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사와시 경관조례 제정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를 살펴 보고자 한다.

후지사와시는 동경도 남쪽의 가나가와현의 남부에 위치하는 인구 약 42만이 조금 안되는 중소도시이자 베드타운이다. 에노시마 등의 관광지가 있지만 가나자와시나 고베시와 같은 역사적 경관자원은 적은 도시이기도 하다.

후지사와시 건설국에서는 1982년 6월에 ‘도시디자인 간담회’를 발족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경관에 관한 본격적인 대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요코하마시의 도시디자인 정책을 만든 3인방의 한 사람인 타무라 아키라씨를 좌장으로 하여 관련 분야 학식경험자 및 시의 간부, 가나가와현 기관 대표 등으로 구성되었다.

어디까지나 결정은 시가 행하는 것이지만, 간담회에서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장이 되도록 간담회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1988년에 조례의 제정을 제언하기까지, 시의 경관정책의 기본방침을 논의하는 장으로써 기능하였다.

후지사와시는 처음부터 조례제정 의도를 가지고 간담회를 조직한 것은 아니다. 제1회 간담회에서는 ‘간담회는 행정에서 작성한 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구상단계부터 관여하고 싶다’던가 ‘민간의 행위를 행정이 어떻게 컨트롤 해나갈 것인가’라고 하는 간담회 위원들의 발언에 대해 사무국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4년부터 85년에 걸쳐, 이타미시, 나고야시, 키타큐우슈우시, 오자키시, 나하시 등 서일본에서 도시경관조례가 시행되었다. 이러한 지자체들을 포함한 경관행정의 선행지자체들의 제도가 소개되고, 조례가 아닌 주민참가로 협정을 체결한 요코하마의 수법도 보고되었다.

그런데, 83년 이후부터 맨션분쟁이 빈번해지면서 시의회에는 10층을 초과하는 중고층맨션 건설반대 진정이 급증하였지만, 버블경제가 끝나가면서 진정이 줄어들어갔다. 진정 내용을 보면 일조문제, 교통지체, 녹지 감소 등 생활환경 악화 문제를 들면서 층수를 대폭 낮출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대개 사업자측에서는 건설계획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고 채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높이를 낮출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행정지도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984년 4월 10회차 간담회에서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건물디자인, 형태, 색채, 높이에 대한 규제유도가 앞으로의 과제가 되었다. 에노시마 및 후지사와역 주변 등의 지구에서 시민 ․ 상점주인 ․ 건설국 직원들이 마치즈쿠리 및 경관유도 등에 관한 협의가 계속되어 1986년에는 구체적인 용도지역지구에 관한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2월에는 후지사와시와 상점연합회가 공동개최한 심포지엄을 통해 경관에 관한 시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21회차 간담회에서는 제도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어, 풍치지구조례, 옥외광고물조례, 독자조례라는 3가지 방식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1987년에는 하마마츠시와 후쿠오카시가 경관조례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수면 위로 떠오른 조례화
1987년 10월에 열린 23회차 간담회에서는 사무국에서 오사카시와 오카야마시의 가이드라인 매뉴얼, 히로시마시의 요강, 나중에 조례로 바뀐 나고야시의 협정 등의 수법도 있지만, 조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을 하였다.
이 간담회 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행정법 전문인 아라 히데 츠쿠바대학교수가 기존의 도시 관련 법률은 물리적 측면이 중심이어서 경관을 배려한 것이 아니므로, 지도 및 조언을 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조례에 의해 법적 근거를 부여해둘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경관은 주관적 성격의 것이므로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가 타당하다고 하였고, 선진지자체 중에서는 허가제를 취하는 것은 고베시와 교토시 뿐이라고 하고 있다. 게다가, 명령권 및 벌칙을 정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고, 시가현과 효고현, 사이타마현에는 현(県) 수준의 조례가 있지만 가나가와현에는 그러한 조례조차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어 제24회차 간담회에서는 사무국에서 교토시, 고베시, 나고야시, 이타미시, 오자키시, 키타큐우슈우시, 나하시, 하마마츠시, 후쿠오카시의 경관조례를 상세히 비교 검토한 자료가 제출되었다. 물론, 이 자료는 조사위탁을 받은 컨설턴트가 작성한 것으로, 지구지정, 신고절차, 벌칙의 유무, 시민참가 규정 등이 상세하게 비교 정리되어 있다. 이 간담회에서 타무라 아키라 좌장이 출석하여 ‘경관은 시민과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조례화하는 것도 시민을 전면에 내세우고, 시장은 1보 뒤에 물러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어디까지 조례에 강제력을 부과할 것인가 하는 점이 주요 논점인 것이었다.
상급자치단체인 가나가와현 도시계획과에서는 가나가와현 옥외광고물조례의 규제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비권력적 수단인 신고와 권고에 의해 시민합의에 기초하는 유도를 도모하는 것에 한하여 가나가와현 조례와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개, 행정에서는 다른 부서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는 기존 제도로도 해결 가능하다고 하거나 하여 물타기를 하는 경우가 있거나, 기존 제도에 새로운 제도의 중복되지 않은 부분을 포함시켜 자신들도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2006년 문화관광부의 공공디자인진흥법안 제정시, 당시 산업자원부와 건설교통부가 보여준 사례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상급지자체에서는 기초지자체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가나가와현은 경관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업무라는 태도를 시종 일관하고 있었기에 후지사와시의 경관조례 제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88년 4월 26회차 간담회에서 드디어 조례의 골자가 제시되었다.

경관조례의 가시화
1988년 9월에 경관조례의 제정을 시장에게 제언하여 기자발표가 행해졌다. 제언 내용은, 각 지구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치즈쿠리를 향한 협의의 움직임을 살리고, 시민 스스로의 발의에 의해 경관형성기준을 정하는 조례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강제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민을 주체로써 경관유도를 도모해나가는 조례의 구성은 요강에서 그치자고 하는 위원들과 조례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무국과의 건설적인 논의 속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가나가와현 내에서는 최초의 경관조례이고, 시민중심의 지구협의회가 경관형성지구안 및 기준을 작성하는 체제는 전국 최초라고 발표되었다.
이렇게 지구 특성에 따른 계획을 만들 것, 1988년도 내에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 시민참가가 특징인 조례를 제정할 것이라는 시장의 답변에 이어, 1989년 2월에 의회에서 가결되었다. 이때 예산위원회의 회의에서 법체계상으로는 건축기준법이 조례의 상위에 있지만, 조례를 바탕으로 시민이 법을 상회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도시계획과장이 대답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나라 행정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이 기준을 정할 경우에는 상위법의 기준을 뛰어넘어 정할 수 없지만, 시민의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일본 경관조례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배경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경관조례는 상위법에서 위임하고 있는 것만 조례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조례가 획일화될 수밖에 없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경관행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후지사와시 경관조례의 특징과 운용 상황
후지사와시 경관조례는 고베시 경관조례를 모델로 하고 있다. 경관형성지구를 자치단체장이 지정할 뿐만 아니라, 주민으로부터의 신청에 의해 지정할 수 있는 2가지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85년에 오카자키시가 최초로 채택한 것이지만, 여기에 더하여 후지사와시는 주민주도를 적극 지원하고, 지구(구역) 지정과 연계된 체제를 고안하였다. 지역에 우수한 경관형성을 도모하도록 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면, 우선 ‘준비모임’을 설치하고, 시가 지원을 행하고 전문가를 파견하여 활동을 뒷받침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중심이 되어 경관형성지구 설정 및 기준안을 작성하고, 시장에게 신청하여 지구지정이 이루어진다. 경관형성심의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갖는 단체에 대해서는 기타큐우슈우시의 ‘마찌즈쿠리협의회’가 있지만, 이에 이르는 절차는 후지사와시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다.
후지사와시는 기존 경관조례에 의해 지정한 경관보전지구를 2004년 제정된 경관법에 의한 경관지구로 지정하게 된다. 현재는 에노시마 경관지구와 쇼난C-X 경관지구가 지정되어 있다. 대상이 되는 행위는 건축물 또는 공작물의 신축, 증축, 개축, 이전, 외관을 변경하게 되는 수선 및 모양변경, 색채의 변경과 500㎡ 이상의 개발행위(에노시마 지구만 해당)가 된다.
조례는 디자인 및 색채 등의 유도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토지이용 권리를 제약하는 기능은 없다. 높이 및 용적률에 제한을 가하고 싶은 경우, 도시계획법의 지구계획에서 결정해야만 하고, 조례에 의한 주민합의는 그 전제로써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맨션건설문제로 요동친 에노시마지구에서는 조례에서 특별경관보전지구(현 경관지구)로 지정함과 동시에, 지구계획으로 건축물 2채를 초과하는 공동주택건설 및 경사지의 토지형질변경 등의 금지를 정하여 난개발을 방지하고 있다.

 

 

 

▲ 2008년에 행해진 후지사와시 쇼난다이 경관마찌즈쿠리포럼

 

 

 

 

 

▲ 2012년도 후지사와시 경관마치즈쿠리상


경관조례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행정에서 초단기간에 만들거나, 아니면 경관계획보고서의 부록처럼 포함되어 있는 것이 전부인 것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는 이렇게 치열한 과정을 거쳐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호부터는 주민주도로 경관조례가 만들어지는 사례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오민근(한국조경신문 편집주간·지역과 도시 창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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