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호(동국대 교수/(사)한국고도육성포럼 회장)
터키의 수도 앙카라 중심 앙카라역과 마주보이는 곳에 한국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950년 한국의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하여 희생당한 터키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3000평 남짓한 면적에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본떠 만든 참전기념탑이 공원 중심에 서있다. 기념탑에는 한국전에 참가한 터키인 명단이 새겨 있고 그 아래 ‘한국참전 토이기 기념탑’이라는 굵은 글씨가 눈에 띈다.

상징탑 아래에는 한국에 있는 터키 전사자들 묘소에서 가져온 흙이 묻혀있다. 한국전쟁 당시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규모인 연인원 1만5000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전선에 투입된 터키군은 용인 금양장리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741명의 꽃다운 젊음을 이 땅에 묻어야 했다. 용인시에는 터키군 참전비를 세웠고, 전사자들 시신은 부산 UN묘지공원에 안장하였다.

이 기념공원은 1972년 9월 23일 양택식 서울시장이 터키를 방문하여 개막식을 가졌다. 이날 양시장은 크렘 바라스 앙카라시장과 함께 무궁화 세그루를 기념식수 했다. 공원 입구에는 육각형 한식 정자가 세워져 있어 관리 사무소를 겸하고 있다. 정자 처마선은 중국풍인데다 지붕을 이은 기와는 스페니쉬 기와다. 여기에 기와색이 금빛을 띄고 있고, 짙은 갈색의 단청이 없는 기둥이 흡사 중국 정자를 연상케 한다.

지난 7월 1일 터키 유적 답사차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반정부 시위로 어수선했다. 시위는 강경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번 시위의 발단은 탁심광장과 이웃한 게지공원에서부터 비롯됐다. 게지공원은 지난 10년간 지속돼온 도시개발 속에서 시민들에게 작은 쉼터였다. 그런데 이 공원을 밀어버리고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평화적인 공원 점거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게지공원 문제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부에 쌓여있던 온갖 불만을 쏟아내며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면서 대규모 집회로 커졌다.

터키 유적을 답사하고 7월 7일 앙카라를 거쳐 이스탄불로 돌아와 탁심광장을 다시 찾았다. 전날 시위로 봉쇄되었던 광장은 자유롭게 시민들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숲으로 둘러싸인 녹지대에는 경찰과 방송 중계차가 모여 있어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 이날 터키정부는 시위대에 대한 과잉진압을 사과하고 녹지대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중대 발표를 했다. 사태는 결국 시위대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터키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지난 6월 25일 수원시가 서둔동 서호초등학교 옆에 '앙카라학교공원' 조성공사를 마치고 개장식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공원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우방국으로 참전했던 터키군 1개 대대가 수원지역에 주둔하며 앙카라 고아원을 세워 전쟁고아 640여 명을 돌봤던 인도적 활동을 기리고 한국과 터키의 우호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터키는 우리나라와 매우 인연이 깊은 나라다.

공원 개장식에는 염태영 수원시장과 주한터키대사 그리고 시, 도의원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앙카라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브라스밴드 축하공연이 감동적이었다. 권선구는 앙카라학교공원 앞길을 앙카라길이라 명명하고 골목길 벽화 작업을 하는 등 서둔동 지역 명소로 조성하고, 한국과 터키 양국간 문화가 공유되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터키를 답사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터키인들의 각별한 한국 사랑이다. 터키인들 가슴에는 아직도 터키인 피 값으로 맺어진 한국과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건조한 기후 탓인지 녹지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좁은 농지에도 몇 그루 나무를 남겨 소중한 쉼터로 쓰고 있다. 정권을 긴장하게 만든 시위도 녹지대 훼손에서부터 발단이 됐다.

앙카라한국공원과 탁심광장의 게지공원 그리고 수원시 앙카라학교공원은 녹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공원은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을 다루는 이상으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의 특성을 담아내야 생명력이 있다. 단순히 경관을 만들어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 생각 한다면 이용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감동이 없는 공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귀국 후 앙카라학교공원을 만든 수원시를 보면서 터키의 수도 중심에 초라한 모습의 앙카라한국공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왠지 어색한 입구의 정자와 어수선한 수목 배치, 그리고 허술한 관리가 터키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목숨 대가로 지급 받는 전쟁 수당을 떼어 전쟁고아를 먹이고 가르친 그들의 한국사랑에 대한 보답이 초라한 한국공원으로 남아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40년 전에 우리의 선배들이 어려운 재정을 쪼개 만든 기념공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조경인으로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앙카라한국공원은 주변의 녹지가 부족하여 터키인들의 좋은 휴식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마치 탁심광장의 게지공원이 연상된다. 한국과 터키의 우정을 연결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장소성이 있다는 의미다. 수원시 앙카라학교공원은 공원 기능 이상의 가치가 있는 사업을 했다. 한국과 터키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사업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앙카라한국공원을 국격에 맞게 재설계하여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터키인에게 그들의 피 값으로 치러진 한국 사랑을 잊지 않고 있노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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