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 교수

“도시디자인총괄본부로서 대구시 디자인의 큰 그림을 그려야지, 그 너무 작은 것만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시의회 건설환경위원회 시정질의에서 한 시의원이 뭔가 아쉽다는 듯 심각하게 지적했다. 나는 순간 인정받지 못하는 답답함과 동시에 또 다른 이면을 느꼈다. 평소 시의원들은 전문성을 존중하고, 때로는 격려도 해주었다. 그럼에도 가시적 성과가 아쉬운 것이다. 기실 본부장에게보다 대구시 자체에 대한 겨냥이었다. 그러나 나는 궁색한 답변인 예산타령, 인력타령을 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실제 예산이 부족했고, 직원의 전문성도 아쉬웠다.

그리하여 궁리한 것이 비예산사업과 저예산사업의 발굴이다. 즉 한정된 예산으로라도 직접적인 시범사업을 통해서 디자인행정의 가시적 성과를 이루어야 했다. 작은 프로젝트를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서 예산 없이도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가능한 일을 찾아야 했다.

이미 경관계획도 마무리한 상태였으며, 마침 영남대와 MOU도 맺었기에 그 인적 자원을 활용하였다. 대구가 지닌 잠재적인 양호한 경관이 많았기에 이를 부각시키고 자원화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대구의 역사 속에서 제법 일컬어지는 ‘대구십영’, 즉 조선시대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의 풍경 열 곳 흔적과 자취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 작업은 일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고문헌을 토대로 현대도시에서 그 소재지를 찾아내는 일로서 그리 간단치 않았다. 위원회를 열었지만, 일부 역사학자와 지리학자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다. 향토학자의 주장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결국 가장 논란의 소지가 적은 방향으로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별도로 맵핑하고 그래픽작업을 거쳐 일종의 관광지도처럼 가이드맵을 만들었다. 그런데 위원회에 참석해서 모두 의견을 합의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한 위원이 위치가 오류라고 주장하였고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보다 정통한 교수의 해석을 그대로 밀고나갔다.

내친 김에 서거정의 10영은 ‘옛 십경’으로 하고,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10경을 다시 발굴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먼저 ‘대구100경’을 선정키로 하였다. 선정기준으로서는 독특하고 역사문화적으로 고유가치를 지닌 경관, 아름답고 풍경미가 넘치는 경관,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지질학적 미를 연출하는 경관, 아울러 대구를 대표하고 미래 잠재적 가치를 지닌 경관 등으로 세웠다. 새로운 선정위원회를 되도록 다양하고 공평하게 구성하였다. 이번에는 대구시 8개 구·군에서 후보경관을 추천받아, 이를 시위원회의 전문가들과 현장실사까지 하며 정리해나갔다. 그런데 신청 경관후보지는 157개소나 되었지만, 정작 현장을 파악해보니 기준에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청의 관점에서는 중요하나, 시 전체수준에서는 아쉬운 경우도 허다했다.

구·군에는 다소 미안한 마음도 생겼지만 정리해보니, 52개 경관이 남았다. 향후 새로운 기회로 100선이 채워질 것으로 보면서, 52선의 맵핑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다시 거리와 인터넷으로 시민의견조사를 하고 전문가회의를 거치지만, 대표적인 10곳으로 줄이는 것이 퍽 어려웠다. 다들 자기 것이 중요하다하니 어느 것이든 탈락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시의원도 관심을 나타내고 또 의견도 주었다. 새삼스러이 선정절차가 매우 중요함을 느꼈다. 부득이 내부회의를 거쳐 12경으로 늘렸다. 영남대 팀에서 이를 그래픽으로 ‘메타아이콘’을 제작하고, 가이드맵을 만들었다. 또 문제는 1경마다 어떤 경관이미지를 한 컷으로 보여주느냐는 것이었다. 즉 점요소의 ‘대표경관’만들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서문시장을 나타내는 데 그 전통적인 주업종인 포목점을 내세웠더니 종합시장인데 왜 특정업체를 내세우느냐면서 이해관계에 있는 일부에서 부당하다는 지적이었다. 더구나 12경의 메타아이콘디자인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나는 아쉬움에 재차 수정보완을 계속 요구하였다. 나중에는 그 교수와는 불편한 관계까지 되었다.

‘대구12경’은 가치가 있는 경관자원을 찾아 보존하고 관리하는 비예산사업이었다. 분지도시 대구의 남북을 아우르는 자연경관(팔공산, 비슬산, 수성못, 신천, 강정고령보)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는 문화경관(달성토성, 경상감영과 대구옛골목,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대구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도시경관(대구스타디움, 대구타워, 서문시장, 동성로) 등으로 12경관을 선정하였으니, 이를 펼쳐보면 자연에서 인공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축의 교차로서 대구시 전체를 꿰는 구조적 틀이 된다.

▲ 앞산전망대

▲ 앞산전망대

 

 

 

 

 

 

 

 

 

 





대구12경의 선정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시민의 애향심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풍경을 대구를 대표하는 모습이라 하며 부각시키고 명명하며 실재 보다 더 나은 명소로 가꾸면서 관심을 끌고 참여를 이끌 수 있었다고 본다. 게다가 향후 대구의 도시디자인공모를 하면서 대구 52선을 대상지로 지정하여 시민의 아이디어도 공모하고 학생들의 디자인작품도 출품케 하는 등 보다 많은 관심과 큰 기대를 모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지자체의 관심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 시예산의 투입성과도 이룰 수 있었다. 대구시로서는 별 예산도 없이 기존의 것을 보다 아름답고 멋진 대구경관으로 탈바꿈시키고 대구도시브랜드가치를 드높이는 수단으로까지 활용케 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대구12경 선정을 계기로 예산이 확보 되는대로 하나씩 경관특화사업을 하였다. 먼저 검토한 결과, 누구든 편하게 접근해서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포인트가 아쉬었다. 물론 기존에 대구타워나 산정마다 쉼터와 같은 곳이 있긴 해도 제대로 된 것은 없었고 접근도 불편하였다.

그리하여 저예산사업으로서 ‘앞산전망대’를 조성하게 된다. 이 사업은 대구 도심지 남측 앞산의 비파산 산정 가까이에 새로운 조망점을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사업비가 너무 적고 산위에 공사해야하니 설계자부터 나서질 않았다. 부득이 대구건축사회에 협조를 얻어 젊고 유망한 건축사를 구할 수 있었다. 공원 내 시설물이라 조경업체에서도 가능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성위치는 남구청 지원을 받아 함께 가장 넓게 도시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지점을 찾아내고, 사업을 앞산공원관리사무소로 넘겨 시공관리를 감독시행토록 하였다. 설계는 내 의도를 반영하였다. 기존 지형을 되도록 보전하여 생태적인 디자인이 되게 하고, 무장애는 물론 심지어 시각적으로 투명하게하고, 주야간에 대구시의 새로운 경관초점이 되게끔 주문하였다. 자연스러운 시야확보를 위해 바닥판이 꺾어지는데, 그 하나는 자연의 축으로서 팔공산으로 향하고, 다른 것은 역사의 축으로서 대구의 원류인 달성토성을 향하게 하였다. 강화유리로 난간을 대신하고, ‘미래로 통하는 문’이라 명명한 게이트로 자체 조명시설로 만들었다.

그런데 공사 중에 문제가 불거지고 언쟁이 잦아졌다. 암반에 기초를 하게 되니, 그 암반을 깨고 만드는 공법은 설계변경을 하지 않으면 불가하다는 시공사 김사장의 하소연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행정상 이유 때문이다. 현장에서 몇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니, 굳이 도면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젊은 현장감독의 입장은 달랐다. 계속 지체되다가 하도 답답했던지 술자리에서 김사장이 “공사비 포기하고 내 마음대로 만들어서 기부채납 할랍미더!”하며 억눌린 심정을 토로했다. 부득이 나서서 겨우 중재하듯 달래며 조정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비록 지방에서 작은 시공업체 사장이지만, 나름대로 경험과 소신이 있는 유능한 전문가이다.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만약 그때 공사포기를 들고 나왔다면 모두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앞산전망대는 단기간에 친근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남구에서는 등산객과 방문객이 대폭 늘었다고 즐거운 비명이다. 한밤에도 보석처럼 빛난다. 언론방송에도 자주 등장하였다. 간부회의에서도 효과적인 예산사업으로 칭찬을 받았다. 본부가 시행한 사업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2012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국토해양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된다. 비록 대구도시디자인에 있어서 세계적 작가의 유명프로젝트나 도시차원의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이 앞산전망대처럼 작은 디자인도 정성을 들이면 얼마든지 시민의 사랑을 얻는 고품질의 명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대구12경 메타아이콘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