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철(우석대 조경도시디자인학과 교수)
우리는 주변보다 흙을 돋우어 녹지를 만들고 나무와 풀을 심는다. 이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녹지를 주변보다 약간만 낮추면 빗물이 모여들어 질소와 인 등 영양물질이 많아지고 수분상태가 좋아지며 관수비용이 줄어들어 거기에 심어진 나무나 풀은 더 잘 자라게 되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게 된다.

이 둘의 차이는 몇 센티미터 안 되는 차이에 불과하지만 효과는 식물의 자람의 차이에 따른 공기 정화나 수질정화 등의 차이는 현격하다. 이는 드러내는 조경과 받아들이는 조경으로 볼 수 있다. 드러내는 조경은 다른 것들을 밀쳐내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는 조경은 온갖 오염물질들을 흡수하여 영양분으로 만들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드러내는 요소들 때문에 홍수가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나며 에너지가 많이 들게 되었다. 바다는 온갖 육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을 다 받아들여서 정화하여 새로운 물로 재탄생시킨다. 바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녹색 인프라의 핵심 메시지도 ‘받아들이는 조경’을 하자는 것이고 이것이 더 경제적이고 환경적이라는 것이다.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매연 등의 물질들이 받아들이는 조경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면 영양물질이지만, 씻겨 내려 하천으로 유입되면 부영양화를 일으켜 물을 썩게 하는 오염물질이 된다. 농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축산 분뇨도 받아들이는 조경으로 받아들이면 훌륭한 유기질 비료이지만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 치명적인 오염물질이 된다.

쑥은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질을 흡수하여 병든 토양을 치료한다. 이 카드뮴이 물로 흘러 들어가면 먹이연쇄에 의해 생물농축이 일어나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은 병을 일으킨다.

이같이 조그마한 볼록과 오목의 차이가 치유를 일으키기도 하고 온갖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조경은 물이 천천히 흐르게 하여 물의 평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드러내는 조경은 물을 빠르게 흐르게 하여 물의 요동을 가져온다.

사실 큰 거목으로 자라는 느티나무, 왕버들, 팽나무 등은 수분이 많은 충적저지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이런 나무들은 오목한 지형에 적합한 수종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마을숲의 주요 수종인데, 마을숲이 수구막이 즉 물이 모여서 흘러나가는 입구에 조성되어 있어 충적지로 영양분이 풍부하고 수분조건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아주 큰 거목으로 자란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받아들이는 조경을 한 것이다. 받아들이는 조경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한국적인 경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미나리깡 같은 습지들을 메꾸어 아파트 등을 개발하여 왔다. 이로 말미암아 도시 홍수가 잦아진 것이다. 습지는 물을 받아들여 서서히 흘려보내면서 정화하여 내보낸다. 습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염물질들을 받아들여서 온갖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갯벌도 습지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새만금은 바다와 육지를 분리하여 흙을 돋움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인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 낭비를 가져오고 실패하고 있다. 반면 순천만의 갯벌 습지는 바다와 육지를 분리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경제도 살고 환경도 살리는 받아들임의 미학이 아니겠는가? 공원도 빗물과 인간과 온갖 동식물을 받아들임에 그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이제는 볼록이 아니라 오목이 필요하고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은가? 공원녹지에서 녹색 인프라로의 진화는 드러냄에서 받아들임으로의 전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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