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화(한국관광공사 부장·관광학박사)
피마골은 서울시 종로구 종로에 있는 골목길이다.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를 지나다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서민들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길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다니는 습속이 생겼는데,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래서 피맛골은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는 선술집·국밥집·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하였다.

원래 피맛골은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으나, 지금은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골목은 말 한 마리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도성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피맛골로 다니던 서민들은 출출할 때에는 허름한 국밥집에 들러 배를 채우고 목이 칼칼할 때에는 막걸리를 들이켜기도 했다. 자연스레 이곳에는 가벼운 주머니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과 주점들이 많아졌고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로 길 양쪽에 해장국집 생선구이, 낙지볶음, 빈대떡 등을 파는 식당과 술집·찻집이 밀집해 있는 종로의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대 을지로와 종로가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골목 일부가 재개발로 인하여 사라지게 되었고 2009년부터 청진동 지역도 재개발로 인하여 600년간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어 청진동해장국 골목의 옛스러운 풍광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을지로 재개발과 청진동개발로 인하여 서울의 4대문 안이 전통도시로서의 기능이 퇴색하고 빌딩숲으로 메워져 감에 따라 전통골목길이 사라진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기존 개발된 지역을 제외하고 종로2가에서 종로6가에 걸쳐있는 피맛골은 제한적이긴 하지만은 피맛골은 예전의 모습을 다소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피맛골 주변에는 노인들의 해방구라 불리는 종로3가에서 종묘에 이르는 노상에는 돋보기 안경, 중고시계, 사제담배를 파는 작은 전이 열린다. 이곳에는 물건을 떼다가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 노인이다. 종묘는 1995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 앞 정문일대 만여 평이 조금 넘는 종묘 광장에는 하루에도 3천명이 넘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기를 두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종묘광장의 노인들이 생활하고 소일하는 이러한 장면은 외국관광객에는 매우 관심거리가 되고 서울 한복판에서 노인들의 놀이터를 보는 순간 외국인들은 한국의 솔직한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것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

종로3가 피맛골과 종묘광장 일대에는 다양한 계층의 노인이 존재한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라이브 음악이 있는 레스토랑에는 백발의 노신사들이 각각 짝을 이루어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식사를 즐긴다. 아마 이곳에 오는 노인 대부분은 새로운 친구나 연인을 만난 듯 행복해 하고 노년을 즐기고 있는 듯싶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가라오게도 성업 중이고 노인들의 성 해방구라는 것을 입증하듯이 피맛골에는 여인숙이나 모텔이 성업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그야 말로 종로 3-4가는 시니어 천국인 셈이다.

많은 노인들이 한곳에 모여 여가를 보내는 것은 개인 활동이 강한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종로와 을지로에는 현대화되고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지금도 계속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청계천과 인사동과 같은 연계 관광자원이 우수하다. 피맛골 주변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고 있다. 획일화되고 현대화된 빌딩만이 존재한다면 서울은 전통생활문화의 가치가 사라져 결국 주말이나 저녁이면 도시가 텅텅 빈 공동화를 가져와 결국 죽은 도시로 만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종로의 피맛골 일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고 여가를 보낼 때 도심은 보다 활기 넘치고 생동하며 살아 숨 쉬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화려한 서울의 이면에는 또 다른 도시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낡고 오래된 시설과 해묵은 문화를 무조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닌가? 피맛골이 있는 종로 길은 또 하나의 테마의 길이다. 그곳에는 과거가 있고 현대가 있고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곳은 그 곳대로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면만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저분함과 불결한 환경, 노인들의 성매매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시니어도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기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피맛골에서 바라본 우리나라의 시니어는 2000년 65세 이상의 노인인구의 비율이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후 빠르게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14%를 넘어서서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이다. 작금에 시니어 인구 급팽창과 경제력이 강한 시니어 층의 출현으로 실버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돈 많은 실버 층의 소비지출을 늘리기 위한 연구와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피맛골은 앞으로 좋은 실버 관광지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실버산업은 관광성장 산업이다. 도심 속에서는 노인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은 노인들에게는 아주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 속에서 옛 추억을 되 세기며 즐기는 도심 속의 노인들의 여가생활은 앞으로도 지속적 될 것으로 보인다. 피맛골 골목길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모습은 좀 더 당당하고 행복하고 생기가 넘치는 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 곳에 가면 노인들의 행복이 있고 친구가 있고 소통이 있어 외롭지 않은 그런 노인들의 놀이터였으면 한다. 종로 피맛골 일대가 노인들을 위한 여가 시설이 좀 더 많이 확충되고 깨끗해진 환경에서 멋진 시니어들이 활보하는 도심 속 테마형 실버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