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원 불가근 (不可遠 不可近)’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야 한다. 정치와 생업의 합리적 관계 및 거리를 정의하는 말이다.

생업을 유지하는 업계의 우리들은 학계 또는 일반인과는 달리 정치 분야 또는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정치인과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정치는 쉽사리 변하고 정치인은 더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자신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주변의 정치 상황이 바뀌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한 때 힘을 가졌던 쪽은 반드시 힘을 잃을 때가 오고 그러니 상인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서 단기적인 혜택을 보는 대신 장기적으로 정치의 바람을 타지 않도록 정치와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 조경인은 적어도 이 관계를 지탱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모범적이었다.

모범적인, 지나치게 모범적인 우리들에게 하지만 원근의 아이러니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조경기본법이 그렇고 정부조직 내의 조경직제의 인정이 그렇고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조경시설물의 산업분류 체계 문제도 그렇다. 우리의 주변 이곳저곳 모든 곳에서 힘을 필요로 하는 사안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가 멀리 하려고 하는 정치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우리가 필요한 힘이 하필이면 우리가 멀리하고 있는 정치로부터 오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 에겐 착한 반장보다는 정치적 힘을 우리에게 끌고 올 거친 전사가 필요하다.

우리 조경인들은 매우 강력하고 큰 정치적 힘이 한 때 가까이 왔던 적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경부 대운하가 현 정권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 적이 있었다. 경부 대운하의 공약은 공약을 내세운 쪽에서 상대 진영은 물론이고 경선을 치루고 있던 내부의 동료로 부터도 큰 반대에 부딪혀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그쪽 진영은 경부 대운하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절실했다. 우리 조경분야에도 도움 요청이 있었다. 우리 조경인의 반응은 냉담했다. 반대가 더 많았다. 아니 얘기를 들은 거의 대부분의 조경인이 난감해했다.

사실 경부 대운하의 경우 수질과 환경의 파괴에 대한 오해는 억울한 측면이 많다. 지금 우리의 기술은 물을 다루면서 그 물을 오염시키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물을 다루면서 그 물이 갖고 있던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요소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보존이 아닌 복원의 방법으로 또는 더 건강한 방법으로 - 청계천에는 복원 전보다 훨씬 많은 생물과 어류가 청계천 3, 4가 까지 올라오고 있다 - 물을 다룬다. 수질에 대한 고려와 생태적인 하천의 다룸은 아주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기술이다. 조경인의 도움을 요청했던 그쪽 정치인이 우리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얘기를 듣고는 실망스런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다 그쪽 일이 아니던가요?”

비슷한 얘기가 마치 데자뷰처럼 다시 반복된다. 4대강 얘기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4대강살리기 사업은 항간에서 일부에 의해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운하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의도가 전혀 없다. 이미 운하의 꿈은 버린 지 오래다. 보와 갑문은 태생이 다르다. 보는 물을 저장하고 막고자 하는 것이고 갑문은 배를 보내기 위한 운하시설이다. 4대강에는 보만 있고 갑문이 없다.

강을 살리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의 4대강 사업도 시작과 추진이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찬성해야 할 우리 조경인들 사이에서 조차 찬반이 팽팽했다. 조경인이라면 기술적인 전문성 때문에라도 4대강 사업의 속성과 본질을 더 신중히 들여다 볼 의무가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스레 우리 조경인들사이에서도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조경인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주관하지 못하고 토목이나 다른 분야에 뺏기고 있느냐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았다. 일을 주는 입장에서 볼 때, 일의 전문성을 떠나, 일관적인 찬성과 적극적인 호응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토목분야를 제치고 비판의 목소리가 자자한 분야에 자신의 중점 사업을 맡길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경계에서는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정부 탓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아직 적지 않다.

받을 것이 있다면 먼저 줄 것이 있어야 한다. 살 것이 있으면 팔 것이 있어야 한다. 거래 성립에 필요한 단 하나의 유일한 조건이다. 줄 것도 팔 것도 없으면서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웃기는 얘기일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든 아니든 우리가 어떤 힘을 필요로 한다면 그 어떤 힘이 우리를 필요로 했을 때 우리의 힘을 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돌려 받을 수 있다. 때론 너무 학구적인 우리의 태도가, 때론 유치원 아이같이 너무 순진한 우리의 태도가, 때론 고통스러운 의무보다는 편한 권리만 추구하는 우리의 태도가, 결국 우리의 힘을 약하게 하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약점이 되고 있다.

정리해보자. 힘이 필요 없으면 즉 정치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불가원과 불가근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힘을 달라고 떼를 쓰며 애걸복걸하고 있는 우리의 현 상황을 보면 원근의 원칙보다는 누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인지 누가 정작 우리의 전공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보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조경계의 진정한 리더십은 친구를 알아보고 그 친구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고 그 친구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섰을 때 당연히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 할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경계는 아직 그런 리더십이 없다. 정부쪽에서 볼 때 , 요구만하고 달라기만 하는 떼쟁이가 많을 뿐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우리에겐 착한 반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끌고 갈 거친 전사가 필요하다. 그 전사는 정치인 - 그것도 앞으로 잘 나갈 정치인 -과 담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배포와 정치적 감각을 지녀야 하고 또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위해 해준 만큼 또는 더 이상 받아낼 수 있도록 매우 약아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다.

진양교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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