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범(전남대 교수·한국조경학회 부회장)
2013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이후에는 “난 좀 지쳤으니까 쉬어 줘야 돼..”하고 자가진단 힐링 모드로 들어가 새해로 바뀌고 조금 더 버텨보지만 2주 정도까지는 잠수가 가능한데, 그 이상은 도저히 피해 다니기 불가능했답니다.

학사일정도 있고 외부위원회도 있고 학회일에 시민단체 일도 있고. 그렇다고 교수들의 특권인 방학 때마다 해외답사 다녀오는 여유를 가질 주제는 못되어서 “뭘했지?” 하고 물음표만 날리다가 아까운 한 달이 그렇게 가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전혀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었죠. 저의 책 읽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신간을 내놓는 추리소설 작가의 최근작도 한 두 권 따라 잡고, ‘여름방학에 가볼까’ 하고 실천하지 못할 여행 가상계획을 잠시 세우기도 했으니까요. 뭐 이런 백수가 있나 하고 비웃으신다고 해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방학이라 한가하겠다?”는 질문을 누군가로부터 받을 때는 좀 난감합니다. 방학 중에 더 바쁘다고 하면 “네가 뭐 땜에 바쁘겠니, 연구는 안하고 알바라도?” 하고 생각할까봐 괜히 찔리고, 그렇다고 한가하다고 하면 약 올리는 것 같고. 그저 안부정도의 인사인데도 ‘묻는 의도가 뭐지?’ 잠깐 머뭇거리고 얼버무리게 되는 난감한 종류의 질문임에는 틀림없답니다.

바쁘면 좋고 바쁜 일 피해 다닐 생각은 애당초 없는 게 요즘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우리는 행복한가?” 하고 ‘급 심각’해지기도 하구요. 누군가 행복이라는 것은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니까, 아무튼 일이 없으면 행복해질 일도 없는 셈이 되나요? 그렇지만 사람이 바쁠 때라도 하는 일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는 느낌이거나, 왠지 일에 끌려가는 느낌이라면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건설경기가 바닥이어서 조경신문의 이런 저런 기사나 컬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많은 일들이 생길까? 그것을 위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 하는 심각한 말씀들뿐인지라. 그 속에 무슨 답이라도 있을까 자세히 읽어봐도 답은 결국 시간에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시간을 요리 조리 써보는 방법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려 했던 겁니다. 농땡이도 피울 수 있을 때 해보고, 잠수도 타보고. 그러다 초조해지면 “역시 일 집착이었군!” 하고 결론도 내려보고. 뭐 그런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광선은 먼 거리를 갈 때 시간을 최적화하는 경로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길을 통해 이동한다는 이야기인데, 시간은 빛이 가지는 최소한의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 라고 하시겠지만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가 정식화한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경제학적으로 응용한 파레토는 소수(상위 20%)의 인구가 총 수입의 대부분을 벌어들이고 소유하면서 80%의 영향력을 좌우한다는 경제현상의 일반적인 패턴 발견을 통해 ‘핵심적인 최소자원을 집중적으로 최적화함으로써 최고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흠, 개인적으로 좁혀 생각한다면 자신의 장점이나 많은 것을 어떻게 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자원이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다루는 게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요점이라는 것이었군요.

올해는 집 근처의 주민텃밭을 분양받아놓고 요것 조것 심어보겠다고 집사람은 겨울부터 도시농업 전문서적까지 탐독하며 의욕이 대단합니다. 결국은 힘쓰는 건 저에게 떠넘길까봐 별 관심없는 척 하는데, 이미 마누라는 자기에게 없는 자원을 어떻게 최적화할까 본능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셈이군요. 봄이 오면 끌려 나갈 것은 정해져 있네요.

설이 지나면 봄이 한층 가까이 와 있겠지요. 좋아하는 노래 중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연분홍 치마가 떠오르시는 분은 쉰 세대)의 좋아하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이 오기도 전에 봄날이 가는게 불안하다면, 그건 가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지금이 아름답기 때문인거죠. 그러니까 가는 시간 따위는 빛에게 맡기시고(시간은 많으니까), 지난 여름 여수 엑스포에는 와서 로봇춤과 홀로그램 쇼만 보고 가신 분들, 그 바다 너머 오동도 동백꽃도 보고 동박새 소리라도 들으러 오시든가...

이런 가벼운 이야기하라고 아까운 지면을 할애해 주었을리는 없건만, 이러다가 봄날도 가고 1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겠네요. 이런 또또또!

 

키워드
#조경 #조동범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