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에 자리 잡은 한 학교 앞. 여섯 살 꼬마 아이가 엄마와 한 차례 실갱이를 벌이고 있다.

“엄마~ 여기 학교에서 그네 타고 가면 안돼?”
“안돼! 여긴 학교 아냐. 어서 집에 가자”

아이를 잡아끄는 엄마의 손길은 완강하기만 하다.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엄연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20여년 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학교로 인정받지 못했던 곳. 경기도 최초의 공립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성남혜은학교다.

‘2011 학교숲 가꾸기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명희 성남혜은학교 교장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경기도 최초의 공립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본교는 학교숲 조성 당시 2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였으나 회색 도심 속에 위치한 나무가 거의 없는 건물만 덩그마니 있는 삭막한 학교였다’

하지만 지금 혜은학교는 인근 지역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방과 후엔 아이들의 공차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여기 저기 울려 퍼진다. 흙먼지와 삭막한 기운이 감돌던 학교에 잘 가꿔진 ‘학교숲’이 가져온 마법같은 변화다.

혜은학교에 학교숲 조성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이 도심지 내에 녹지공간 확충을 목적으로 지역학교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해주는 ‘학교숲 운동’의 시범학교로 선정되면서부터다. ‘학교숲’이라는 명칭마저 생소한 시기였던 그때를, 혜은학교의 이명희 교장은 “예산도, 아이디어도, 인적자원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회고한다. 사업초기부터 항상 발로 뛰며 혜은학교숲의 역사를 함께한 이명희 교장을 통해 현재 학교숲 조성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혜은학교숲의 지난 10년을 되짚어보자.

 



10년전 ‘학교숲’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 성남혜은학교 이명희 교장

장애학생들에게는 협소한 교실에서의 인지적 수업보다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험학습이 더욱 효과적이다. 하지만 사업 이전의 혜은학교는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전혀 뒷받침이 안됐다. 학교엔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었고 운동장은 흙뿐이라서 비가 오면 질퍽하고 한낮에는 뙤약볕을 피할 곳이 없었다. 또 야외 놀이시설이라곤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이 전부여서 운동장에 나간 학생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단순한 놀이에 매달렸다. 또 야외놀이를 한다고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학교가 발칵 뒤집히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를 통해 생명의숲이 지원하는 학교숲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장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지고 있던 지역사회에는 주민 쉼터 제공을 통해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당시 학교숲 조성과정은 어땠나?
그렇게 꿈꾸던 학교숲 시범학교로 선정이 됐지만 의욕만 있을 뿐 예산도 부족하고 전문인력도 없는 학교에서 숲을 조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인근 대학 조경학과의 협조를 받아 학생들의 졸업작품으로 혜은학교숲 마스터플랜이 완성됐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숲 조성에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지역사회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학교숲 조성사업의 좋은 취지에 대해 알게 된 성남시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감각체험학습장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업진행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설명회와 홍보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또 학교 입구에 심을 30여 그루의 소나무와 울타리 그늘 조성용 느티나무와 벚나무 50여 그루가 기증됐고, 비가 올 때마다 토사가 흘러내렸던 현 콘크리트 스탠드 위쪽 경사지에는 수정구청의 지원으로 철쭉화단이 조성됐다. 또 이를 계기로 경기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주관하는 녹색학교사업에 공모해 지원된 5천만원의 예산으로 물놀이 학습장까지 조성할 수 있었다. 

시범사업 초기라서 애로사항도 많았을텐데?
조성과정에서는 학교숲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조성 후에는 관리문제가 불거졌다. 전문지식이 부족해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교사들은 한 교사가 여러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시스템 상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또 학부모와 학생들 역시 사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학교숲 가꾸기 바자회와 크고 작은 축제 등을 통해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관련 교육 참여와 학교숲가꾸기 추진위원회 조직을 통해 전문지식을 쌓는데 노력했다.
반면 조성 후에는 밤이 되면 인근 학교의 불량배들이 몰려와 버리고 간 쓰레기들 때문에 이튿날 아침이면 ‘청소 전쟁’이 시작됐다. 다행히 법원·검찰청·보호관찰소와의 연계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사람들을 청소 및 학교숲 관리를 위한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학교숲 조성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우선 학교의 일상적인 풍경이 달라졌다. 그늘 하나 없는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에서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잔디 운동장을 맨발로 뛰놀며 즐거워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의 안전사고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을 보고, 만지고, 느끼며 자연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교실과 제일 가까운 곳에서 매일 자연친화적인 현장학습과 감각 체험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숲은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 ‘일거삼득’을 이뤄줬다. 교실에서 악을 쓰며 울던 학생들도 학교숲에서는 금새 울음을 그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학교숲 활용 시간을 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발적으로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레 숲에서 놀고, 공부한다.
또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역주민들의 변화다. 장애인과 특수학교에 대한 편견으로 교정안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던 주민들이 이제는 쉴 그늘을 찾아서, 놀이터를 찾아 학교를 찾는다. 혜은학교가 지역주민에게 있어 더 이상 부정적인 장애인시설이 아닌 하나의 ‘지역공동체’로 당당히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학교숲 추진기관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은?
우선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 많은 벤치마킹을 통해 잘된 모델숲들의 우수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학교 개개의 요구들을 녹여낸다면 기존의 학교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상당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숲’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다. 학교 운동장에 조성된 이 작은 녹색공간은 기존에 장애인시설로 인식되던 혜은학교를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지역사회 학교’로 돌려놓았다. 소리 높여 통합교육, 장애 이해 개선이라고 외치지 않아도 학교숲의 말없는 사회통합은 자연스레 시작됐고 그 ‘마법같은’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때문에 학교숲의 조경은 외형적 아름다움이 우선이 되는 조경이 아닌 그곳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요구가 최우선이 된 조경계획으로 이뤄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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