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화(서울대 식물병원 외래임상의·농학박사)

나무는 다른 생물과는 다른 고유한 특성과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나무를 제대로 심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지금까지 이어온 그릇된 관행에 따라 눈앞에 닥친 작업을 수행하는데 급급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그릇된 수목관리 관행의 반복은 향후 나무로 인한 재해발생 가능성을 가속적으로 누적시키고 있어서 크게 우려된다.

나무의 특성
① 오래 산다.

나무가 오래 사는 것은 당연한데 왜 이를 나무의 특성이라고 새삼스럽게 강조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래 사는 기본적인 특성 때문에 나무는 한해살이 풀과 다른 생존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마지막으로 죽는 일련의 생활사(生活史, life cycle)가 수십 년에서 길게는, 미국 Great Basin에 있는 브리슬콘소나무(bristlecone pine)처럼, 50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무를 대할 때에는 나무가 오래 사는 생명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 수종마다 고유의 유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나무는 꽃이나 열매, 잎의 모양, 키의 크기, 수관의 형태, 휴면기 낙엽 여부 등에 따라 분류되는데, 각각의 수종은 서로 다른 환경적응력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전적 특성은 바꿀 수 없으므로, 이를 무시한 식재와 관리는 다양한 문제를 유발한다. 즉, 그늘이 필요한 넓은 공간에는 느티나무처럼 구형의 넓은 수관을 형성하는 나무를, 좁은 식재공간에는 수수꽃다리 같은 관목성 나무를 심으면 최소의 관리비용으로 기대하는 편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식재환경과 다른 생장특성을 가진 수종을 식재하면 비싼 관리비용을 지출하고도 원하는 편익을 얻는데 실패할 것이다.

③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
나무는 자신이 자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며,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수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나무의 생장에 영향을 주는 환경요인으로는 주변 수목과 경쟁, 토양의 영양/수분 상태, 고도, 기후 등이 있으며, 이들 환경요인이 나무에게 유리하면 보다 왕성하게, 불리하면 위축된 상태로 자란다. 소나무를 좁은 분에서 키우면 크기가 작게 유지되는 분재가 되고, 관목에 가까운 무궁화도, 201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릉 방동리의 무궁화처럼, 생육환경이 아주 좋으면 100년 이상 살고 줄기 둘레가 146cm까지 자란다.
 

▲ 이렇게 훼손된 구조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한다.

 

④ 한번 훼손된 구조는 원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잔디는 생장점이 지표면 부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잎을 짧게 깎아주더라도 다시 자라서 원상을 회복한다. 그러나 키를 키우는 생장점이 가지의 끝에 있는 나무는 구조를 이루고 있는 수간과 골격지들 중 하나 이상을 제거하여 구조를 파괴하면 대부분의 경우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굵은 골격지는 물론 수간까지도 주저 없이 잘라버리는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렇게 구조가 파괴된 나무는 영원히 흉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무의 생존전략
① 초기에는 영양생장에 주력한다.

식물의 생장은 영양생장(줄기, 잎, 뿌리 등 영양기관의 생장)과 생식생장(꽃, 열매, 종자 등 생식기관의 생장)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생식생장이 시작되면 영양생장이 희생된다. 만약 어떤 나무가 어릴 때부터 꽃을 피우는 생식생장을 시작한다면 키나 몸집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어 빨리 자라는 주변 나무에 의해 햇빛이 차단되기 때문에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무는 오래 살기 위해 초기에는 키와 몸집을 키우는 영양생장에 주력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유형기(幼形期, juvenile period)라고 부른다.

② 상처가 발생하면 구획화한다.
샤이고(Shigo)박사는 1959년 미국 산림청이 출범시킨 목재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변색과 부후의 원인을 구명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5까지 26년간 이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나무에 상처가 발생하면 나무는 스스로 이 상처를 구획화한다는 수목관리의 기초이론인 CODIT(compartmentalization of decay in tree, 수목 내 부후의 구획화) 이론을 발표하였다.
이 이론에 의하면 나무는 상처가 발생하면 4 종류의 벽(wall)이 상처를 상하/좌우/안팎으로 완전히 둘러쌈으로서 상처로 인한 부후가 자신의 체내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이렇게 상처 부위를 밀봉하면 기존의 조직은 포기하더라도 상처발생 이후에 형성되는 조직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계속해서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게 된다. 만약 나무가 상처부위를 과거와 같은 상태로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면 나무의 수명은 단축될 것이다. 이는 도마뱀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것과 같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지의 아래쪽은 줄기와 연결되어 있지만, 위쪽은 단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Shigo, 1989)

③ 조직간 철저한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나무도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기능이 다른 조직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뿌리가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여 잎을 비롯한 각 기관에 공급해주면 잎은 이들을 이용하여 포도당을 만들어서 다시 뿌리로 보내게 되는데, 이 포도당은 뿌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된다. 어떤 가지가 주변의 구조물이나 위쪽에 위치한 다른 가지에 의해 햇빛이 차단되면 잎에서의 광합성 활동이 감소하여 그 잎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던 뿌리는 굶주리게 되고, 이로 인해 이 뿌리와 연결된 잎과 가지는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광합성 활동이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편, 줄기와 가지의 연결 구조를 보면, 가지의 아래쪽은 줄기와 연결되어 있는데 반해 가지의 위쪽은 줄기와 단절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가지의 잎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다른 가지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어떤 가지가 자신 및 자신과 연결된 뿌리가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면 다른 가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나무의 가지는 이렇듯 철저하게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또한 스스로 오래 살기 위한 전략이다. 만약 한 가지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다른 어려운 가지를 돕는데 사용된다면 그 나무는 전반적인 생장이 위축되어 마침내 일찍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④ 생장 환경이 불리하면 휴면한다.
나무, 특히 활엽수는 생장환경이 불리해지면 잎을 떨어뜨리고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휴면에 들어간다. 온대지방에 사는 많은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지나기 위해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며, 열대지방에서는 건기에 낙엽수가 되기도 한다.
온대지방에서 계절의 변화를 무시하고 생장을 계속하는 나무가 있다면,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자란 어린 가지나 잎은 영하의 추위에 얼어 죽거나 겨울철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는 나무 전체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는 열대지방에 사는 티크나무, 바오밥나무, 아보카도 등은 건기에 잎을 떨어뜨리는데, 이는 나무의 생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분을 보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러한 휴면에는 아브시스산(abscisic acid)이라는 생장조절물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물질을 만들지 못했던 나무는 아마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찍이 도태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 외에 나무는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곰팡이(균근)나 박테리아(뿌리혹) 등의 미생물과 공생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경쟁하는 다른 식물의 생장과 번식을 방해하는 물질(타감물질)을 합성하여 방출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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