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뭇잎 평상'에 관람객들이 오밀조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풍경 속 자연스레 녹아있는 공간이며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공간’이자 ‘공공가구’인 평상. 그 위에 잠시 앉아 쉬어 가노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휴식만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정·사랑·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이번 ‘2010 공공디자인 엑스포’에서는 이러한 평상이 지닌 ‘소통’의 가치를 발굴해 기존 야외용 의자가 가지는 기능에 접목시킨 작품들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시골 정자나무 아래에나 있을 법한 평상이 도시 공간에서 새롭게 해석되면서 의자의 기능적 범위 확대와 향후 편의시설의 새로운 변신을 예고했다.

평상 디자인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10개의 작품들 가운데 특히, ‘나뭇잎 평상’의 경우는 기존 의자들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이 작품은 나뭇잎의 한 쪽 부분을 벌레가 갉아먹은 것 같은 형태로 디자인 되었는데, 그 때문에 파인 부분에 다리를 넣고 앉으면 상대방과 더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곡선의 디자인은 관람객들을 오밀조밀 모여 앉게 해 친밀감을 더욱 향상시키고 있다.

이 평상을 디자인한 강제용 디에스빠시오건축사무소 대표는 “나뭇잎의 한 쪽 부분을 파놓음으로써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관계 형성을 위한 디자인을 했다”고 말하며 또한 “평상에 막대기둥처럼 설치된 봉의 경우 조명의 역할을 하게 되어 시간을 초월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넓적한 평상의 이미지를 분리해서 다양한 형태로 조합할 수 있는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정사각형을 모듈화한 ‘평상구축’, 3단 분리구조로 제작돼 상황에 따라 벤치 또는 평상으로 조합이 가능한 ‘The Blood-Plying with the Table’, 자전거 보관 기능을 담은 기다란 앉음벽 형태의 조합인 ‘작은 판들의 모임’ 등은 의자와 평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도였다.

이번 평상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디자인진흥부 전민경 씨는 “평상을 통해 잊고 지냈던 인간관계의 중요성, 사라져가는 따뜻하고 푸근한 삶의 모습을 되짚어 보고 평상의 의미를 복원하고자 ‘평상 디자인 공모전’이 개최되었고 선정된 10개 팀의 작가들이 ‘평상 함께 만들기, 함께 앉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시된 10개의 작품은 ▲자연을 모티브로 한 나뭇잎 형태의 ‘나뭇잎 평상’ (강제용, 디에스빠시오 건축사무소 대표) ▲평상의 시각적 단아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만사형통’ (김하노,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 석사과정) ▲발이 있는 테이블 ‘발상(Balsang)’ (모토엘라스티고) ▲전통식 좌식 평상에 현대식 입식 평상을 더한 ‘Public Privacy’ (염상훈, B-Lab Design Studio) ▲점, 선, 면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평상을 만들 수 있는 ‘평상구축’ (이영석, 어반인덱스랩) ▲3단 분리 구조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 가능 한 ‘The Blood-Plying with the Table’ (이윰, 아트그룹 ‘빨간블라우스’ 대표) ▲넓이가 서로 다른 판으로 구성되어 판들의 간격에 따라 다양한 공간활용이 가능한 ‘작은 판들의 모임’ (이지은, 디자인/건축연구소 SSWA 대표) ▲이웃과 이웃 사이의 무경계와 공유의 상태에 초점을 맞춘 ‘명랑한 이웃이 평상을 만든다’ (장현진, Mcdesign) ▲산을 묘사한 디자인과 그 산에 있는 나무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한 ‘산’ (천년전주명품사업단) ▲소재는 변하지 않았지만 형태가 변화돼 기존 평상과 다른 느낌을 주는 ‘나무 안 나뭇잎 나무’ (한우석, 가구디자이너) 등이다.

그 중, 평상의 일반적인 나무 재질을 벗어나 독특한 소재(플라스틱 몰드와 철판 사용)를 사용한 ‘발상(Balsang)’이나, 전통적인 평상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입식 생활에 맞게 디자인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Public Privacy’ 등의 작품을 통해 향후 새로운 소재나 형태의 다양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번 ‘2010 공공디자인 엑스포’를 통하여 전시된 작품들은 일반적인 의자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작품들일 뿐만 아니라 의자의 일반적인 기능에 소통의 기능을 더욱 강조하여 담아내고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중적인 시설물이기 보다는 ‘예술작품’ 성격으로 선보였다. 이것들이 공공시설물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재질과 규격, 디자인으로 일반화 될 과제가 남아있다.

또한 더 이상 의자가 ‘앉기’의 주된 기능만을 지니지 않고 사람 사이의 대화, 그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게 되는 정·소통·사랑·따뜻함 등 인간관계의 회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이 부수적 기능으로 의자 위에 안착될 수 있도록 디자인적인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사라졌던 이웃 간의 커뮤니티를 회복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이웃 간의 교류와 정,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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