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걷는다.
일본에 대해 문헌자료로만 접하던 필자가 처음으로 일본에 간 것이 1998년 초이다. 필자는 역사경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당시에 유행하던 PC통신 동호회에서 알게 된 일본인들을 비롯해 일본문화원, 일본대사관, 일본관광책자 등을 통해 답사자료를 만들어갔다.
후쿠오카시의 하카타공항에 내려 신칸선을 타고 모리오카시까지 왕복하면서, 답사대상으로 삼은 지자체들을 방문하고, 인터뷰하고, 자료수집하고, 사진을 찍고, 숙박하고, 식사를 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했던 행동은 지도를 들고 ‘걷기’였다. 일본이 물가도 비싸지만 교통비도 워낙 비싸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인지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걷고 또 걷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다니는 동안 어느새 내 눈에는 아름다운 집과 마을풍경이 들어오고, 머릿속에는 마을의 이곳저곳이 서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그려지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일본의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가 읽혀지게 되고,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 비교되기 시작한 것이다.
 

▲ 쿠라요시(倉吉)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의 길가울타리에 걸린 꽃 ⓒ2013 필자 촬영


마을만들기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를 얘기하기 전에 일본의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에 대해 꼭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마을만들기’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개념을 가리키는 말의 표현이 달라지면서 사고의 폭과 깊이 또한 달라져버린 채, 우리는 그냥 ‘마을만들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마치즈쿠리는 기존의 행정중심 주도에서 시민참여로, NPO와 NGO의 활발한 활동 전개로 그 주체가 다양해져 왔고, 나가하마시나 세타가야구의 마치즈쿠리회사, 다양한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의 출현, 마치즈쿠리에 관한 시민활동단체 및 NPO에 대한 자금지원을 행하는 민간공익법인과 자금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밀집주택의 수리와 복구, 환경, 경관, 관광, 평생학습, 역사 및 문화, 복지, 중심시가지 재생, 지역고용에 이르기까지 주민참가, 전문가, NPO 및 NGO, 행정 등의 관련 주체와의 협동과 조례 등의 지자체 고유의 법적 수단에 의한 지원 및 보완과 함께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흐름과 비교해보면 1970년 시작한 새마을운동이 일본의 마치즈쿠리 시작시기와 비슷하여 새마을운동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면서 전개되었다면 일본의 ‘마치즈쿠리’와 같이 우리나라의 도시와 지역을 만들어가는 고유의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도 일본의 그것에 못지않은 역사와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꼭 정리해두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마을만들기
우리나라에서 ‘마을만들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대구 삼덕동 담장허물기 사례가 나타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은 2002년 인사동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에 민간단체가 참여하였고, 한옥보존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포함하는 북촌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였다. 2001년부터 광진구 노유동 노유거리가꾸기 사업, 2009년엔 마을만들기형 지구단위계획(‘휴먼타운’사업)과 경관협정사업을 진행하였다. 2012년은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의 제정 및 ‘마을공동체 지원센터’가 설립되어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을 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10년간 1500억 원을 투입하는 주민참여형 마을종합재생프로젝트인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감천마을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4년 광주광역시 북구는 ‘아름다운 마을만들기 조례’ 제정, 수원시는 1999년부터 행궁동 마을만들기 등의 마을만들기가 전개되고 있었고, 민선5기 들어서면서 ‘마을 르네상스’정책을 추진하게 되어 2010년 12월에는 마을만들기 추진단 구성 및 좋은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하였다.
한편 정부 정책으로는 2005년도에 시작된 건설교통부의 ‘살고싶은 도시만들기 정책’을 들 수 있다. ‘살고싶은 도시만들기 정책 연구단’에 있던 필자는 당시 농림부의 ‘살기좋은 농촌만들기’, 행정자치부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과 같이 유사 정책이 연이어 나타난 것을 기억한다. 이렇게 정부기관의 정책명칭에서도 안전마을만들기, 색깔있는 마을만들기, 문화재행복마을가꾸기 등으로 ‘~마을만들기’라는 용어가 정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안전행정부의 자치법규시스템에서 ‘마을만들기’로 검색을 해보면 44건의 조례가 검색이 되는데, 폐지된 조례 하나를 제외하면 현재는 43건의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필자가 지난 해 초에 이 조례들의 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대부분 서울과 수원 등의 몇몇 지자체의 조례를 짜깁기 한 경우가 많았고, 2013년 안전행정부의 마을만들기 표준조례와 유사하게 만든 경우도 있다. 의왕시의 조례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민주도로 만든 조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마을만들기 조례 제정 현황(2014년 4월 5일 현재)

 

 

 

 

자치단체 법규명 /개정일 소관부서
서울 도봉구  서울특별시 도봉구 마을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2-07-25 행정관리국 자치행정과
서울 은평구  서울특별시 은평구 도시재생 마을만들기사업 지원 조례 2012-03-15 도시환경국 주택과
서울 마포구  서울특별시 마포구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2-09-27 행정관리국 자치행정과
부산  부산광역시 마을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2-07-11 창조도시본부 창조도시기획과
부산 동구  부산광역시 동구 마을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3-09-30 경제복지국 경제진흥과
부산 영도구  부산광역시 영도구 마을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3-10-18 도시안전국 건축과
부산 해운대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행복마을 만들기 조례 2013-12-10 안전도시국 건축과
인천 동구  인천광역시동구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2-11-08 도시국 도시개발과
인천 남구  인천광역시남구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7-01 자치행정국 평생학습과
인천 연수구  인천광역시연수구 행복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2-28 기획감사실
인천 남동구  인천광역시 남동구 행복한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13-12-27 안전행정국 총무과
광주  광주광역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조례 2013-07-22 안전행정국 시민협력관
광주 동구  광주광역시 동구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조례 2013-12-20 자치행정국 총무과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 서구 행복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2-12-31 총무국 총무과
광주 북구  광주광역시 북구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조례 2013-09-16 자치행정국 주민자치과
경기  경기도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8-05 자치행정국 자치행정과
경기 수원시  수원시 좋은 마을만들기 조례 2013-02-05 마을만들기추진단
경기 부천시  부천시 행복한 마을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3-04-01  
경기 안산시  안산시 좋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13-11-26 행정국 자치행정과
경기 의왕시  의왕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9-27 도시개발국 도시창조과
경기 하남시  하남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11-05-23 기획예산담당관
경기 양주시  양주시 행복마을 만들기 조례 2008-05-13 안전행정국 총무과
경기 김포시  김포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13-11-01  
강원 강릉시  강릉시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7-31 행정지원국 정책기획과
강원 홍천군  홍천군 행복한 마을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013-09-26 기획감사실
강원 인제군  인제군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08-06-23  
충북 충주시  충주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13-11-29 안전행정국 총무과
충남  충청남도 살기 좋은 희망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13-09-25 농정국 농촌개발과
충남 아산시  아산시 주민참여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3-03-15 경제환경국 경제과
전북  전라북도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09-12-28 문화체육관광국 삶의질정책과
전북 군산시  군산시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07-10-30  
전북 익산시  익산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에 관한 조례 2012-09-28  
전북 정읍시  정읍시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13-11-01 안전도시국 도시과
전북 진안군  진안군 살기 좋고 살고 싶은 마을만들기 기본조례 2010-05-31 아토피전략산업과
전북 진안군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2012-10-09 행정지원과
전남 광양시  광양시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14-02-06 건설도시국 건설과
전남 담양군  담양군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13-12-02 자치행정과
전남 강진군  강진군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에 관한 조례 2013-12-11 안전건설과
경북 안동시  안동시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조례 2014-01-03 농업기술센터 기술연수과
경북 영양군  영양군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2012-05-11 지역개발과
경남 거제시  거제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원조례 2013-07-12 안전행정국 행정과
경남 창원시  창원시 환경수도 으뜸마을 만들기 조례 2013-12-30 환경녹지국 환경수도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특별자치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 2009-01-07 특별자치행정국 자치행정과
*조례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 부서에서 제정하다보니, 담당부서의 명칭이 서로 다르다.

 

마을만들기는 어디로 가는가 : 우리가 만드는 마을의 미래
최근 3~4년간 ‘마을만들기’에 관한 것은 가히 폭발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들은 국가 혹은 지자체가 주도하거나 세금이 지원되는 ‘사업’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 마을만들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고, 그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형태여서 사업시행기간이 끝나거나 혹은 행정에서 예산을 책정하지 않으면 대부분 ‘마을만들기’도 멈춰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마을만들기’는 행정에서 해야 하는 ‘사업’이 아니라 주민이 마을만들기를 행하고 이에 대한 행정의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이어야 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만들기 진행 원칙과 방향, 절차를 정하고, 역할을 구분하고,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획일화’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공동체사업을 발표하면서 ‘천개의 마을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획일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마을공동체 천개가 아니라 천 가지의 다양한 마을공동체가 생겨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의 마을공동체만들기 정책과 조례는 성미산 마을만들기와 흡사해서 그 우려는 더 크다 할 수 있다. 그 예로 서울시 금천구에 같은 형태의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설치되고 기존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 근무하던 직원이 금천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모두 성미산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서울시의 방식, 아니 성미산 방식이 심포지엄이나 토론회 등 여러 형태를 통해 다른 지자체에도 전파되어 유사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만들기에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의견을 모으고 합의하고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주민들이 요구나 결정이 반드시 옳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에는 전문가와 행정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 대상이 꼭 ‘마을’일 필요는 없다. 도시나 국가는 물론, 자연,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비전이나 목표도 대상이다.
우리가 만드는 마을의 미래는, 아름다운 마을, 살기 좋은 마을, 행복한 마을.. 이런 구호 비슷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마을의 미래를 위해 함께 생각하고(共想), 함께 이야기 나누고(共話), 함께 느끼며(共感) 함께 정하고(共定), 함께 움직이며(共動), 함께 만들어 가는(共造 혹은 共創) 그런 마을이다. 이러한 것이 자유로운 마을이어야 하며, 자연스러운 마을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민근(한국조경신문 편집주간·지역과 도시 창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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