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다양한 주제와 분야와 관련한 일본의 경관협정 사례를 살펴보았다.

공통점 중의 하나는 경관협정을 체결하고, 협정 내용의 작성과 관련하여 지자체에서 기준이나 매뉴얼 등을 제공하거나, 경관협정 체결 주체가 스스로 그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경관협정’이라는 단어 뒤에 ‘사업’이란 용어를 붙이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요사이 불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처럼.

일전에 경관협정은 ‘사업’이 아니라고 필자가 언급한 적이 있다. ‘사업’이라는 것은 일정 목표를 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기한과 예산이 정해져 시행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경관’을 가꿔나가기 위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체결하는 협정의 내용은 기한과 예산이 정해져 시행되는 것인가? 주민들이 왜 그래야 하는가.
따라서, 지자체가 할 일은 경관협정 체결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경관협정의 내용을 잘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는 경관협정을 ‘사업’으로 간주하여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서 경관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정비사업처럼 신속히 추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관협정은 주민들이 스스로 경관을 가꿔나가기 위한 사항과 내용을 스스로 정하고, 이를 문서화하여 함께 지켜나가자고 하는 공공의 약속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다시피하고 있는 ‘마을만들기’도 ‘사업’형태로 추진함에 따라, 갖가지 부작용과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해당 지자체 의회에서 마을만들기사업에 대한 예산을 부결하는 경우에 그 마을만들기사업이 공중으로 붕 떠버리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여전히 마을만들기를 관(행정)이 주도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경관협정사업도 관이 주도하는 ‘사업’이므로 마찬가지 한계를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경관협정사업 한 건당 대개 5000만원 이상의 예산을 책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지자체로는 서울시를 비롯하여 전주, 부산 등이 전부이다. 서울과 전주는 09년도부터 ‘경관협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주의 경우는 ‘09년도에 이어 2011년도 경관협정 지원대상사업 선정’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은 ‘경관협정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해오고 있다.

차후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경관협정서(예시)’를 보면 주민이 작성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어휘들이 곳곳에 보일 뿐만 아니라, ‘협정내용 2’를 보면 많은 경관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정하고 있다. 그 중에는 가령 ‘보도포장재료’와 같이 공공에서 해야 할 사항들까지도 주민이 정하는 사항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는 것도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경관협정 위반시 제재사항’도 규정하고 있어 과연 주민에 의한 경관협정 체결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우이동 경관협정서(예시)’의 분량이 9쪽에 달하는데다가, 6쪽에 달하는 ‘경관협정운영회 운영규약’까지 달고 있어서 도합 15쪽 분량을 ‘예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할 주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행정주도’의 문제가 바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경관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된다고 가정해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경관협정’을 ‘사업’으로 하고자 하는 지자체 담당자들은 개정법률안 제4장 ‘경관협정’ 내용을 찬찬히 보기 바란다. 제19조에서 25조에 이르는 어떠한 조항에서도 지자체가 경관협정을 주도하여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제20조의 경관협정운영회 설립시 시도지사 등에게 그 신고하거나, 제21조 체결된 경관협정이나 제22조 경관협정의 폐지에 대해 시도지사가 인가하거나, 제25조 경관협정에 관한 지원을 시도지사 등이 기술상, 재정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명확하지 않은가? 지자체는 ‘지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교육과 학습, 홍보 등을 기본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경관 전문가는 물론 경관행정 전문가가 태부족한 현실에서, ‘경관협정’이라는 제도의 시행 초기부터 ‘행정의 발주, 전문가주도의 주민참여형 경관협정 체결’이라는 형태로 추진된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지자체에서 경관협정 체결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기에 그 의미 또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민근(문광부 시장과문화컨설팅단 컨설턴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UCCN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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