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뉴타운 3구역 공사 일대 가로수가 도로선 변경에 따른 수종 교체 작업으로 인해 대부분 벌채됐다.

더위를 식혀주던 녹음수들이 베어진 자리에는 이글거리는 ‘뜨거움’이 자리를 차지했다.

서울 서대문구 뉴타운 주택재개발 지역 일대에 다 자란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가로수가 영문도 모른 채 모조리 잘려나가 주민들 화가 단단히 났다. 상당수 주민들이 해당 구청과 시청에 “도대체 멀쩡한 가로수를 왜 자르냐”는 내용의 항의가 빗발쳤던 것이다.

이 제보를 접한 시민단체 생명의숲에서는 지난 8일 현장을 찾아보니 해당 지역 일대 가로수들이 잘려나간 상황이었다. 대규모 가로수 벌채가 이뤄진 지역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 뉴타운 제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공사 지역으로 최근 재개발관련 도로선형 변경에 따라 가로수 벌채가 이뤄졌던 것이다.

이 지역은 전체 시행면적 28만3261㎡로 상당히 넓은 구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공사로 잘려나간 가로수 숫자가 꽤 될 것으로 짐작된다.

김승순 생명의숲 숲보전정책팀장이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해당 구역의 외부도로 구간 가로수는 물론 건너편 가로수마저 대부분 벌채된 상황이었다. 벌채된 수종은 모두 양버즘나무였으며, 은행나무와 작은 플라타너스는 남아서 이식을 기다리는 상태다.

잘려나간 가로수는 보통 직경 30cm 이상 큰 나무였으며 60cm가 넘는 것도 있었다. 토막토막 잘려진 원목들은 대형 화물차에 실려 파티클보드용으로 변신하기 위해 제재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남아있던 이식 대상 가로수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남가좌동 일대 주민들은 녹음과 한여름 서늘한 그늘을 제공했던 가로수가 마구잡이로 잘려나가자 크게 놀랐다고 전했다. 대규모 가로수 벌채가 이뤄짐에도 이를 미리 주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주민들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

 

▲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3구역 일대에 직경이 작게는 30cm에서 크게는 60cm가 넘는 양버즘나무가 벌채됐다.
이 동네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이렇게 큰 나무들을 무더기로 잘라내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며 “벌채한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으며 플래카드도 붙어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민들은 이렇게 다 자란 나무를 구태여 왜 잘라내야만 하는지, 또 앞으로는 가로수를 어떻게 할 건지 알 수가 없어 더욱 화가 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민원과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생명의숲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녹음제공, 경관형성과 보전, 생물다양성 증진, 심리적 안정 등 가로수의 다양한 가치를 무시하고 다 자란 가로수를 행정의 편의를 위해 벌채한 점 ▲지역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가로수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고려하지 않고 의견수렴이나 사전고지 없이 일방적으로 가로수를 벌채한 점 ▲무더운 하절기, 가로수의 녹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 가로수를 벌채한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원성에 대해 해당 자치구에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서대문구청 푸른도시과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재개발사업에 따른 도로 선형 변경으로 이미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행정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미 가재울 뉴타운 지역은 지난해 ‘서대문구 가로수 조성관리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 가로수를 양버즘나무 대신 대왕참나무로 수종을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바꿔심기 작업을 착수하게 된 것이다. 다만 기존에 양버즘나무가 노쇠하거나 고사한 경우가 많아 이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나무들을 중심으로 벌채를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나무를 키우고 관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나무는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비용 문제나 행정편의 때문에 벌채를 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미리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앞서 구청에서는 가로수 수종 교체 등과 관련한 내용을 재개발 주민조합이나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람 및 공지 활동을 했다지만 벌채 시행과 관련해서는 주민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는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로 비춰 보면, 지자체들이 가로수 벌채를 결정할 때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과 절차를 소홀히 하고 있는 관행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도심지역 내 벌채과정을 세부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제도도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승순 생명의숲 팀장은 “각종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사례가 비단 서울시 한 자치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의견 청취제도를 보완하고 조례에 가로수 벌채시기나 벌채목 처리 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가로수 뿐 아니라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강하고 공공복지를 실현할 녹지 관련분야가 형식적인 주민 참여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며 “공원녹지 분야가 주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인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서울시, 가로수 벌채규정 개선 등 검토키로

서울특별시 ‘가로수조성및관리조례 시행규칙’ 제14조(공사구역안의 가로수 보호)에 따르면 ‘도로공사 또는 구조물공사 등을 시행하는 사업자는 공사구역안에 가로수가 있는 경우 관리청과 사전에 협의해 가로수 존치에 필요한 보호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다만, 교통장애 등으로 이식이나 제거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와 같은 공사구역 안의 가로수는 동 시행규칙 제15조(원인자부담금)에 따라 ▲흉고직경 25㎝ 이상의 대경목·병해충피해목·노쇠목 등 이식후 활착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수목은 제거하고 ▲이식함으로써 나무모양이 많이 훼손되어 가로수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우려가 있는 수목의 경우 산정기준에 의한 원인자 부담금을 징수케 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명시된 내용 이외에 가로수를 벌채함에 있어 그 시기나 이를 처리방법 등 벌채관련 세부 규정은 포함돼 있지 않다.

서울시에서는 가로수의 수종 변경이나 이식, 교체 등을 진행할 경우 각 자치구가 수립한 ‘가로수 조성 및 관리 조례’에 따라 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서대문구 가재울 뉴타운 3구역 역시 도로선형 변경으로 올해 3월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쳤다. 하지만 수종 교체 타당성에 대한 심의만 이뤄졌을 뿐 대규모 벌채 등 교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고지나 절차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공원녹지국 조경과 관계자는 “이번 벌채 문제는 사전에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것에 원인이 있다”면서 “앞으로는 가로수 계획 심의 시 주민 공지사항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벌채된 가로수가 대형 트럭에 실려 제재소로 이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