있는 대로 듣고 보고 싶습니다. 왜 인간이 꽃보다 이름다운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욕심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바로 공무원이라는 권력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찮은 힘을 권력이라고 생각해 왔을 것이고 그래서 편했고 때로는 우쭐댔을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퇴락한 정치인이 아직도 여의도 부근 찻집에서 기웃거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과 공무원이 국민에게 끼치는 해악이 지속되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야 살 수 있는 자본주의의 도시생활이 우리의 미래를 두렵게 만듭니다. 사실 공무원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는 않습니다. 적지만 연금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보장을 받으니까요. 그런데도 두려운 것은 도시생활의 풍족함입니다. 풍요로워야 할 삶을 물질의 풍족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물질의 풍족 정도가 아니라 물질이 남아서 쌓이고 버리고 또 사고 그래서 소비의 갈증에 시달리면서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런 생활의 리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웃과 동료가 이렇게 살더라도 그를 의식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모습을 견지하며 사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나는 고통과 기쁨을 그대로 맞이하며 극복하고 때로는 순응하며 서두르지 말며 살아갑니다.

이곳도 시골이라고 하늘에 별이 총총합니다. 마을길을 걸으며 문득 떠오릅니다.
난 내일 출근 안 해도 돼….

(그간 공직생활 동안에 함께하셨던 조경업계 모든 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부족한 덕과 공직이라는 직업의 탓이라 해량하여주시길 청합니다.)

배호영(객원 논설위원·전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소장)
*배호영 전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장은 지난달 말 퇴직했으며, 현재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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