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자(평화엔지니어링 부사장)
우리나라가 런던올림픽에서 5위를 했고, 경제순위도 12위정도 된다고 하고, IT강국이니, 건설강국이니 하고 있으니 동방의 작은 대한민국 정말 대단하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젠 세계의 순위도 따지고, 남도 도와주자고 모금도 하는 나라가 되었다. 정말 대견하고 대단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우리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균 수명도 늘어 이제는 환갑잔치 하는 집도 거의 없다. 또한 자녀들도 예전처럼 여럿이지 않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경제규모도 커지고 그에 따라 부부가 함께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정도 상당수다. 게다가 집도 대부분 아파트 이다보니 좁은 공간에서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설사 형편이 되고 효심이 깊은 자식이라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부모님이 아프셔서 누우시게 되면 요양원이란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러면 가족들의 의견이 분분해 지면서 격앙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엔 요양원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그에 걸맞게 좀 더 편리하고 쾌적하게 밝아진 요양원도 많이 생겨나고 있으나 아직 우리의 인식은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면 큰 불효자나 된 것 같아 쉽게 내키지가 않은 것이 보통이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짜증과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그로인해 일상이 깨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어서 옛 말에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나라면 어찌할까? 내가 노인이 되어 그리고 아파서 눕게 된다면 어쩔까?

내가 병들어 요양시설로 가야한다면 슬플 것 같다. 내 집이 아닌 생소하고 좁은 공간에서 나의 삶을 마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외롭고 슬플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것마저 못 느낄 수도 있으니 다행일까?

내 주변에 친구들이 점점 부모님 모시는 일에 힘겨워들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부모님이 중풍이나 치매로 누우시면 온 가족이 매달려 생활이 엉망이 된다. 환경이 집이건 병원이건 비슷하다. 간병인을 둘 수 있는 집은 그래도 좀 나아서 식구들은 편할지 모르겠으나 간병인과의 트러블이 적잖게 생기고, 식구들은 짬짬히 전화 걸고 음식 해 나르고 그러면서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딸과 며느리, 아들과 사위, 손주들의 반목과 떠넘기기가 늘어가고, 집안이 짜증과 다툼으로 점점 붕괴되어 간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들의 노년을 준비할 여력이 미처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난에, 전쟁에, 그리고 없는 살림에 자식들 돌봄에 온 생을 사셨을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 어버이 세대는 그들이 가진 것은 자식들뿐이리라.

나의 어머니도 몇 년간을 병상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지만, 형제가 번갈아 가며 병상을 지키고 며느리가 음식 나르고, 그래도 그때는 편안했던 것이 아버지가 지키고 계셨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싫은 내색 없이 약간의 게으름을 피우기는 했었지만, 아버지의 휘하에서 형제가 많음에 감사하며, 어머니를 돌봤다.

그때도 난 늘 토, 일요일에는 부모님의 집과 병원을 전전했고, 그 일도 만만치 않게 힘들어서 종종 회사일 핑계 대며 그것마저도 빠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늘 죄송하고 뉘우쳐져서 생각나면 눈물 글썽이는 일이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노후준비’ 노년을 준비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도 아닌 늦추어야 하는 것도 아닌, 그 자체로 마주보며 노년이 아름다울 수 있게 꾸준히 살아온 대로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의 노년은 과연 어디에, 어떻게, 있게 될 것인가? 나는 어떻게 늙어야 “아! 나는 참 잘 살고 간다” 하며 지날 수 있을까?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란 책에 보면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를 4가지로 들며 그에 관해 설명해 놓은 것이 있다. ▲첫째는,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둘째는, 노년은 우리의 몸을 허약하게 하며 ▲셋째는,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빼앗아간다 ▲넷째는, 노년은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라고 하며 그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다.

그래서 노년에는 항시 늘 무엇인가를 행하고 실천에 옮겨 활동해야 한다고 한다. 멋진 노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면 모두 계속적으로 자신의 학구열을 불태우며 노력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쾌락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주는 선물이라 했다.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노인들이 죽는 것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하다.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이치이다. 모든 포도주가 세월이 지나면 모두 다 시큼해지지 않듯이 모두 다 노년이 되면 다 똑같이 그렇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한 자만이 노년의 원숙함과 원만함의 미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노년이 노년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꾸준히 열심히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나의 심신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아름다운 노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이런 미덕을 가진 노년을 맞게 되면 어느 누구에게도 짐 되지 않고, 죄송스럽지 않은 세월을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그 이상의 일은 하늘에 맡기며 살고 싶다.

노년에 대한 근심 보다는 지금의 이 위치에서 충실히 살고, 보다 더 노력하고, 나의 미덕을 위해 더욱 노력한다면 나의 노년이 아니 우리들의 노년이 그 어떤 유년기, 청년기 보다 빛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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